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심흥보 신부-
예수님께서는 오늘 유다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서에 나타난 예언을 주님의 사명 삼아 선포해주셨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의 성령은 왜 예수님을 가난한 이들에게 보내셨을까? 부자들에게 보내서 부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면 부자들이 많은 돈을 내 놓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할 수 있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기회를 제공하거나 특혜를 베풀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가시지 않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가신다.
가난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고 소박해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오늘 하루 먹고살고 자기 가족이 별일 없이 단란하게 하루를 마치기를 바란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어서 빨리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어야지 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할 뿐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이나 일하기 싫어하고 꾀를 부리는 사람들만이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 가기 위해 꾀를 부리고 범죄를 저지른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그날 하루를 살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더 주님을 기다린다. 주님께서 자기를 건강하게 해 주셔야만 자기가 일하면서 살 수 있고, 어느 누구도 자기를 생각해주지 않고 돌봐주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청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주님만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자기를 행복하게 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부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다. 자기 재산을 유지하고 증식하기 위해 많은 신경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자기 돈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돈 때문에 다가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 말고도 자신들을 기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 주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얼핏 보면, 예수님 보다 자기 재산과 그 재산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헛것과 허상의 것들에게서 위안을 느끼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더 외롭고 깊은 공허감 속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 된 것인양 기뻐하고 감사드리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주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돈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의지하여 살아가는데 혹시나 주님께서 자기의 것을 내놓으라고 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가난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성서 자체가 읽기 부담스러워 하는 것도 본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비참한 사람이다. 현세에서 자기가 의지하고 믿는 것이 결국은 다 없어지고 사라져 버리게 되거나 아니면, 자기가 먼저 그것들을 다 두고 외롭고 쓸쓸하게 죽음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고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가난한 이들에게 가서 도우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주님에게서만 희망을 이룰 수 있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가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우리가 재산을 가졌다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눈다. 그리고 재산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면 우리의 삶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어 예수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대신 이루어줄 수 있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함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전하고 주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사도들이다. 사도 바오로의 말을 빌자면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는"(골로 1, 24) 주님의 제자들이 걷는 길이다.
우리는 우리도 예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이웃과 함께 우리를 나누는 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시고 나누어 주셨기에 우리가 구원되었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나누는 것의 몇 십 배 몇 백 배로 주님께로부터 되받으리라는 것을 알고 또 바라기에 주저없이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구원해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알기에 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증거해야만 우리가 함께 다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예수님의 오른팔로서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가는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가난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구조와 굴레 속에 갇히고 묶인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 사랑의 포로가 되어 세상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사람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이득에 눈멀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눈 뜬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회의 자리와 권력과 재물에 눌려 지치고 힘들게 하루 하루를 마치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꺼이 일하며 살아가는 자유인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채움으로써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그 자리에서 이루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까?
주님 은총의 해가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을 뒤덮길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