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31 주간 화요일.
2006. 11. 7.
중계본동.
필리 2, 5-11.
루카 14, 15-24.
예수께서 낮은 자리, 초대할 손님의 목록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이 말씀을 잘 들은 한 사람이 감동을 받은 듯한 소리로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루카 14, 15)
그런데 예수께서 바라보시기에, 그의 말이 자신은 그렇게 먹을 수 있다는 뻐김이었는지, 아니면 더 깊은 가르침을 주시고 싶으셨는지, 예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풉니다. 관습대로라면 잔치를 베풀면 주인은 손님을 두 번 초대합니다. 잔치가 있기 전에 초청을 하고, 잔치가 다 준비되면 한 번 더 초청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 예를 들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핑계를 대며 갈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들은 초대를 받았을 때 그 초대에 대해서 응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초대장을 받은 것은 첫 번째 초대에 응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들의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초대를 받을 때 분명 그 잔치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받았지만, 그곳에 직접 가는 수고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초대장을 받았다는 것과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을 명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에 초대장을 받았을 때 자신이 갈 수 없음을 보였다면 다른 이에게 초대장이 갔을텐데, 그들은 그 초대장만은 지니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나 나 아니면 안 된다고 그 초대장을 굳게 쥐고 있다고 해도 주님의 나라가 텅텅 비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 주님의 나라에 모든 이를 초대하기 위해 오셨고, 누구든(오늘 복음대로라면 오히려 기존의 초대에서 제외되었다고 여기는 소외된 사람들을 더더욱 초대의 범주에 넣으신다.) 초대를 함으로써 당신의 나라를 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비유의 천재라고 합니다. 오늘의 복음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우리는 이 복음을 보면서 살며시 웃음을 짓게 되죠.
이들이 양해를 구하는 핑계들을 보십시오.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아니, 자신의 밭을 사는데 구입할 밭을 둘러보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까?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을 부려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려보려고 간다? 아니, 쟁기를 끌 소를 열 마리나(다섯 쌍)사면서 시험해보지도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오늘 갑자기 장가를 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첫 초대를 받았을 때 거절할 수 있었다는 얘기죠. 하나같이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있지만, 핑계를 대기 위한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이 유머러스한 비유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띠게 하지만, 이미 염두에 두는 바와 같이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주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꽉 막힌 유다인들을 염두에 두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럴싸한 핑계를 만들어내면서 주님의 초대, 주님의 요구를 피해갑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핑계를 대가면서 주님의 계명을 피해가는 때가 많다는 것이죠.
내가 가진 초대장, 그것은 어디까지나 초대장입니다. 갈 수 있는 자격이지, 가지 않는다면 받지 않은 사람과 같은 것이죠. 우리는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고, 그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큰 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려는”(루카 14, 23)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당신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게 하시려고 나를 초대하신 주님 앞에서 나도 그 사랑에 감사하며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는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