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자들에게 주님의 길을... [김기현 신부님말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시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주님의 길이 무엇일까... 라는 것을 생각해 보다가 떠오른 이야기가 있어서 옮겨봅니다. 쿼트지라는 사람의 ‘구덩이에 빠진 사람’ 이라는 글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구덩이가 너무 깊어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자 그는 도와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이 깊은 교수가 그곳을 지나다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구덩이에 머리를 들이밀고 이 운수 사나운 사람에게 훈계를 늘어놓았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사람이 구덩이에 다 빠진단 말이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소이다. 혹시 구덩이에서 나오거든 항상 발밑을 잘 살피구려.”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는 가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덕이 높은 수도승이 지나가다가 구덩이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팔을 뻗어 볼 테니 당신도 팔을 힘껏 뻗어보시오, 그래서 당신 손을 잡을 수 있으면 끌어내 주겠소.” 그리하여 두 사람은 힘껏 팔을 뻗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구덩이가 생각보다 깊었던 겁니다. 그러자 수도승은 안됐지만 하는 수 없다며 그 사람을 운수소관에 맡기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그 사람의 딱한 처지를 보고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곧바로 구덩이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어깨 위에 올라서게 한 다음 팔까지 쭉 뻗어 구덩이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주님의 길’은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길을 누구에게 가르쳐야 할까요? 내 주위의 냉담자들이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냉담 하는 청년들이 다시 성당에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성당에 나오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두 가지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냉담자 방문하기입니다. 전화 하는 것은 냉담 청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고, 방문해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그 동안의 이야기도 잠깐 들어보고 십자 목걸이 같은 작은 선물이라도 주면 성당에 한 번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시작은 안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 본당 모든 청년들과 ‘미사 나올 때 냉담하던 친구 한 명씩 데려오기’ 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임 신부님의 말씀대로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냉담자들에게 그냥 성당에 가자고 하면 갈까요? 안 가겠죠. 그들이 성당에 가게 하려면,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말씀처럼 ‘주님의 길’을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곧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위해 구덩이에 들어간 예수님처럼,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겁니다. 그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해 봅시다. 사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시간을 내어 만나고 관심을 갖는 것이 포함되죠. 그러니 자기가 아는 냉담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를 위한 기도 제목을 찾아내 봅시다. 그 기도제목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가 예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작은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 봅시다. 그러면 언제가 그의 마음이 움직여 예수님께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네 살 된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며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우리 아들~ 맘마 묵은나? 할머니는 머하노?”
“디비잔다.”
할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는 아들에 놀란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좀 바꿔줘!”
“깨우면 지랄할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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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자들에게 주님의 길을... [김기현 신부님말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시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주님의 길이 무엇일까... 라는 것을 생각해 보다가 떠오른 이야기가 있어서 옮겨봅니다. 쿼트지라는 사람의 ‘구덩이에 빠진 사람’ 이라는 글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구덩이가 너무 깊어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자 그는 도와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이 깊은 교수가 그곳을 지나다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구덩이에 머리를 들이밀고 이 운수 사나운 사람에게 훈계를 늘어놓았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사람이 구덩이에 다 빠진단 말이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소이다. 혹시 구덩이에서 나오거든 항상 발밑을 잘 살피구려.”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는 가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덕이 높은 수도승이 지나가다가 구덩이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팔을 뻗어 볼 테니 당신도 팔을 힘껏 뻗어보시오, 그래서 당신 손을 잡을 수 있으면 끌어내 주겠소.” 그리하여 두 사람은 힘껏 팔을 뻗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구덩이가 생각보다 깊었던 겁니다. 그러자 수도승은 안됐지만 하는 수 없다며 그 사람을 운수소관에 맡기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그 사람의 딱한 처지를 보고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곧바로 구덩이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어깨 위에 올라서게 한 다음 팔까지 쭉 뻗어 구덩이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주님의 길’은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길을 누구에게 가르쳐야 할까요? 내 주위의 냉담자들이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냉담 하는 청년들이 다시 성당에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성당에 나오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두 가지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냉담자 방문하기입니다. 전화 하는 것은 냉담 청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고, 방문해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그 동안의 이야기도 잠깐 들어보고 십자 목걸이 같은 작은 선물이라도 주면 성당에 한 번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시작은 안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 본당 모든 청년들과 ‘미사 나올 때 냉담하던 친구 한 명씩 데려오기’ 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임 신부님의 말씀대로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냉담자들에게 그냥 성당에 가자고 하면 갈까요? 안 가겠죠. 그들이 성당에 가게 하려면,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말씀처럼 ‘주님의 길’을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곧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위해 구덩이에 들어간 예수님처럼,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겁니다. 그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해 봅시다. 사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시간을 내어 만나고 관심을 갖는 것이 포함되죠. 그러니 자기가 아는 냉담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를 위한 기도 제목을 찾아내 봅시다. 그 기도제목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가 예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작은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 봅시다. 그러면 언제가 그의 마음이 움직여 예수님께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네 살 된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며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우리 아들~ 맘마 묵은나? 할머니는 머하노?”
“디비잔다.”
할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는 아들에 놀란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좀 바꿔줘!”
“깨우면 지랄할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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