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3 주간 토요일./못난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배려하시는 당신의 자상함 - 조성호 신부님

2007. 1. 29. 오전 11:34:33

글자

다해 연중 제 3 주간 토요일.

2007. 1. 27.

토평동.

히브 11, 1-2.8-19.

마르 4, 35-41.

마르코 4장에 들어서면서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앉아 하느님 나라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고, 힘차게 따른다면 그 나라를 차지할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그리고 그 해설을 통해 좋은 땅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시고, 등불의 비유를 통해 감추어진 것을 알아듣고, 또한 세상을 밝히 빛낼 수 있는 이들이 될 것을 말씀하시고,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우리 안에 주님을 믿을 수 있는 자그마한 씨앗이 있으니 그 씨앗을 발견하고 자라게 하라는 말씀도 듣습니다. 그야말로 명쾌한 해석을 통해서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 직전에 마르코 복음사가가 말하기를, 사람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 이야기하시고, 또 제자들에게는 덤으로 더 해석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자,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예수께서는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오래전부터 교부들은 우리의 삶에 대해 ‘항해한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리고 교회를 배에 비유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난 후 당신을 따라야할 교회와 함께 삶의 바다에서 항해를 시작하십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에 대한 복습이라고 할까요? 호수 건너편은 이방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알다시피 항해할 때 늘 평온한 바다만을 만나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거친 풍랑을 만날 수 있죠.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에 대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결국 가야만 하는 길을 두려움으로 포기해서야 되겠습니까? 두려움 속에 떨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가야 하는 길이라면, 배에 탔다면, 그 배의 선장과 선원들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라는 배에 타고 있다면 그 배의 선장인 주 예수와 그분의 말씀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배의 선원인 교회의 지도자들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 38)

얼마나 불안했으면 스승이신 예수께 이렇게 대들었겠습니까? 사실 책임은 예수께 있습니다. 호수를 건너가자고 한 것은 예수님이니 말입니다. 그래놓고서 저렇게 태연하게 자고 있다니. 화가 날만도 합니다.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파도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당신은 관심도 없으십니까? 염려도 안 되십니까? 우리의 모습이죠.

그러나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분은 살리는 분이시지 죽이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니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오셨던 그분께서 그들을 죽게 가만히 두겠습니까? 사람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돼지 2000마리를 떨어뜨리신 그분께서 친히 뽑으신 제자들을 죽음 속에 버려두시겠습니까? 죽지 않을 줄 알고 계셨던 것이죠. 죽을 상황이 아니란 걸 알았던 것이죠. 당신은 우리를 믿고 아버지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당신을 평화 속에 두는 것입니다.

가만히 오늘의 복음의 상황을 보십시오. 당신의 가르침 속에 제자들은 뿌듯합니다. 이런 놀라운 권능을 지니신 분을 모시다니. 잠시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하실 때, 기쁩니다. 그분께서 주무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납니다. 이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니, 절로 기쁨의 웃음을 짓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입니다.

조금씩 물이 들이치니 불안해집니다. 풍랑이 거세질수록 자꾸만 예수 쪽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내 내 안에 있던 평화가 사라집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께서는 훌륭한 분으로, 권능을 가지신 분으로, 살리는 분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예수, 내가 바라보던, 내가 믿고 있던 그 예수는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수께서는 그들을 단련시키기로 작정하신 듯합니다. 뱃고물에 누워 주무시고 계시다는 것에서 보듯이 그분께서는 배의 뒷전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배운 만큼 앞에서 잘 해내기를 바라고, 아버지 하느님께 전적인 신뢰를 보인 것이죠. 제자들도 믿고 아버지도 믿고. 이것이 주 예수의 믿음입니다. 성서의 말씀 그대로를 사신 것이죠.

시련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시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믿음 자체를 거부한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을 보내며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이리떼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시련이 없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시련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풍랑 가운데서도 불안한 마음을 없애고 그분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토 크노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신앙이란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 안에 계시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그분이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위해 직접 개입하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교회라는 배가 결코 가라앉지 않음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외적 환난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겁을 집어 먹은 불안이나 불신앙, 정확하게 말한다면 불신앙에 의한 불안이다.”「낫기를 원하느냐」p144.

외적인 것이 우리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불안이 나를 위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마르 4, 40) 왜 네 안에 나를 두지 못하느냐? 내가 죽이는 자가 아니라 살리는 자라면, 내가 자고 있는 뜻이 어디에 있겠느냐?

그래도 말이죠.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보시고서 먼저 꾸짖기 전에 외적인 무엇 즉 바람을 먼저 꾸짖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그분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못난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배려하시는 당신의 자상함이여! 예수께서는 당신께 매달린다면 일단 외적인 것을 없애주시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신다는 것이죠.(여기에서의 바람은 우리를 괴롭히는 어떤 일들, 세력이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 40)

언제까지나 기다리실 분이시면서도 그분께서는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안타까움에 말씀하십니다. 나는 언제쯤 그 믿음을 가지게 될지.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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