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있게 하시려고
지난주부터 계속해서 제 1 독서로 히브리서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히브리서를 바오로의 서간으로 잘못 알고 ‘히브리서’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오늘날은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바오로의 서간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요. 어느 이름을 알 수 없는 교회 공동체 원로가 공동체 형제자매들에게 행한 강론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 며칠 동안 들은 4-7장은 주로 예수님이 멜키체덱의 직분을 잇는 대사제이시지만 율법에 따라 예물을 바치는 유대교의 대사제와는 구분되는 진정한 정의와 평화의 임금인 대사제로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우리를 완전히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시는 중재자이시라고 내용입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은 계약에 대한 것입니다. 성서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나누어지는 것은 오늘 우리가 들은 히브리서의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지요. 첫째 계약인 옛 계약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을 맺어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나왔을 때 맺었던 계약을 그들이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계약은 깨어졌고 이제 새로운 계약을 맺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옛 계약이 돌 판에 새겨진 계약이라면 새 계약은 마음에 새겨진 계약입니다. 돌 판은 단단한 것 같지만 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새겨진 계약은 깨어질 수 없습니다. 옛 계약이 문자와 법으로 이루어진 계약이라면 새 계약은 피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계약입니다. 우리가 매일 미사에서 듣지요.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맺은 계약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에 열둘을 세우시고 사도라고 이름하십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마르코 복음 1 장에서의 부르심과 오늘 복음인 3장의 부르심을 ‘호숫가에서의 부르심’과 ‘산 위에서의 부르심’으로 나누어서 설명하십니다. 대부분의 갈릴레아 사람들의 삶의 터가 호수였습니다. ‘호숫가의 부르심’은 삶의 터에서 일상을 사는 우리 모두의 부르심이라면 ‘산 위의 부르심’은 그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왜 열둘을 특별한 사명으로 부르셨을까요? 우리말 번역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희랍어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를 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음의 세 가지를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첫째, 당신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 둘째,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해서, 셋째, 악령들을 쫒아내는 권한을 주시기 위해서.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는 자’라는 말이지요. 복음을 선포하고 악령들을 제어하는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 당신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당신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 사도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거나 악령을 쫒아내는 모든 일이 바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일과 더불어 악의 세력과 싸우시는 일을 가장 중요한 당신 사명으로 보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을 당신이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통해 계속하십니다. 사도들은 먼저 예수님과 함께 머물면서 예수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지지 않으면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도들이 예수님과 깊이 머물면서 예수님과 얼과 혼, 정신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거나 예수님의 권능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복음을 전하고 자기들의 능력으로 악령을 쫓아내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옳은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첫째 목적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세우신 것은 첫째 당신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입니다. 첫째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둘째, 셋째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머물면서 얼과 혼으로, 마음으로 그분과 하나가 되면, 바오로 사도의 표현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이 모든 것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새겨진 새 계약을 상기하고 먼저 그분과 함께 머무는 일을 소홀히 하기 않기로 합시다. |
[강론] 함께 있게 하시려고[류해욱신부님]/2007.01.21
2007. 1. 23. 오후 11: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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