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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3.토
| 루카 복음 1장 57-6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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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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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말 한마디 민경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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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에서나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주변이 짧은 제게는 참 부러운 대상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한 말씀 해달라 청하는 곳이 참 부담스럽습니다. 준비도 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 아찔한 순간이지요. 또 어른들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도 말이 잘 나오지를 않습니다.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무슨 말을 해야겠다 하고 준비를 했는데도 그냥 듣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나올 때가 있습니다. 소심증이 발동하는 것인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 어른들을 너무 어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통 힘든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말솜씨가 없다는 것이 한편으론 다행입니다. 말이 안 되니까 말을 잘하기 위해 준비를 더하게 되고, 말솜씨에 의존하지 않고 말의 깊이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는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약 10개월 정도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 후에 해야만 했던 말은 입으로가 아니라 손으로 써야 했지요. ‘그의 이름은 요한’이란 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믿음의 말’ 한마디를 준비케 하시려고 입을 다물게 하셨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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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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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을 끊이지 않는 몸고생, 마음고생으로 살아오신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끊임없이 밖으로만 도시던 바람 같은 아버지, 그리고 또 한 사람, 바로 저 때문이죠. 기력이 약해지시면서 아버지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시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이십니다. 그게 어쨌거나 어머니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줄어든 셈이지요. 다행스럽게도…. 푸른 수의를 입고 수의만큼 새파래진 입술로 얼어붙은 삶을 살고 있는 저는 어머니께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고통입니다. 전 지금보다 더 나이드시고 쇠약해지실 어머니 앞에 좀 더 나아진 아들의 모습으로 설 수 있을지요. 11월호 소금항아리의 글 ‘우리 엄마’를 읽고 사실 전 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처럼 감정의 흔들림이 없는 상태였더라면 무심히 읽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두 달째 소식 없는 어머니 때문에 걱정도 되고,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있던 터라 울림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꽁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소금항아리’를 펴지 않았다면 전 지금쯤 이 글 대신 어머니한테 편지를 쓰고 있었을 겁니다. 늘 그렇듯이 안부로 시작해서 돈 좀 보내달라는 말로 끝나는 편지를요…. 12월이 되면 전 그동안 배웠던 예비신자교리를 마치고 세례를 받게 되는데 이런 제가 자격이 있을는지요. 비록 세상의 밑바닥에 떨어진 후에야 찾게 된 하느님이지만 이곳을 나간 후에도 늘 함께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추운 날씨이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시길 바랍니다.
이충선 | 충남 공주교도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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