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웅(다니엘)님의 사연

2014. 10. 7. 오후 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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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및 수녀원 신축

 

198391일 김충수(보니파시오)신부가 길음동본당 부임하던 날이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로 사제관 건물이 낡아 작은 비는 막을 수 있었지만 사제관 안에서는 더 큰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이 새도록 양동이 대야 등을 들고 다니느라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으며 뜬눈으로 지샌 다음날 김신부의 말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난밤을 지내 보았느냐? 견디어 낼 수 있었느냐? 하시면서, 너에게 사명을 주노니 겸손한 마음으로 사제관을 짓도록 하여라하셨다며 비가 샌 벽과 천정을 가르킨다.

 

성전도 역시 1957619일 기공하여 195869일 축성식을 가진바 있지만 비좁기도 하고 석조건물에 백회로 치장 줄눈을 하여 물이 스미고 벽과 천정이 새고 안전에도 문제가 제기되어 성전 및 사제관을 신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본당재정상 어려움 때문에 회의를 거듭하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한해를 넘기고 1984년을 맞으면서 새로이 사목회를 구성 발표하였다.

 

1) 사목협의회 위원 명단

총 재 : 김충수(보니파시오) 신부

전교수녀 : 윤판선(엘리아)수녀

고 문 : 임은규(바르나바) 선우영원(베드로) 김기홍(루까) 음두은(다테오)

사목회장 : 박찬길(다테오)

부 회 장 : 이종운(토마스 A)

부 회 장 : 노원호 (바스톨)

총 무 : 박의웅(다니엘) / 부총무 : 오관왕(라파엘)

 

사목위원에 구성되면서 한국 천주교 도입 200주년 및 시성식 행사로 행사요원을 선발하고 준비하기 시작하였으며 부활절을 넘기고는 본격적으로 점검 행사에 만전을 기하였다.

 

200주년 기념대회 및 시성식 참가

 

198456일 드디어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여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 도입 200주년 기념대회 및 103위 시성식이 전세계의 이목속에 미사와 시성식이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성하의 집전으로 성대히 거행 되었다.

 

이 땅에 빛을주제로 한 이 역사적인 행사에는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대회보다 더 많은 신자들이 참여하였으며 길음동 본당 신자들은 이날 새벽 길음교 아래서 전세버스에 분승하여 대회장 입구에 도착 도보로 질서정연하게 입장하였다. 미사도중 교황성하께서

이미 심사숙고하고 오랫동안 천주의 도우심을 처앟며 수많은 우리 형제들의 의견도 들었으므로 갈림이 없으신 천주성심께 영광을 드리고 가톨릭 신앙을 현양하며 그리스도 신자생활의 증진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권위로써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와 바오로 정하상 외 101명의 한국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판정하고 결정하여 성인들 명부에 올리는 바이며 세계교회 안에서 이분들을 다른 성인들과 함께 정성되이 공경하기를 명하는 바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03인의 우리 선조들이 성인품에 오른 역사적인 대회를 마치고 귀가할 때는 그 넓은 광장에 휴지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에 매스콤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대 행사를 끝내고 교유들은 다시 사제관과 수녀원 신축을 논의하기 시작 격론을 벌인지 3개월 만에 성전과 사제관을 신축하자는데 뜻이 모아졌다. 성전을 신축하려면 일차적으로 성전과 사제관이 붙어있기 때문에 사제관을 먼저 옮겨야 한다는 판단으로 1984610일 대지의 맨 끝쪽에 사제관 및 수녀원 건물 기공식을 가졌으며 동년 1010일 연건평 145평의 사제관 건물을 준공하였고 사제관 이전으로 넓어진 공간에 성전부지를 제외한 대지에 비좁기만 한 교육관을 증축 1230일 준공하였다.

 

2. 성전신축

 

김충수 주임신부는 성전을 신축하기 위한 첫 사업으로 성전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신축기금 모금운동으로 성전 준공시까지 지속적으로 2차 헌금을 하기로 하고 교우들에게 신입금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한쪽에서는 성전건립을 반대하는 모임 성전보존위원회를 결성하여 성전건립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개별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합동으로 모임을 갖기도 하고 여러방법으로 설득하는 노력을 하였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이유인즉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지은 성당인데 허물수가 있느냐? 아직도 멀쩡한데 왜 허무느냐며 반대를 거듭하였다.

 

또한 추기경님 앞으로 탄원서도 내고 교구청에도 여러번 투서하였다. 어느날 교구 건축위원회에서 중재할 생각으로 성전건립위원회, 성전보존위원회 다 모이게 하고 당시 교구 관리국장 박신언 신부와 교구 건축위원회 몇 분이 내방하였다. 오전9시부터 서로의 의견도 듣고 한단계씩 합의해 가던중 정오가 될 무렵 보존위원회측 한 교우가 질문이 있다 하더니 초보단계에서 합의했던 내용을 다시 들먹이기 시작하였다. 화가 치민 박신부는 아직까지 얘기를 다해놓고 이제 무슨 말이냐며 순간적으로 티테이블을 손으로 내리쳤는데 공교롭게도 테이블에 놓였던 재떨이가 튀어서 보존위원회 회장앞에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신부가 재ㄸᅠㄹ이를 사람한테 던질수가 있느냐며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사정도 하고 달래기도 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 신부님도 사과하고 이리저리 설득해서 한참만에야 회의를 진행하였지만 결국 결론도 없이 회의를 마치고 말았다.

 

한참 어려운 시기에 박찬길(다테오)사목회장이 19855월 개인사정으로 사임하고 부회장이던 노원호(바스톨)회장이 12월말까지 활동하였고 1986120일 다시 회장단만 교체 사목회장 신예용(요한) 부회장 장임원(알베르토) 형제가 임명되었다.

 

1986223일 길음동출신 신학생으로 미아5동으로 교적을 옮긴 조용국(프란치스코)신부의 첫 미사가 봉헌되었고 32일 소외되기 쉬운 할머니들의 신심활동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안나회를 조직 초대회장에 조윤신(모니카)씨를 임명하였다. 34일 오랫동안 수고한 윤관선(엘리아)수녀가 이임하고 구정희(라우데스) 수녀가 부임하였으며 37일에는 유영민(토마스) 보좌신부가 군종신부로 이임하고 김태수(요셉) 보좌신부가 부임하였다.

 

어수선한 인사도 끝내고 다시 성전신축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 때 본당 신자들의 숙원이던 성전신축안이 교구 건축위원회에서 198668일 정식으로 승인되었고 614일 성전 신축허가를 취득하여 성전신축에 진력하고자 할 즈음 1986726일부터 31일까지 중고등부 여름캠프를 철원 청양국민학교에서 실시하게 되었는데 한 학생이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공을 꺼내려고 깊은곳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본 주일학교 교사 정태원(실베리오)군이 달려들어 학생을 밀쳐내고 자신은 익사하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87일 역사상 처음 본당장례를 치른 후 주일학교는 물론 본당전체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주님안에 안식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대망의 1987년을 맞으면서 사목협의회를 개최하여 성전건립을 위한 새로운 마음의 자세로 임하고자 결의하였고 222일 신자 재교육을 위한 사순특별 강의를 마련하였다.

강사로는 함세웅 신부 십자가의 현대적 의미, 송광섭 신부 성체와 교리, 정양모 신부 예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는가?, 김충수 신부 믿는놈이 바보야

 

사순시기에 신자들의 갈길을 제시한 명강의였다고 생각된다. 부활절을 넘기면서 성전건립기금 모금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전신자 참여를 호소할 즈음 가난한 생활을 하는 91세의 할머니께서 3년동안 모은용돈 십만원을 봉헌하였고 삼십만원과 금목걸이를 익명으로 봉헌한 교우의 뜻이 알려지자 더욱 더 많은 신자들이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김충수 주임신부도 영명축일 축하예물 전액을 신축기금으로 희사함으로써 교우들의 참여도가 고조되었다.

 

한편 사랑의 나눔 바자회 행사준비 위원들이 구성됨으로써 교육관 지하에 사무실을 마련 본격적인 행사준비를 하여 마침내 1987926-27일 양일간 서라벌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바자회를 개최하였으며 특히 신자들이 기증한 기증품코너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한편 서라벌고교 체육관에서는 대한노인회 성북지회 소속 노인 천여명을 초청하여 당시 민정당 성북지구위원장 김정례 국회의원, 성북구청장, 성북경찰서장이 참석한 가운데 신자들과 신자코메디언 방일수 등이 출연하여 성대한 경로잔치를 개최 많은 선물과 함께 성황리에 끝낸 바 있으며 길음골 장날 바자회를 기폭제로 모금운동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었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저소득층은 저소득층대로 성의껏 참여하였고 그렇지 못한 교우들은 신용협동조합에 1년 또는 2년짜리 적금으로 동참하였으며 서울대교구 각 본당에서도 많은 액수의 찬조금을 보내 주었고 본당내 각 단체별 헌금, 바자회 수익금 등을 모두 합쳐도 한계가 있어 명동신협으로부터 대출을 받기에 이르렀다. 성당이 축조되어가는 모습에 용기를 얻어 서로 격려하며 모금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찬조금 내역

서울대교구 본당별 찬조금 31,780,000

본당 각 단체별 찬조금 80,975,000

구역별 음식 바자회 수익금 159,300,880

 

하루해가 짧게만 느껴지고 오나공되어가는 신축 성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교우들의 기다림 속에서도 성전보존위원회 뜻도 겸손히 받아들여 더욱 견고하고 하자없는 공사에 힘쓴결과 19871120일 새 성전을 준공, 드디어 새 성전에서 감격적인 첫 미사로 성음악 감사미사를 봉헌하였다.

 

1988년을 맞아 첫 모임으로 성모회 임원개선이 있었다.

 

회장 소길자(안젤라) 부회장 이종님(가밀라) 부회장 서부전(콘스탄시아) 총무 이경자(테레사) 서기 손인숙(고렛다) 회계 이충례(엘리사벳)

 

사순시기를 맞아 8주에 걸쳐 사순특별강의 등 영신적인 신앙생활에 노력하였다.

 

1988430일 그렇게도 오랜 숙원이던 새 성전이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주례로 반대하던 교우들도 모두 초청하여 전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을 가졌으며 미사중에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공로패가 추기경님으로부터 수여되었다.

 

공로패 수상자

 

신예용(요한) 박의웅(다니엘)

박영철(미카엘) 장순권(베드로)

 

또한 430일을 기념하여 성전건립기금을 봉헌한 모든 분들을 위한 감사미사를 매년 봉헌키로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요 교우들의 축복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 기쁨 자체였으며 환희였다. 성전의 연건평은 859평 수용인원 1200명의 대성전이었다.

 

잊혀진 이야기

 

1980년대 열심히 활동하는 젊은 자매가 있었다. 주일학교 교사로 레지오 단원으로 꾸리아 서기로 활동하던 최병옥(모제스따) 자매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만나면 활동하고 봉사하고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교무금을 내기도 하였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교우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중 늦은 나이에 약혼을 하고 어느날 약혼자와 함께 남대문(숭례문) 옆 대한빌딩 지하1층에 식당을 찾았다. 식사를 막 하려고 할 찰나 바로 그때 그 악명도 높은 대한빌딩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하여 식물인간이 된 모제스따 자매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3년을, 동네 병원에서 7년을(10) 투병하다 선종하였다. 요즘도 문득 생각날때가 있는데 모제스따 자매의 부친 최봉식(마지아)씨는 93세의 연세에도 묵묵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데 뵐 때마다 옛일이 생각이 나 안타깝기만 하다.

댓글 1

  • 2014년 10월 7일 오후 8:41

    가슴아픈 사연도 있지만 지금의 길음동성당이 있기 까지 오래전부터 애써주셨던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글이었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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