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 독서(느헤 8,-4ㄱ.5-6.8-10)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느헤미아 총독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개축할 때에
사제 에즈라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유배에서 돌아와 국가를 재건하고,
외침에 방어를 위한 성벽을 다시 쌓고,
예루살렘 사람들의 일치와 단결을 위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율법과 계약의 말씀을 들으면서 축제를 벌이는 가운데
유다인들의 평화를 위해서는 하느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줍니다.
에즈라는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이 모인 곳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하느님의 율법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의 번역과 설명을 통하여
모두 에즈라가 읽어준 하느님의 율법을 알아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귀에 들려왔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새겨듣고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에즈라는
잔치를 벌이되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도 남겨서 보내줄 것을 권고합니다.
오늘 제2 독서(1코린 12,12-30: 12,12-14.27)는
코린토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단결,
그리고
한 분이신 하느님 아래 모두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깨우쳐주는
아름다운 훈계의 말씀입니다.
우리 몸의 각 부분이 기능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움직이듯이
우리 모두 각자의 개성에 의해 따로 움직이지만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사랑을 위해 움직여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날의 교회도 깊이 묵상해야 할 신앙의 규범(12장)을 가르쳐주는 것이며,
다음 주일에 읽히는 유명한 사랑의 규범(13장)도 함께 가르쳐줍니다.
오늘 복음(루카 1,1-4; 4,14-21)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첫 부분은 루카복음의 서론이고,
둘째 부분은 갈릴래아에서 전도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사명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는 부분입니다.
루카복음의 서론(1,1-4)에서
이미 마르코복음과 예수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자료(Q)가 있음을 전제하는 가운데
자신은 열두 사도들의 증언보다 더 확실한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복음을 쓴다고 합니다.
루카복음사가는
목격자들이 전해준 것을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다른 이들에게도
예수님에 관해 전해지는 말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주려고 복음을 쓴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 부분(4,14-21)에서 루카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에게(1,15),
천사가 마리아에게 인사를 했던 순간에(1,35),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1,41)과 아버지 즈카르야(1,67)와 시메온에게(2,25),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3,22)처럼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의 시작에도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4,14.18) 강조합니다.
성령의 복음이라고 하는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는 순간부터
예수님을 성령과 함께 하시는 분으로 설명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표현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정의와 하느님 나라의 권력이 이 세상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성령의 힘이 넘치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벌써 그분의 소문이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고 합니다.
이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에서 어릴 때부터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직접 설명해주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으로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음을,
그리고 나자렛 사람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서(LXX 61,1; 58,6; 61,2)의 말씀을 읽으신 다음
시중드는 아이에게 돌려주시고
가르침을 주시려고 앉으셨을 때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고 합니다.
평상시의 가르침이 형편없었다면 아무도 주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이
예언자들의 말을 완성시키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혀 새로운 권위 있는 가르침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기대를 걸고 예수님을 주시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 제1 독서에서 사제 에즈라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일치와 단결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줄 때에
모두 알아들었다고 했듯이
회당에 모인 이들도 역시 잘 알아들으려고 시선을 예수님께 집중했던 것입니다.
이날 읽으신 말씀의 내용을
예수님께서 직접 고르신 것인지 아니면
당일 읽게 되어있던 내용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지만
이스라엘에서 매 50년마다 노예들을 풀어주고,
사들였던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던 희년에 읽혀지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과 함께 활동하시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내용이었습니다.
메시아의 활동이란
성령과 함께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읽으신 다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직역을 하면
“이 성경은 여러분의 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선포했던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미래의 인물로서 메시아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듣는 지금 우리 가운데에서,
지금 나와 내 이웃 사이에서 만날 수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옛 계약에 의한 구원의 의미를 통해서 새로운 계약의 구원이 이해되며,
새로운 계약의 구원의 의미를 통해서 옛 계약의 구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옛 계약과 새 계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모두 예수님을 이해하게 해줄 것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옛 계약과 새 계약의 구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아의 활동이 이천 년 전에 있었고 끝나버린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의 구원 활동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나와 내 이웃 사이에서 성령께서 이루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 주시하는 이들에게서
지금도 메시아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어 있는 우리들 가운데서,
나와 내 이웃 사이에서 메시아의 활동을 볼 수 있으려면
먼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을 주시해야 합니다.
에즈라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새겨듣고 실천으로 옮기라고 했듯이
우리 역시 열두 사도의 증언보다 더 확실한 성경 말씀,
즉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웃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부터 실시하는 매월 세 번째 주일 헌금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모두 나눠줌으로써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강론] 연중 3주일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
2007. 1. 23. 오후 10: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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