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나무라는 노인과 그런 노인을 계단에서 발로 찬 중학생.
지하철의 <노약자·장애인 지정석>을 둘러싼 우발적인 사건으로 한 노인이 목숨을 잃었고, 한 학생은 인생을 잃었습니다.. 이런 서글프게 한 사건...
오마이 뉴스에서의 기사....
지하철 노약자석 앞에 선 당신은
비워둬야 하나, 아니면 앉아야 하나.
혹시 당신은 아침에 지하철 안 빈 노약자석 앞에서 잠깐 고민을 하고 계시지는 않은지. ’이 자리에 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난 4월 22일 오마이뉴스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충정로 역에서 어떤 기자가 목격한 그 장면은 할아버지 두 명과 노약자석에 앉았던 여중생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리에 앉으신 할아버지 중 한 분이 대뜸 앉아있는 여중생을 가리키며
"노약자석은 항상 비워두는 거야. 그렇게 교육을 못 받았구만. 말 그대로 노약자석인데 버젓이 앉아 있고. 우리 때는 그렇게 행동 안했어. 요즈음 젊은 것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나. 노약자석인데 왜 앉아 있어. 그러면 안 돼"
그렇다면 노약자석 자리를 항상 비워두어야 하는가. 사람이 콩나무 시루처럼 빽빽이 서서 가는 도중에도 말이다. 이 글을 작성한 기자는 이 사건 이후 지하철을 탈 때마다 노약자 장애인 석을 잠깐식 바라보게 된단다. 그 자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 기사가 올라오자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붙기 시작했다. 강요된 양보는 문제가 있다는 의견에서부터 노약자석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면서도 경험적인 이야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60대 백발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독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철을 탈 때마다 노약자 보호석 근처에 보통 가지 않지만 다른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의 친절(나에게는 보통 불필요한)때문에 오히려 난처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앉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다른 사람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자면 미안한 마음이 들고, 사양하자면 좋은 말로 설명을 해야하고 해서 고맙지만 별로 편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냥 나를 그대로 두면 나로서는 더 마음 편할 터인데.
우리사회에는 무례한 예의나 기대감이 많고 불필요한 친절 내지 억지가 많다고 본다. 흔이 나이와 성별, 사회적 신분, 빈부 등 적절치 않은 요건이 그 근거가 된다. 대개 냉정한 서구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예의와 법규정이 분명하기 때문에 난처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각기 편하게 살 수 있다. 본인은 이런 사회가 반드시 인간적이거나 바람직한 가치세계라고 생각지 않지만 우리는 세계화 과정에서 보다 기능적인 효율성을 위해 이런 합리주의 생활방식을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 예의와 사회규약 (김동수)
강요된 효는 잘못됐다고, 그렇게 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독자의 글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약자 보호석은 없어져야 한다 노약자보호석이 아닌 자리는 양보하지 앉아도 되는 걸까? 우리는 오래 전부터 노약자가 타면 자리를 양보하는것이 당연시되어 왔고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양보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노약자 보호석을 만들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만들어 놓지 않아도 양보는 한다. 이것은 전시행정의 산물이 아닐까. 굳이 빈자리로 남겨 놓을 필요는 없다. 아무나 앉아서 가고 필요하면, 그때 가서 양보하면 되지 않는가? - 노약자 보호석 없애자 (배진환)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가 아니고 노인들에게 봉변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좀 과장된 말일까요? 우리 미덕의 감춰진 치부는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이가 많으니 자리를 당연히 양보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하는 노인들을 보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연장자에게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고 효를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자꾸 강요하는 건 왕을 모시는 조선시대의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진정한 민주사회로 가는 길은 위선적인 효를 버리면서부터가 아닐까요 - 고마워할 줄 모르는 어른들 (anti 효)
한편에서 그 자리를 반드시 유지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밝힌 한 독자는 이런 글을 올려 놓았다.
전 30대 초반이고 사회에서 말하는 장애자입니다. 목발을 짚고 다니죠. 물론 직장도 다녀요. 기자님의 글을 읽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몇 자 적습니다. 흔한 말로 가진 자는 갖지 못한 자의 조금한 필요성을 별로 느끼질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맘에 와 닿지 않는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전 할아버님의 생각에 공감하죠. 오죽하면 그런 얘길 하실까하고
저도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는 타는데 저도 누군가가 저에게 자리 비켜주면 되도록 양보하는 편입니다. 그들도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니 그 잠깐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하철을 탈때면 문 옆에 가서 서 있죠. 거긴 잡을 수도 있고 기댈 수도 있으니깐요. 그리고 전 팔은 튼튼하거든요 ^^;;;;
근데 참 사람들 안 비켜줘요.. 그래도 예전엔 덜 했는데.. 세상이 바빠진 지금은...저도 잘 다니는 편이지만 정말 힘들때가 있거든요.은근히 기대해보지만... (거의 대부분이 역시나..)
오히려 전 할머니 할아버지 타시면 다음 정거장서 내린다고 하고 자리 비워드리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편이죠..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양보해 주길 기다려 봤는데.. 아무도 양보를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 다음 정거장서 내려야만 했지만..말이죠.
그 다음부턴 차라리 내가 내리는 한이 있어도 자리를 양보하는 편이죠. 너무 두서가 없죠? 왜 이런 얘길 하냐면 어떤 분이 없애자고 하는데.. 만일 그것 마저 없다면.. 어떨지 상상이 가서요...전 그래도 자리가 없어도 잘 다닐 만큼 튼튼한 편이지만 저보다 힘든 사람들은 어떻게 다닐까 하는 생각이요. 옛날 말대로 집에만 있어 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은 모두의 것이닌깐요.. -그런자리라도 없으면 과연 어떨까???? (권동문)
조성국 기자의 기사를 읽고 아침 지하철을 타면서 고민했다는 한 독자는 이런 의견을 밝혀 오기도 했다.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탔습니다. 종점인 덕분에 텅 빈 객실로 들어가 무심히 한 귀퉁이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자리니 비워놓으라’는 간단한 안내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순간 고민했습니다. ’객실 전체가 텅 비어 있는데 굳이 이 자리를 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장애인이나 노인이나 노약자가 오면 그때 비워주어도 괜찮고, 아니면 다른 곳에 자리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신경 안 써도 되겠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러나 곧바로 ’아무리 다른 곳이 비어 있더라도, 그리고 노약자가 없는 상황이라도 가급적 그 자리는 비워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 대한 의미부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의미부여를 통해 지하철 이용자들의 뇌 속에 그 자리의 특수성을 분명하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어른에 대한 예의 내지 예우라는 차원보다는 한 단계 높여서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그 자리에 대한 의미부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사람이 북적거리든 텅 비어있든 내가 쉴 공간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그것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풍토가 일반화되었을 때, 설령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아니라 젊은 청년이 그날 따라 몸이 아주 불편한 경우에도 마음놓고 그 자리를 이용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보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꿈같은 얘긴가?)
아무튼 새로운 지하철 문화(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시사저널>을 읽는데 지하철이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더군요),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정이 통하는 지하철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노력하도록 합시다. - 오늘 아침 잠깐 고민했던 문제인데... (김종희)
지하철을 타고 오늘도 직장으로, 학교로, 혹은 어딘가의 목적지로 향해 가는 수 많은 사람들. 어떤 독자는 이곳을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치열한 삶의 현장 한켠의 노약자석에서 간혹 일어나는 충돌(?)을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
2000/04/25 오후 2: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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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곳에는 늘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