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9.금
| 마르코 복음 7장 31-37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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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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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파타 이정호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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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 병원에 가봐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몇몇 분들이 병을 잘 보신다는 의사분들을 추천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아주 안 들리는 것도 아니고 겉보기 멀쩡하고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없다보니까 스스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언제서부터인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듣지 못한다는 것이 삶의 더 큰 어려움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말을 주고 받으면서 다른 이들과 생활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데 듣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말을 배울 기회마저도 갖지 못하는 것이며 그래서 나눔이 단절되고 자신 안에 갇혀버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사람과의 단절이 주는 아픔이 클진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적인 귀먹음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듣고 말하고 사랑을 나누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귀를 열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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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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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 들은 얘기다. 신부님의 공동체에는 성당에서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 성체조배를 하는 형제가 있단다. 신부님은 늘 그런 형제의 모습이 못마땅해서 조배를 하다가도 그 형제가 들어오면 불편한 마음으로 조배실을 나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님은 그 형제의 아버지가 임종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그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그 형제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성당으로 향하더란다. 그러고는 평소와 같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더란다. 잠시 후 가냘프게 떨리기 시작하는 형제의 어깨를 바라보며 신부님은 그 순간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난 그 절박한 순간처럼 매일매일 그렇게 기도했던 형제를 늘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이야말로 얼마나 무례하고 교만했는지 너무나 창피하고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때 신부님은 그 형제를 바라보며 ‘바라봄은 오랜 인내구나. 바라봄은 깊은 이해로구나. 그래서 바라봄은 신앙이구나’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달으며 바라보는 법을 배웠단다.
이은정 | 편집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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