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쁨이 내 기쁨!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두 주간도 주님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셨나요?
지난 주일 강론은 미리 말씀드린 대로 올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딜 좀 다녀왔습니다.
제가 강론을 보내드리지 않아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죠??
늘 말씀을 잘 묵상하시고 생활하시니까요!! *^&^*
형제 자매님,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의 종류는 수 만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두 종류로 나누면 자연종교와 계시종교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자연 종교는 인간이 주어진 이성을 가지고
피조물 안에 새겨진 절대자의 의지와 자취를 찾아 더듬어 나가는 종교입니다.
불교가 대표적인 자연종교라 하겠습니다.
계시종교는 절대자가 먼저 자신을 열어 보여주고 당신의 뜻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체험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셨고
당신의 뜻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체험한
유대인들의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사제 에즈라는
이미 계시된 법전을 온 백성들 앞에서 읽어주면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줍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새길 때
그 말씀은 살아서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 안에
참된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즈라는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라고 선포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참된 회개를 한 백성들이 기쁨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유대교 회당예배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낭독하시고 그것을 설명해주십니다.
그런데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 약속된
그 구원의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수백 년 동안 기다려온
그 구원의 때가 성취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 지금 형제 자매님께 기쁨으로 다가옵니까?
만일 순며님의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오늘 복음 말씀을 단지 2000년 전의 한 사건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그 예수님께서 지금 바로 우리에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새롭게 마음을 열고 말씀을 귀담아 들어봅시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시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준비되어온 구원이
지금 여기서 완성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일 때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크신 사랑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후회와
그런 나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가치관으로 바라볼 때는
나의 삶이나 나의 능력과 직무가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질지라도
내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온갖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만일 이 기쁜 소식이 형제 자매님 안에서 살아있다면
형제 자매님께서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기쁨을 더 키워줍니다.
우리 모두가 한 지체라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각 지체들은 기쁨을 공유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기쁨을 누리면 그것은 형제 자매님의 기쁨이 될 수 있고,
또 형제 자매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나에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 할 때
교회의 기쁨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이젠 내 개인의 기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이죠!
형제 자매님,
오늘 하루,
내가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임을 자각하면서 다른 지체를 잘 사랑합시다.
그때 우리 모두의 기쁨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대구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강론] 우리의 기쁨이 내 기쁨[빅영봉신부님] / 2007.01.21
2007. 1. 23. 오후 11: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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