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

2006. 12. 21. 오전 8:05:12

글자

 Tears in heaven 

Eric Clapton





이 노래엔 에릭자신의 슬픈  담겨있습니다.
 



 

'기타의 신' 이라 불리는
에릭 클랩턴,


1993년 그가 직접 작곡한
노래 한 곡이
전세계를 울리며 ,
미국 최고 음반상인그래미상을
여섯 개나 휩쓸었다.


영국의 작은 마을 리플리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은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음악으로 달랬다.
외할머니가 사 준 기타를 연주하면서
가수로 데뷔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만
그는 늘 고독했다.

술과 마약에 빠져 뒷골목을 헤매던 그는
이탈리아에서 로디델이라는여인을만나 결혼했다.
그들 사이에 아들 코노가 태어나는데,
그는 아들을 위해술과 마약을 끊겠다고
신에게 맹세했다.
하지만 ,결심은 매번 어그러졌다.

어느 날 콘서트가 끝난 뒤
아내 로디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당신이 코노를 데려갔나요?
창가에 있었는데 보이지 않아요."

에릭의 아들 어린 코노는
55층 아파트에서 추락했다.

에릭은 아들의 죽음이
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신의 탓이라며
몹시괴로워했다.

그 뒤 에릭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천국에서 흘리는 눈물(Tears in Heaven)을

작곡했다.

지금 에릭은아들의 죽음을 기리며
카리브해 앤티카라는 작은 섬에
7백만 달러를 들여
마약중독치료센터를 짓고
그들을 손수 돌보고 있다.

그는 아들로 인해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천국에서 흘리는 눈물 - 에릭 클랩튼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이 아빠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니 내가 널 천국에서 본다면 너는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일까 난 강해져야 할 거야.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지 나는 아직 너처럼 천국의 사람이 아니니까 천국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내 손을 잡아 줄 수 있겠니 천국에서 널 보게 되면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워 줄 수 있겠니 나는 밤이든 낮이든 이 아빠가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할 거야 왜냐하면 난 그대로 천국에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시간이 흐르다보면 낙담하게 될 때가 있지 세월이 흐르다 보면 무릎을 꿇을 때도 있어 살다보면 가슴 아픈 일이 있는 거란다. 구걸을 하기도 하고 간청하기도 하고 그런 일도 있단다. 그 천국의 문 너머에는 분명히 평화가 있겠지 그리고 천국에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단다.

Tears In Heaven - Eric Clapton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Would you hold my hand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you help me stand if I saw you in heaven I'll find my way through night and day 'Cause I know I just can't stay here in heaven Time can bring you down Time can bend your knees Time can break your heart Have you begging and please Begging and please Beyond the door there's a peace I'm sure And I know there'll be no more Tears in heaven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you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에릭 클랩튼, 그가 온다…10년만에 내한 e메일 인터뷰

 




‘기타 신(神)’은 아직도 15년 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네 살이던 아들 코너가 미국 뉴욕 맨해튼 아파트에서 실족사한 사건.

아들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는 술과 마약을 끊었다. 하지만

 “지금도 아들에게 빚지며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그가 거장답지 않게 약해 보였다.

“아들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일인지 모를 겁니다.

 아들을 위한 추모곡 ‘티어스 인 헤븐’을 발표할 생각은커녕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라는 칭호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죠.”

 

내년 1월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10년 만에 내한 공연을 하는 에릭 클랩튼(61·사진).

‘고해성사’로 시작된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아들의 죽음, 슬럼프 등 인생의 고뇌를 겪으면서

왜 그가 블루스 음악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40년 넘게 블루스 음악을 하는 것은 현세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예요.

태어나서 처음 들은 음악이 블루스였고 방황하던 사춘기에도 의지할 것은 블루스뿐이었죠.

 내 언어와도 같은 이 음악의 순수함을 믿어 왔고 언제까지나 그럴 것입니다.”

 

1960년대 ‘야드버즈’, ‘크림’, ‘블라인드 페이스’, ‘데렉 앤드 더 도미노스’ 등의 밴드 활동을 거치며

그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포크, 재즈, 사이키델릭까지 다양한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때로는 질풍노도처럼 징징대며, 때로는 기쁜 듯 가볍던 그의 기타 연주는 뮤지션의 ‘일기장’과도 같았다.

 1970년대 솔로로 변신한 그는 ‘레일라’, ‘원더풀 투나이트’ 등으로 인기를 얻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음악적 다양화를 추구하며 ‘언플러그드’ 앨범으로 미국 내에서만 1000만 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다.

 흑인 뮤지션 베이비페이스와의 합작 싱글 ‘체인지 더 월드’로 그래미상도 거머쥐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그는 점점 더 블루스에 집착하는 듯하다. 마치 ‘블루스학’을 연구하듯

 난해한 연주도 서슴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스스로의 ‘만족’ 때문이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만족이에요.

난 단 한 번도 대중적으로 기타를 연주해 본 적이 없어요.

 요즘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어딘지도 모르는 후배 뮤지션들이 있는데

그럴 거면 음악 말고 딴 일을 찾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그래도 그는 “가족이 있어 나름대로 행복하다”며 말을 이었다.

 

2002년 1월, 31년 연하인 한국계 여성 멜리아 매케너리(30)와 재혼해 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새롭게 꾸린 가정에서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늘에 있는 코너의 죽음을 기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40년 넘게 ‘기타 신’ 소리를 들어도 그는 “기타는 연습 도구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멋진 장난감”이라며

 “10년 전 내한 공연 때 팬들에게 신청곡을 받았는데 이번 공연 때 연주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점차 ‘거장’의 모습을 찾아가는 그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 “세상을 떠난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에게 할 말은 없는가” 하고. 3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가 ‘가로챈’ 해리슨의 전 아내 패티 보이드와의 삼각관계에 대한 대답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이 질문만 공란으로 남겨 놓았다. 문의

 

김범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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