하느님 아들’의 자신감... -정호신부-
예비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하느님을 믿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하느님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사실 신앙인이라고 불리는 우리들에게도 이 신앙의 이유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구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 속에서 열심히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 신앙의 모델인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서 말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계신다는 급박한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돌을 집어 들고 예수님을 치려고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들보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예수님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라 말하며 당신의 모든 일을 하느님 아버지의 일이라 이야기하고 있음을 문제 삼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긴 했지만,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하느님은 ‘무서운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했고 그분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너무 자신 있는 행동들은 분명 하느님께 불경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시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당신의 입장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예수님을 드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과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삶. 그것이 예수님의 ‘하느님의 아들’이란 말씀 속에 들어있는 자신감의 참된 이유였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 그래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 우리가 구원되는 그래서 하느님과 눈을 마주하고도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살아있는 말과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자신 있게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을 많이 닮아 있어야만 합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당당히 맞서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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