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대신부-
일년 중 가장 짧은 복음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막상 오늘 이런 대목이 ’복음’으로 봉독될만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복음도 복음(福音)이다. 문맥상의 뜻을 살피기는 좀 어렵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산에서 선발하여 뽑아 세운 12제자를 데리고 예수께서 다시 산을 내려오시어 집으로 가셨다. 여기서 집은 가파르나움에 있는 시몬의 집을 말한다.(1,29; 2,1) 그런데 예수께서 집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또 다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는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의 필요한 청을 들어주셨을 것이며, 제자들은 스승 곁에서 시중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음식을 먹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이 미쳤다는 소문과 함께 가파르나움에서 45Km 정도 떨어진 예수의 고향 나자렛의 친척들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예수를 붙들어 데려가려 했을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12제자의 선발은 마치 주교서품식이나 사제서품식과도 같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자가 사제서품을 받았던 날(1988년 2월 6일)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혼미하다. 다음날 첫미사를 마치고도 한참 지나서 축하식장에 참석해 겨우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사실 그 때는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몰랐다. 서품식과 첫미사를 마치자마자 첫강복(benedictio prima)을 받을 신자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졌었고, 정성껏 강복을 베풀던 필자는 결국 중간에 붙잡혀갔다. 그러나 그 때 ’미친’ 일을 하다가 붙잡혀 간 것은 아니다. 아무튼 지금도 서품식과 첫미사의 날은 생애 최고의 기쁨과 은혜의 날로 기억된다. 어찌 나의 날들을 예수님의 날들과 비교할 수 있으랴.
우리가 식음을 전폐하고 어떤 일에 몰두하면 ’정신이 나갔다’거나 미쳤다’는 말을 듣게된다. 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종종 ’미쳤다’는 말을 듣게된다. 주지하다시피 예수님의 도래는 새로움의 시작이요, 그분의 활동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예수께서 몰두하시는 일은 기존의 관습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와 관계를 세우는 것이다. 예수께서 미쳤다는 소문도 바로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예수를 미쳤다고 보는 생각은 결국 당시 예수를 반대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예수의 인척과 친척들도 예수를 오해하고 불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예수의 반대자들이 백성의 지도층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이는 곧 가문의 명예와도 직결되는 것이었다. 진보(進步)와 보수(保守)는 공존(共存)하기 힘들다. 예수님의 진보적 행보(行步)에 모두가 동감하고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분명히 과욕이다. 진보는 늘 외로운 길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길을 묵묵히, 그러나 자신 있게 가실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 또한 외롭고 쓸쓸한 길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