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8월 23일김김정희2006. 11. 29. 오후 5:32:51글자A−A+ * ♬ 오늘의 성인 8월 23일 ♬ * 1.로사, 리마의(Rosa) 로사는 라틴어로 '장미'란 뜻이다.신대륙에서 최초로 시성된 성녀 로사는 모든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 가운데 하나인 반대를 받는 고통을 당했다. 또한 지나친 금욕의 실천을 모방하기보다는 오히려 찬미하였다. 그녀는 남아메리카가 복음화되어가던 때 페루 리마의 스페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부모와 친구들의 반대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시에나의 가타리나를 닮으려고 노력했다.성인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너무도 커서 때로는 '이상한 사람' 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참으로 경솔한 것도 같지만 하느님과의 애정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뿌리채 뽑아 버리는 철두 철미한 신념을 직접 생활에 옮긴다. 로사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너무 자주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추하게 보이기 위해 얼굴에 반점이 생기도록 후추로 문지르곤 했다. 그녀는 후에 가시관과 같이 안쪽에 장식못이 박힌 은으로 된 두꺼운 관을 머리에 썼다.그녀의 양친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녀는 온종일 정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바느질을 했다. 양친이 그녀를 결혼시키려고 하자 그녀는 부모님과 10년을 투쟁 했다. 로사의 부모는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으므로,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고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제3회원으로서 자기 집에서 동정으로 살며 고행을 계속했다. 그녀에게는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도 커서 대부분의 시간을 고행으로 보냈다. 그녀는 죽기 몇 해 전부터 집에 방 하나를 새로 지어 그곳에서 집 없는 아이들과 노인과 병자들을 돌보았다. 이것이 페루에서 사회 봉사를 한 시초였다.비록 생활과 활동이 구별되었지만, 종교 재판소의 심문자가 "그녀는 은총을 받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상식을 넘어서는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은 그녀가 내부로부터 성화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몇가지 특별한 고행을 기억한다면 그녀의 위대한 업적도 또한 기억해야만 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에 그녀는 긴 투병 기간과 혹심한 유혹과 조소를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31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 시는 그녀의 장례식을 주관했으며 저명 인사들이 그녀의 관을 교대로 운반했다. 2.돔니나(Domnina) 희랍 전승에 따르면, 순교자 끌라우디오, 아스테리오 그리고 네온은 형제들로서 이사우리아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이들 형제들은 디오크레시아노 시대에 에제아에서 살고 있던 열심한 크리스챤들인데, 계모의 고발에 따라 체포되었다.같은 시기에 돔니나와 테오닐라는 각기 어린 아이가 딸린 부인들인데, 리시아스의 총독에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하였다. 테오닐라는 자루 속에 집어넣고 물에 던지는 끔찍한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303년) ☆ 다른 축일 04월14일 - 동정 순교, 이탈리아 10월04일 - 순교, 303-310년경 10월12일 - 순교, 아나자르부스, 303년 3.끌라우디오(Claudius) 희랍 전승에 따르면, 순교자 끌라우디오, 아스테리오 그리고 네온은 형제들로서 이사우리아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이들 형제들은 디오클레시아노 시대에 에제아에서 살고 있던 열심한 크리스챤들인데, 계모의 고발에 따라 체포되었다.같은 시기에 돔니나와 테오닐라는 각기 어린 아이가 딸린 부인들인데, 리시아스의 총독에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하였다. 테오닐라는 자루 속에 집어넣고 물에 던지는 끔찍한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4. 에우제니오(eugene) 에우제니오는 '좋은 가문'이란 뜻이다.오간 혹은 오웬으로도 알려진 유진은 아일랜드의 렌스터 태생으로 글렌다루 그의 성 케빈의 친척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 노예로 끌려가 브리탠으로 갔으며, 여기서 다른 두 소년 티거나크와 코이르프르와 더불어 석방되어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킬나마낙에서 성 케빈과 더불어 은수자로서 15년을 살았다.또한 그는 티거나크를 도와서 클로니스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후 여기에 정착하였고, 이곳의 주교가 되었다. 5.필립보 베니찌(Philip Benizi)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와 파두아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과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그는 즉시 플로렌스에서 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만 일년을 일한 후, 몬떼 세나리오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회에 입회한 것이다. 그는 1258년에 사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설교로 더욱 유명해졌고, 나중에는 총장까지 되었다. 그는 수도회의 회칙을 제정하였고, 오또부오니 추기경이 그를 교황 후보자로 추천하였을 때,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어느 동굴에 숨어 살았다. 그는 리용 공의회에 참석하여 큰 영향을 미쳤으며, 성녀 율리아나를 도와서 성모의 종 수도회 3회를 창설토록 적극 지원하였음은 물론, 회원들을 극동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 1285년, 그는 총장직을 사임하고는 또디 수도원에서 은거하다가 운명하였다. 1671년에 시성되었다. 추천 🔗 공유 스크랩🚩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