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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저희 마산지구 제 1지역 본당의 중 고등부 학생들의 제 1회 연합 예술제에 다녀 왔습니다. < 띠비 그라씨에 >-주님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 - 라는 주제로 지역 공동 사목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각 본당에서 따로 따로 개최하던 것을 한 자리에 모은 것입니다. 마산 대학의 공연장을 빌리고 조명 및 음향 장비를 갖추어서 무대를 꾸미고 본당별로 준비한 것들을 발표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학생들의 잔치였기에 부족하고 미비한 점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젊음이 발산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저희 본당의 보좌신부가 책임자이기도 했고 또 이런 자리가 그들만의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저희 본당에서는 오늘 저녁미사를 생략하고 (죄송하지만 꼭 오늘 특전미사를 하셔야 하는 분들은 5시에 있는 예술제 개막 미사에 오시라고 공지를 하고는) 몇 분의 신자들과 함께다녀 왔습니다.
교구의 청소년 국장 신부와 저 그리고 보좌신부 이렇게 셋이서 합동으로 미사를 드렸습니다. 물론 본당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공동 사목의 일환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어른 신자들의 ?! 鰥㈄뎬? 무척 저조했습니다.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부탁받고는 이 행사가 여러분만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행사이길 바란다며 여러분의 부모님들 이라도 모셔 왔으면 공연장이 꽉 차서 명실공히 우리들의 잔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아울러 이러한 행사가 가정과 본당과 지역의 유대관계를 견고히 하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습니다.
올해 저희 교구 설정 40주년을 기념하여 거행한 <여성대회>의 슬로건 중에 3.6.9 운동이 있었다. 3.은 3위 1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호긋기 생활화. 6.은 생명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며 6명에게 홍보하기.9.는 저녁 9시에 모여 가정 기도하기 이다. T.V 오락 프로에 나오는 게임의 명칭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긴 해도 내용이 건전하고 바람직한 것이어서 내년도 교구장 사목교서에서도 권장하는 운동이다. 성호긋기의 생활화는 신앙인으로서의 신원을 확실히 하고 되찾자는 것이며 생명 살리기 운동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앞장서서 전개해야 할 운동이며 이런 모든 것의 시작은 각 가정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전반에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위기의 이유들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이고 가장 큰 이유를 가정 질서의 파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혼이나 별거로 인한 파탄.핵 가족화.가정 교육의 부재 등은 다른 모든 분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각한 청소년 문제의 이면에는 많은 경우 결손 가정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고 어른에 대한 예의 범절이나 가치 판단의 혼란도 건전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 교육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예일지 모르지만 오늘도 나는 우리 중 고등학생들에게 고함을 질렀다.그렇게 강조를 해도 본당 신부를 봐도 금방 인사를 않는다.언제나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할 판이다. 내게 본당 신부로서의 권위가 없어서 일까? 아님 내가 뭘 못해 주는 것이 있어서 일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가정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보고도 어른들이 방관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 성가정 축일 >이다. 예수 마리아 요셉이라는 가족 구성원 때문에 성가정일 수 밖에 없다고 치부해 버리지는 말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자렛의 이 가정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겪었을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이 가정의 특수성 때문에 더 큰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컨데 요셉의 직업상 결코 경제적인 부를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고 물론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하였겠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로서의 삶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고 부모로서의 아들 예수에 대한 관계도 다른 가정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분명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단적인 생각일까?- 특히 성서에 나타나는 아들 예수의 행동과 말하는 품새는 부모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정이 성가정이라는 것은 성서의 결론이다. "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루카 2,51-52)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모든 것을 품어 안는 어머니,자기 맡은 임무에 충실한 아버지.이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당연히 지혜(知)와 키가 정상으로 자라고(體)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德)도 더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은 어떤가? 우선 부모로서의, 자녀로서의 가족 구성원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한다.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이다.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너무 바빠 함께 할 시간이 없다.가정은 공간적으로 가족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함께 하지 못한다면 가정으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것이고 가족 서로간의 각별한 결속력이 가정을 이루는 조건임에도 만남이 없고 대화가 없어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니 어찌 옳은 가정이라 할 수 있으랴! 부모들의 가치 판단 기준도 큰 문제이다. 공부는 좋은 학교,좋은 직장을 위한 것이고 이러한 것의 목적은 권력을 잡아 출세하고 치부를 위한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으니 아이들은 공부를 하는 것이아니고 공부를 당하는 실정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들은 교육(敎育)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육(飼育)을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자의 敎育이라는 의미는 敎 = 웃사람이 회초리로 때려 아래사람에게 효를 가르치다. 育 = 모태에서 갓 나온 어린아이를 살찌도록 기르다 이다. 소위 가정이나 학교에서 하는 교육은 이런 의미의 진정한 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올바른 교육의 부재가 거의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소신학교 시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바로 지(知) 덕(德) 체(體)이다.사제가 되기 위해서 또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이것이라는 것이다. 이 세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길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학업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기르고 기도와 영적인 생활로 성덕을 증진시키고 육체를 연마하여 체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신학교의 교육 목표였다.이런 교육이 오늘날 우리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함께 하는 공동체의 시작이며 첫 교육의 장인 가정이 제대로 서지 않는 한 사회질서 구축이든 올바른 가치관 확립이든 요원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바로 우리의 가정이 지.덕.체를 위한 첫 번째 학교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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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가정 - 지(知) 덕(德) 체(體)를 위한 첫 학교 (예수 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배진구신부님 /2006.12.31
2007. 1. 1. 오후 12: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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