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한겨울, 갓 태어난 아기가 말구유에 누워 있었습니다. 분명 만삭의 마리아와 남편 요셉은 여관을 찾아가 아기를 낳을 방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관의 주인도, 여관에 머물던 그 어떤 사람도 이제 곧 해산할 여인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짐승들 틈에서 아기를 낳아 구유에 눕혀야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오신 모습입니다. 인간들에게서 배척받고 외면당해 찾아간 마구간의 구유가 주님께서 처음 눈을 뜨신 곳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태어나실 구유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계층은 늘 공존해 왔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 힘 있는 이와 약한 이, 배운 이와 못 배운 이가 나뉘어 있습니다. 목자들이 찾아가 경배드린 곳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이었다면, 오늘 우리가 찾아가 경배드려야 할 마구간이 어디인지는 분명히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소외된 이들을 찾아 그들 속에서 주님을 발견할 때 성탄의 본래 의미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2천 년 전의 구유를 전설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든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해산할 여인이 찾아간 마구간 같은 현실이 있고, 헤로데와 같은 권력이 횡포를 부리는 현장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당의 구유에 대한 경배의 발걸음을 소외된 이들에게도 향해야 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한 채 여관방을 자기만 차지하려는 이기심과 욕심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의 마지막 날에 우리가 이 세상의 어디를 찾아갔는지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