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활성화하자고 해 놓고,
처음부터 이삭만 달랑 올려놓으면
책임 회피 같아 못쓰는 글이나마 제 생각을 멋대로 한 번 올려봅니다.
어제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뽑으시고
교육시키신 다음 파견하는 내용인데요,
여기에서 파견을 보낼 때는 둘씩 짝지어 보냈다고 나옵니다.
단순히 효율을 따진다면 사방으로 퍼져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을텐데 말이죠.
여기서 둘씩 짝지어 파견하신 것은 두 사람의 증언이 일치함으로써
그들이 전하는 복음선포가 참되다는 것을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의 일화 아시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들어본 이야기일 것입니다.
간단하게 약술해보죠.
어느 추운 날 산을 넘던 썬다 싱은 눈보라를 만났습니다.
그 눈보라 속에 겨우 길을 가던 중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썬다 싱은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를 들춰 업으려 하였고, 썬다 싱과 같이 가던 다른 사람은
우리도 얼어죽을 판에 이런 일로 걸음이 느려지면 다 죽고 만다며 반대하였죠.
그러나 썬다 싱은 눈 앞에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하였고, 다른 사람은 그럼 잘 해보라며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상태에서 기절한 사람을 엎고 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겠죠.
썬다 싱은 땀을 흘리며 한 발짝 한 발짝을 힘겹게 내딛고 있었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다 앞쪽에 쓰러져 있는 또 한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혼자 살겠다고 먼저 걸어간 그 사람이었고,
추위를 버티지 못해 벌써 동사한 상태였습니다.
썬다 싱과 엎힌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덮혀준 결과를 낳았고,
두 사람 다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왜 나오냐고요?
여름이라 단순히 시원한 이야기를 하자, 뭐 그런 건 아니고요.
교본을 보면 우리가 활동을 할 때, 두 사람씩 짝을 지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학생인(단장님들도 대부분 학생 신분이죠.) 특수 상황에서
시간을 맞춰 두 사람이 같이 움직인다는 것은 힘든 일일텐데요.
그래도 그 의미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교본에는 도제제도의 의미가 나옵니다.
선임자와 후임자가 같이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익힐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단순히 활동을 가르치기 위해서
둘씩 짝지어 주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것과 같이 둘의 증언이 일치할 때,
즉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활동을 할 때,
우리가 행동으로 전하는 복음이 참되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썬다 싱의 일화와 같이 둘이 같이 한다면
왠만한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보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비록 현실요건에 밀려 둘이 같이 하지는 못한다 하여도,
서로 서로 마음이 일치하여
혼자 있어도 둘이 같이 있는듯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내고,
항상 서로를 감싸주고,
다른 단원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의 활동이 진실성을 가지고,
그것이 또한 우리의 목표인
개인의 성화를 통한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본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의 복음을 들으면서,
레지오라는 존재는 성모님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군대이자,
예수님이 직접 파견보내신 사도들의 후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예수님이 다른 것은 다 필요없고 꼭 챙겨가라고 하신 물건이 있죠?
아랫 글 이삭을 읽어보셨으면 잘 아실텐데...
바로 지팡이입니다.
우리는 어떤 지팡이를 들고 가야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성모님이라는 든든한 지팡이가 존재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