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9.월
| 마르코 복음 5장 1-20절 | ||
|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 ||
| 주님의 자비를 선포함 이중섭 신부님 | ||
| 오늘 복음은 혼돈과 죄악에서 벗어나 새로이 창조된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르코 복음 5장 1-5절에는 혼돈상태에 빠진 인간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세 번이나 등장하는 무덤이라는 단어는 이 사람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강조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과 족쇄로 묶어놓았습니다. 그 당시에 쇠사슬은 매우 귀한 도구였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악령에 들린 사람을 돌보았을까요? 그것은 그 사람과 동네사람들 사이에 공존하는 폭력과 혼돈의 상태를 잘 드러내줍니다. 어떤 사회든 죄악과 폭력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습니다. 죄악을 남겨두어야 사회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이 하나도 없는 사회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군대라는 마귀에 들린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앞에서 서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그를 살리는 것이라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 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을 알려라.” 인간 앞에 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알려라.”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자비를 묵상하고 사람들에게 선포할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진리입니다. | ||
| 화해의 선물 | ||
|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후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왜, 무슨 일 있어?” 후배는 건너편에 있던 사람이 오래 전 얼굴붉히며 지냈던 사람인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단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그럴수록 더 자주 마주쳐야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후배에게 진심 섞인 농담을 던졌는데 그 말에 나도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몇 해 전 어느 피정에서, 나는 지도 신부님으로 오신 그분과 마주쳤다. 가슴은 발바닥까지 철렁 내려앉았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분은 내가 대학생 때 몹쓸 짓을 한 교수 신부님이셨다. 나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그분이 내준 과제물을 내지 않고 객기를 부렸다.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했던 분인데, 그래서 아마 더 이 신부님이라면 받아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억지떼를 썼던 것 같다. 다행히 신부님의 배려로 학점은 받을 수 있었다. 내심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그동안 벌여놓은 일들이 부끄러워 신부님을 피해 다니며 남은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세월이 흘러 까맣게 그 일을 잊어갈 즈음, 신부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고해성사를 보면서 용기를 내 그때의 일을 고백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청했다. 신부님은 변함없는 따뜻함으로 나를 위로해주셨다. 구석진 그늘에 잘못을 숨겨두고 모른 척했던 내 마음은 비로소 평안함으로 가득 찼고, 나는 그렇게 지난 날의 어린 나와도 화해를 했다. 후배와 그 이야기를 나누며 난 하느님께서 준비하시는 알 수 없는 선물들을 다시 생각했다. 하느님께서는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화해의 시간표를 짜놓으시는 모양이다. 그게 언제일지, 그게 누구일지 알 수 없지만, 올해는 하느님이 마련하신 그 화해의 선물을 기쁘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얼굴 붉혔던 일들이 많았으니 선물도 그만큼 많겠지. 김인중 |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