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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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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본래 연극무대에서 주연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연애도 한 번 못 해 보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 제 고생은 더 심해졌습니다.
남편의 생활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어오지는 않고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내킬 때마다 한 번씩 집에
오곤 했습니다.
그러니 살림은 당연히 어려웠고, 사글세방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한동안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지만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한
중환자의 몸이었습니다.
저는 연기를 접어두고 가장을 대신해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 치료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가 새롭게 각광받을 때였던 1960년대 들어서야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주연급은 얼굴 예쁜 배우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도 이미 30대에 접어든 때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떤 역이든 마다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지만 좋은 역할을 맡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의상이었습니다.
그 때는 출연 배우들이 의상을 스스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다른 배우들은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지만 저는 의상을 구입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받은 제 출연료도 모두 약값으로 지출해야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좋은 역할이 들어와도 감독에게 역할을 바꿔 달라고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겨우 맡은 역할은 대부분이 식모, 바걸, 아낙네 1·2·3 등
하찮은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물을 머금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하면서 남편 병수발을 들어야 하니 조금도 쉴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게 살았습니다.
남편의 병수발이 길어지자 돈이 될 만한 세간은 다 팔아 치료비로 사용했습니다.
남편 병수발에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하루하루는 강행군의 연속이었습니다.
점심을 굶으며 냉수 한 그릇으로 목을 축이고 일했습니다.
사실 점심을 제대로 먹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된 일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생중에 남을 부러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른 배우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면 저는 집에 와서 아픈 남편의 식사를
챙겨 주고,
또 다시 일하러 나가는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전차비가 없어 뛰어다닐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생이 심해도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며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하느님께서 저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밥을 먹을 때면 “하느님,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이제 매일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에는 웬일인지 “하느님 사랑합니다”라는 말만 하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맛본 저는 너무도 행복합니다.
● 김지영 마리아 막달레나·연기자 |
주보 말씀의 이삭 에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