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젊은이들의 사도이자 고아들의 아버지 - 이기양 신부님

2007. 1. 31. 오후 1:21:05

글자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젊은이들의 사도이자 고아들의 아버지

 

   고아들의 아버지,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라 불리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성인에게는 신심이 뛰어난 어머니가 계셨는데 요한 보스코 사제가 성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분으로 그 어머니 말가리다를 꼽아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말가리다는 남편이 34세의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불행을 겪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임종시에 유언한 “자녀들을 잘 부탁하오. 특히 어린 요한을.”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기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생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했던 여인으로서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 16일 이탈리아 베키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 프란치스코와 말가리다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정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보스코는 9세 때 농한기를 이용하여 카프릴리오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만을 배웠습니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내던 요한 보스코는 어느 날 생애에 결단의 계기가 된 한 꿈을 꾸게 됩니다. 이 꿈은 이후에도 약간씩 변화가 있으면서 반복되지만 성인은 이 꿈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알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1824년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립하고자 교황 비오9세를 알현하였을 때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 꿈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꿈을 계기로 사제 성소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지만 가난한 과부의 아들로써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남의 집 머슴살이, 상점의 점원 등을 하면서 신부가 되는데 필요한 공부를 하게 되고 1841년 6월 5일에 사제로 수품됩니다.

   사제 수품 후 요한 보스코 신부는 그의 은인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가파소 신부의 도움으로 토리노에 있는 사제 연수원에서 신학 연구와 현대 사목에 관한 연구를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청소년들로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과정 속에서 산업화는 인구의 도시 집중, 빈민굴의 형성, 비참한 노동 조건 등 부작용을 드러내었지요. 보스코 신부는 토리노에 체류하는 동안 토리노의 골목을 방황하는 소년들, 전쟁 고아들, 감옥에서 만난 12~3세의 청소년들, 공장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소년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한 때는 백여 명이 넘는 소년들과 함께 돈도 거처도 없이 광장, 목초지 등을 다니며 거의 일년 동안 이동을 하다가 마침내 1846년 4월 토리노시의 발도코에 정착합니다. 그가 회고록에서 일년 동안 이동한 목적을 “가장 많은 위험에 처한 소년들과 출감 소년들을 모으기 위해서였다.”라고 술회하였듯이 성인은 도시 하층민 소년들과 농촌 출신의 가출소년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이후 성인은 가파소 신부와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발도코에 기숙사를 세웠으며 제본소나 인쇄소 등의 기술학교를 시작합니다. 그의 청소년 교육은 점점 확대되어 가고 교육을 위해서 많은 저술과 출판사업을 통해 자신의 교육 이상을 펴 나가지요. 성인은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교황 비오9세의 권고에 따라 1859년에 18명의 제자들에게 수도서원을 하게 하였고 그들은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합니다. 이렇게 성 프란치스코의 살레시오 수도회는 1869년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았으며, 1870년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살레시오 수녀원을 창립하고 1876년에는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창립하게 됩니다.

   특히 돈보스코 성인은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예방 교육을 중시하였습니다. 그의 예방 교육법은 사도 바오로의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13,4-7)를 기초로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살았던 보스코 신부는 1888년 1월 31일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2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보스코 사제는 유언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게 기다리겠다고 전해주시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성인은 1926년 6월 2일 교황 비오11세에 의해 시복 되었고 1934년 시성되었습니다.

   돈보스코 성인은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며 동시에 2천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이자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도처에 심은 대 영성가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야말로 청소년 교육의 어려움이 어떠한 때보다도 심화되는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청소년 교육은 돈보스코 성인이 보여준 것처럼 하느님 사랑 안에서 몸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주기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성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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