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0.화
| 마르코 복음 9장 30-37절 | ||
|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 ||
| 모든 이의 종 이정호신부 | ||
| 필리핀에 있는 저희 수도회 공동체를 방문하였을 때 90세가 넘으신 아일랜드 신부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필리핀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일하시다가 연세가 들어 이제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이 드십니다. 거기에 치매 증상도 있어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수도원 복도를 오가는 수사님들과 신자들이 신부님께 인사하면 그 모두를 반갑게 받아주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짧은 대화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실제적인 활동도 할 수 없고 간호하는 이가 항상 옆에서 돌봐드려야 하는 처지였지만 신부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내주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치매 때문에 매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낯선 이들(사실 매일 보는 얼굴이긴 하지만)에게 눈짓 하나 짧은 말 한마디를 통해 인자롭고 따스한 마음을 건네주고자 애쓰는 노 신부님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성사를 주고 큰 성과를 올린 이들에 비하면 그분은 무력하고 병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모든 기억을 잃어도 하느님의 사랑만은 그분의 마음에 남아 몸소 사랑을 보여주고 증거하는 일등 선교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주님은 사랑과 희생의 크기로 우리를 윗자리에 앉혀주십니다.? | ||
| 최선을 다해 | ||
| 우리 병원 옆은 경찰서다. 그래서 가끔 경찰서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한다. 며칠 전 밤 소규모 집회가 경찰서 앞에서 있었다. 남들이 잠든 사이 경찰서 앞엔 확성기로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고 그렇게 그날 밤도 소란스러웠다. 시위대가 경찰서 진입을 시도하려고 하고 전경들이 몸으로 막고 있는 그런 긴장된 순간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전경들과 시위대를 향해 간청하고 있었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지금 7살 아이의 마지막 밤입니다. 조용히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사정은 딱하지만 시위대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우리도 지금 죽을 것 같아 여기 있는 겁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밀려난 의사는 다시 대치 상황의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제발, 그 어린아이가 평화롭게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멱살도 잡히고, 내동댕이쳐지고…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흥분한 시위대 인파들을 그분 혼자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그날 밤 아이의 마지막 길에 최선을 다하셨다. 그날의 훈훈한 이야기가 병원 안에 회자되면서 사내 게시판을 통해 그분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그분은 한사코 드러나길 원하지 않으셨고, 짧은 인사로 사내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리셨다. “그날 밤 제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약물도 주사도 아이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배운 내용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마지막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시위대를 진정시키지 못했지만, 한 사람으로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제 마음은 전달되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칭찬에 부끄러움을 전하며 의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격려해주심을 감사합니다.” 김건아 |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