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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고아들의 아버지,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라 불리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성인에게는 신심이 뛰어난 어머니가 계셨는데 요한 보스코 사제가 성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분으로 그 어머니 말가리다를 꼽아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말가리다는 남편이 34세의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불행을 겪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임종시에 유언한 “자녀들을 잘 부탁하오. 특히 어린 요한을.”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기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생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했던 여인으로서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 16일 이탈리아 베키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 프란치스코와 말가리다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정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보스코는 9세 때 농한기를 이용하여 카프릴리오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만을 배웠습니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내던 요한 보스코는 어느 날 생애에 결단의 계기가 된 한 꿈을 꾸게 됩니다. 이 꿈은 이후에도 약간씩 변화가 있으면서 반복되지만 성인은 이 꿈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알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1824년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립하고자 교황 비오9세를 알현하였을 때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 꿈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꿈을 계기로 사제 성소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지만 가난한 과부의 아들로써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남의 집 머슴살이, 상점의 점원 등을 하면서 신부가 되는데 필요한 공부를 하게 되고 1841년 6월 5일에 사제로 수품됩니다. 사제 수품 후 요한 보스코 신부는 그의 은인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가파소 신부의 도움으로 토리노에 있는 사제 연수원에서 신학 연구와 현대 사목에 관한 연구를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청소년들로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과정 속에서 산업화는 인구의 도시 집중, 빈민굴의 형성, 비참한 노동 조건 등 부작용을 드러내었지요. 보스코 신부는 토리노에 체류하는 동안 토리노의 골목을 방황하는 소년들, 전쟁 고아들, 감옥에서 만난 12~3세의 청소년들, 공장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소년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돈보스코 성인은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예방 교육을 중시하였습니다. 그의 예방 교육법은 사도 바오로의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13,4-7)를 기초로 합니다. 돈보스코 성인은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며 동시에 2천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이자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도처에 심은 대 영성가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야말로 청소년 교육의 어려움이 어떠한 때보다도 심화되는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청소년 교육은 돈보스코 성인이 보여준 것처럼 하느님 사랑 안에서 몸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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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젊은이들의 사도이자 고아들의 아버지 - 이기양 신부님
2007. 1. 31. 오후 1: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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