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난지도의 부활
얼마 전에 아주 반가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쓰레기 산, 난지도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풀과 나무들이 절로 자라나고 날짐승들도 제법 찾아와 둥지를 틀고 있다고 합니다.
버려진 땅, 죽어가는 땅 난지도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사이에 귀화식물의 천국으로 거듭나고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처럼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거듭나게 된 것은 쓰레기 반입이 끝난 뒤 흙을 덮은 곳에 쓰레기더미와 함께 반입된 씨앗이나 바람에 날아온 종자가 싹을 틔우면서 난지도에 풀이 나고 나비와 새들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려진 땅 난지도, 마구 훼손하고 가꾸지 않은 그 땅이 소생되고 있다니, 이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것은 웬일일까요? 자연은 이처럼 경이로운 창조의 부활을 선사하면서 인간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대한 죄스러움과 자연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6,1-15)은 예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성서말씀이 다 유익하지만 저는 오늘 복음에 대해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제 자신에 대해서 무척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나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능력이 없다. 나는 별로 쓸모가 없다”이렇게 저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외적인 조건이나 능력을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히어 꽤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복음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요한 6,11), 이 구절에 머물렀을 때 예수님의 두 손에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아닌 한없이 초라한 제가 담겨있었습니다. 그것은 난지도의 쓰레기더미와도 같이 시기, 질투, 탐욕, 자기비하로 얼룩진 제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저를 높이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자 예전의 별 볼일 없던 제가 아닌 아주 밝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이상 제가 만든 울타리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마음의 뿌리를 찾았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람이 몸무게가 다르듯이 마음의 무게도 각각 다릅니다. 내 마음의 무게는 얼마쯤 되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몸무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마음의 무게를 늘이는 데 힘을 기울인다면 아마 이 세상은 훨씬 긍정적인 세상이 될 것입니다.
마음의 뿌리! 이것을 건강하게 살려 놓지 않으면 육신의 건강은 겉포장에 지나지 않습니다.“내 안에는 하느님이 계시다.”이것이 곧 난지도의 부활이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윤해영 바실리사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알고 보니, 굿뉴스 안에 서울 주보 및 각 교구 주보가 다 떠있더군요. 음, 저번주까지 주보를 보고 직접 친 나는 얼마나 무모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 올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중에 거기까지 찾아가 주보를 읽을 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 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