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8월 28일김김정희2006. 11. 29. 오후 6:03:47글자A−A+ * ♬ 오늘의 성인 8월 28일 ♬ * 1.아우구스티노(Augustinus) 북아프리카 타가스테 출신. 모친 성녀 모니카가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므로 그는 신앙의 분위기에서 성장, 카르타고대학 에서 수사학을 공부했는데 이 당시 그리스도교를 떠나 정신적 방황을 하였다. 15년간 지속된 방탕생활에서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보게 되었다. 치체로의 를 읽고 감명받았으며(373년), 마니교를 통해 진리를 얻으려고 9년 간이나 시도, 383년에는 수사학 교사로 로마에 갔다. 이듬해 밀라노로 이주, 성 암브로시오와의 해후로, 그의 영향,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성 바울로에 대한 독서를 통해 개종을 결심, 카시치아쿰에서의 침잠 후 387년 부활 전야에 세례받았다. 388년 타가스테에 일종의 수도원을 세우고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규칙을 만들었다. 391년 고향의 연로한 주교 발레리우스에게서 서품, 수도원 생활을 계속하였으나 곧 아프리카 교회문제의 중요인물이 되어 395년 발레리우스의 보좌주교를, 396년부터 사망 때까지는 그 곳 주교를 지냈다. 그의 탁월성은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에 있다. 사제기간 중 크게 3가지의 이단 즉, Donatus 이단, Pelagius 이단, Manichaeism 문제와 대결, 이를 통해 자신의 신학을 형성하였다. 교회와 성사, 성사적 은총 등의 문제와 관련된 교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이를 통해 서양 신학이 형성되었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구성원들의 상호 자선행위를 통해 하나를 이루며 그 구성원 때문이 아니라 목적에 의해 신성하다. 교회 안에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모두 있으며 최후의 심판 때까지 악한 자는 남아 있을 것이다. 교회 밖에도 선한 이들이 있지만 죽기전에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성사의 집행에 있어서의 `합법성’과 `규칙’사이의 구분을 발전시켰다. 속권을 신국의 일부로 받아들이나 그것은 진정한 신에 대한 숭배와 정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한에 있어서이며, 이단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의 조력을 인정하나 사형제는 간곡히 금하였다. 후기에는 펠라지오주의 논쟁에 종사, 타락과 원죄, 그리고 예정설에 대한 교의를 발전시켰는데 특히 예정설은 말기의 저서에서 형식을 갖추어 뒷날에 루터·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단과의 논쟁 을 통한 저서외에 <고백록>과 <신국론> 등의 대작이 남아있는데, 전자는 개종까지의 자서전이며, 후자는 로마가 알라릭에 의해 함락(410년)된 이후에 씌어진 최초의 역사철학서이다. 방대한 <삼위일체에 관하여>와 자신의 문학작품을 정리한 등도 전하고 있다. 후대 철학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실로 지대하여서 중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철학의 전 내용과 성야 신학의 현재의 모습을 결정 짓게 하였다. (가톨릭대사전에서) 2.알렉산델(alexander) 알렉산델은 '인간의 옹호자'란 뜻이다. 31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로 선출된 그는, 이미 73세였다. 그의 지혜와 성덕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그는 325년 니체아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와 아리우스파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나섰으며, 336년에 아리우스가 황제의 명을 받고 콘스탄티노플에 오게 되자, 그는 자신이나 아리우스가 제거되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아리우스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 날에 죽었다고 한다. 3.율리아노(Julian) 그는 골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순교자이다. 그는 군인이었는데, 비엔나의 사령관인 크리스핀이 크리스챤을 반대하자, 그가 끝까지 항거하였다.박해자가 그를 고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이 나쁜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이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 이 말을 하자마자, 형리가 그의 목을 칼로 내리쳤다. 후일, 교회는 브리우드에 그의 유해를 모시니, 연일 순례자가 끊이질 않았고, 또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은 이곳 지명이 쌩 쥘리앙-러-포브르이다. 4.헤르메스(Hermes) 그는 로마의 집정관으로서 크리스챤이 되었다가 하드리안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 시절에 순교하였다.그의 무덤은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노의 바실라에 있는데, 그의 비명을 교황 성 다마소가 썼다고 한다. 5.에드문도 에로스미스(edmund arrowsmith) 농부의 아들이었던 에드문도는 잉글랜드 헤독크에서 태어나, 브라이언에서 세례를 받았는데,그는 견진 때 받은 에드문도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의 집안이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늘 괴로움을 당하게 되자, 1605년 에드문도는 잉글랜드를 떠나, 두애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여 사제가 되려고 하였다. 마침내 그는 1612년에 서품되자, 다음 해에 곧 바로 영국 선교길에 나섰다. 그는 1622년까지 별탈 없이 랜캐셔의 신자들을 사목하였다. 그러나 곧 그는 체스터의 프로테스탄트 주교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제임스 국왕이 체포된 모든 사제를 풀어주라는 명에 따라 그도 역시 석방되자, 1624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가 근친 결혼을 주례했다는 한 청년의 밀고 때문에 그는 또 다시 1628년에 체포되었고, 가톨릭 사제로서 유죄 판결과 더불어 사형을 선고받고, 랭케스터에서 처형당하였다. 그는 1970년 교황 바울로 6세에 의하여 잉글랜드와 웰스의 순교자 40명의 한 사람으로 시성되었다. 추천 🔗 공유 스크랩🚩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