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연중 제16주일
지난 부활대축일이었습니다. 아흔이 넘은 선배수녀님께로부터 수박색 매듭묵주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 연세에도 쉬지 않고 일일이 장미 모양으로 손수 엮어 만드신 그 묵주는 보기에도 기도의 염이 가득 배어있었습니다. 저는 그 귀한 묵주를 자리묵주(잠자기 전에 기도하는 묵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묵주를 선물 받으면 먼저 그 묵주를 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 날 밤, 그 선배수녀님을 생각하며 묵주를 들었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쎄, 그 묵주에서 장미향기가 그윽하게 퍼져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묵주를 코에 가까이 대보았지만 장미향기가 틀림없었습니다. 순간 성호를 긋고 방바닥에 엎드려 떨리는 가슴을 억제시키느라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평소에 묵주기도를 게을리했더니 이렇게 징표를 보여 주시는 걸까?" "아냐, 워낙 열심한 수녀님께서 만드신 묵주라 장미향기까지 나는 걸까?" "아냐, 은총은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나에게 거저 주시는 은총일까?"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도 묵주알은 계속 굴리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저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혜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날이 가도 장미향기는 여전했습니다. 저는 밤마다 황홀경에 빠져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습니다. 특급비밀이라 함부로 이야기 할 수도 없고 혼자 고민을 하던 중, 일주일이 되던 날, 친구수녀님을 은밀히 불러 조용조용 이야기 했습니다. "수녀님, 나 이상한 게 하나 있어. 자리묵주에서 장미향기가 나" "어머 그래? 어디 한 번 보여줘 봐" 조심스럽게 제 귀한 묵주를 만져 본 친구수녀님 왈! "에이, 이거 피죤 냄새잖아"
묵주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실을 피죤에 담갔다가 만든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저는 비로서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야말로 칠일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 코엔, 제 가슴엔 장미향기가 여전히 남아있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평화를 원합니다. 미움도, 불의도, 고통도, 어둠도, 가난도 없는 평안한 삶을 원합니다. 주님께서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현실적인 모습으로 찾아와 주시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특별한 관계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설마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닥칠까?" "착하게 잘 살려고 노력했는제 하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렇게 내가 만든 그릇에 그분을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 그분께서 시원하게 말씀이라도 해 주시던가요? 저의 주님은 언제나 침묵으로 계십니다. 때론 보고 싶다고, 때론 느끼고 싶다고, 때론 듣고 싶다고 투정을 해도 대답은 늘 한결같습니다. 이제 장미향기의 환상에서 깨어나, 십자가의 그 깊은 침묵을 통해 참 평화를 주시는 주님을 만나뵙고 싶습니다. 오늘 따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라는 제2독서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윤해영 바실리사 수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