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1주 수요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늘 복음[루가 14,25-33]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많은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시면서 하신 말씀이었는데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고 있는 중이었다. 예수님은 당신이 향해 가시고 있는 길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내다보고 걸으시는 길이었다. 그러나 예수와 함께 걷던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각과는 달리 메시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가는 것으로 여겼다.
예수께서 오늘 복음의 말씀을 그들에게 하신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즉, 가능한한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되고자 하고, 현세에서 예수를 가까이 따르고자 하는 자는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귀한 자기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와 당신이 지시고자 하시는 십자가를 지는 수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사랑해야 할 부모나 처자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말마디대로 미워하라고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위하여 육정으로 맺어진 것들과의 사랑까지도 희생하며, 예수를 따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보다 큰 영원을 위하여 다른 것을 희생한다는 것은 의례히 요구되는 일이라 하겠다. 한 예로 전쟁에서 적과 싸우고자하는 병사가 따뜻한 방에서 동시에 안락하게 지낼 수 없겠고, 유흥을 즐기면서 영예의 합격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온전히 좀더 가까이 따르는 생활을 하자면, 의례히 현세적인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 되겠다. 또한 그러한 생활은 준비없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포도원을 지키는 망대를 짓기 전에 계획과 설계, 비용 등을 사전에 계산할 줄 알듯이, 우리 각자는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천국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준비를 제대로 잘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천국을 위해 자신을 바친 이들은 복음삼덕인 정결, 청빈, 순명을 지키는 수도자의 삶안에서 나타난다.
정결은 사랑 중에 최대의 사랑으로서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청빈은 최대의 부요함으로서 하느님의 축복을 이웃과 나누는 가난한 마음이다.
순명은 최대의 자유로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자녀로서의 자유이다. 이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최대의 자유와, 최고의 영적인 부요함과 최대의 사랑으로 살아나가는 모습으로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가톨릭대학교 강론자료집 / 정리: 김웅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