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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구원받을 날이 가까이 왔도다
제 1독서 : 말라 3,1-4.23-24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오늘 누가 태어났습니까? 예수님에 앞서 세례자 요한이 태어났지요. 세례자 요한의 잉태 과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요한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와 어머니 엘리사벳 부부는 아마도 평생 아이 낳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원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는데 예수님 시대나 근래까지도 자녀 출산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축복 받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안타까움이 무척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아이에 대한 염원이 참으로 간절하였을 것이고 또 하느님께 열심한 사람들이었으니 기도 또한 눈물겹도록 바쳤을 것입니다. 한평생 자녀 갖기를 고대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 인간적인 모든 염원을 다 접고 아예 포기한 채로 살아가고 있던 이들 부부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즈카르야처럼 여러 가지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실제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상식과 이해를 넘는 요구를 하실 때는 그대로 주저앉고 맙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이상을 요구받을 때 더 이상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의 범주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많습니다. 젊었을 때는 자기의 힘을 믿거나 자기의 드러난 업적에 의지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자기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지식을 떠나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믿음을 요구하는 사건 앞에서 불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즈카르야 또한 하느님의 뜻에 불신했고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독서와 복음에서 계속 표현되고 있는 삼손의 탄생, 세례자 요한의 탄생,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참된 믿음은 나의 지식과 경험을 떠나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주님의 은총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과연 그럴까, 안 그럴까, 해도 될까, 말까 하며 믿음을 저울질합니다. 그렇게 나의 경험과 지식만을 따를 때 우리는 즈카르야처럼 벙어리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귀머거리까지도 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들리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가슴은 냉랭해집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열 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며 가슴 가득 하느님의 기운이 돌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지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깊은 믿음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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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구원받을 날이 가까이 왔도다-이기양 신부님
2006. 12. 23. 오전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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