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4일 사순 제 4주간 토요일(다해)
[요한7,40-53]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묵 상
오늘의 말씀은 음모에 대해서 묵상거리를 주십니다.
오늘의 복음에는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는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들어 절대로 예언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적은 상관하지 않고 출신이 어디냐를 두고 그분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음모라고 합니다. 음모는 정당한 이유에 의해서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목적으로 몰래 악한 일을 꾸미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함하고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던 이들을 나쁘지 않게 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자신도 그러한 음모를 꾸미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말과 행동을 나쁘게 말한다든지, 누군가를 시샘해서 공연히 그의 험담을 늘어놓는다든지 하는 일들도 음모를 꾸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서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잡아 오라고 보냈던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와서 이렇게 전합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7,46)
들을 줄 아는 귀와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살아갈 때 편협한 생각과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욕심과 나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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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 기
숭고한 마음을 모독하지 말라
영국의 대시인 테니슨은 사소한 일까지 간섭하는 ‘엿보는 톰’에 대한 시를 쓴 적이 있다. 엿보는 톰이란 남자답지 못한 비열한 인간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고다이버 부인의 숭고한 일화가 숨어있다.
영국의 코벤트리 연대기에 실려 있는 고다이버 부인의 이야기는 참다운 인간애와 자기 희생을 보여준 전형으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다이버 부인은 봉건 영주인 레오프리크의 아내였다. 그녀는 신앙심이 두터운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남편이 가난한 시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그 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조금도 그럴 생각이 없던 남편은 장난삼아 이렇게 말했다.
“절대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어. 만일 당신이 환한 대낮에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코벤트리 시내를 한 바퀴 돈다면 몰라도...”
그러자 고다이버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말로 시민들에게 자신이 벌거벗고 시내를 돌 테니 창 밖을 내다보지 말라고 공표하였다. 시민들은 이런 부인의 뜻에 감동하여 그녀가 말을 타고 코벤트리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재단사 톰이란 사람이 아름다운 고다이버 부인의 나체를 보기 위해 창문의 커튼을 살짝 걷어 올렸다. 순간 톰은 신의 저주를 받았는지 장님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이런 고다이버 부인의 행동으로 남편은 시민들에게 부과한 세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코벤트리 시에서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그녀의 덕을 기리는 행사를 매년 열고 있다.
([인간관계를 열어주는 108가지 따뜻한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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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주님, 성령의 지혜를 제게 부어주시어 그릇된 생각에서 저를 구하소서.
쓸데없는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주제를 모르는 욕심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제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일지라도 때로는 양보할 줄도 알게 하소서.
주님, 제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지 않도록 넓고 따뜻한 주님의 성심을 나누어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