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5일 루도비코

2006. 11. 29. 오후 5: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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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성인 8월 25일 ♬ *




1.루도비코(Ludovico)

루도비코는 '빛나는 전투'란 뜻이다.

프랑스의 왕이 되는 대관식에서 루도비코는 하느님이 도유하신 백성의 아버지, 평화의 왕으로 행동할 것을 스스로 맹세했다. 다른 왕들도 물론 똑같은 맹세를 하지만 루도비코가 왕으로서의 의무를 신앙에 비추어 수행한 점이 다른 왕들과 다른 점이었다. 두 차례의 폭동을 겪은 후 그는 평화와 정의를 가져왔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루도비코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그의 어머니인 카스틸의 블랑쉬가 통치했다. 그는 19세 때 12세인 프로방스의 마르가리타와 결혼했다. 마르가리타의 건방지고 침착하지 못한 성질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사랑에 가득 찼다.

루도비코는 30세 때 십자군에 참전했다. 그의 군대는 나일강의 다미에타를 점령했으나 얼마 후 이질 때문에 허약해져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포위되어 마침내 포로가 되었다. 루도비코는 배상금과 함께 다미에타를 포기함으로써 군대를 석방시켰다. 그는 4년 동안 시라아에 머물렀다. 그는 십자군으로서도 칭송을 받았지만 더욱 큰 명성은 오히려 나라를 다스릴 때 드러나는 정의에 대한 그의 관심이었다.

그는 개혁 법안의 창시자로서 신하들에 대한 법규를 제정했다. 그는 신앙 중거의 시험 형태로 전쟁에 의해 시련을 겪었으며, 법정에서 성문화된 기록을 사용하도록 장려했다. 루도비코는 교황권을 항상 존중했지만 왕족의 이익도 수호했고 프리드리히 2세 황제를 파문하여 그를 공격하려는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명에 불복하는 대신 황제와 교황을 화해시켰다.

그는 병원을 짓고, 환자를 방문하고, 성프란치스코와 함께 나환자를 돌보는 등 그의 백성을 위해 일했다.(그는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제3회원이었음) 루도비코는 프랑스-영주와 읍민들,농부들 그리고 사제들, 기사들-를 그의 인격과 성덕의 힘으로 통일했다. 오랫동안 국가는 평화로웠으나 모슬렘이 시리아로 진격하게되자 평화는 깨졌다. 그는 1267년, 42세에 제2십자군을 이끌었다. 그가 이끌던 십자군은 루도비코의 형을 구하기 위해 튀니스로 향했다. 그의 군대는 한달 만에 질병으로 많은 사람을 잃었고 자기 자신도 이국 땅에서 44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27년 후에 시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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