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 몇개월간 일을 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있다.
민서라는 그 아이는 8살밖에 되지 않는 나이에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며칠이 멀다않고 병원에 들르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보험 심사 할일도 많아졌고 내가 챠트를 찾으러 갈 일도 많았다.
이녀석. 얼마나 골치덩이인지 챠트는 무슨 백과 사전만큼이나 두꺼운게 몇권이나 되고 보험료 문제로 시도때도 없이 심사평가원에서 전화가 오니 툭하면 그녀석 챠트를 찾으러 돌아다녀야했다.
그렇다고 그 챠트가 한군데 모여있는것두 아니다. 도대체 몇개과에 흩어져있는건지 그녀석 챠트를 한군데로 모아들일려면 기록과로, 소아과로, 응급실로, 병동으로 일층부터 구층까지 수도없이 왔다갔다해야했고 "이녀석, 나중에 얼굴이나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땀을 뻘뻘흘리면서 챠트를 찾아다니곤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보통의 아이가 사용하는 약을 쓰지 않았다. 몸에 어떤 병이 걸렸는지는 모른다. 하여튼 어린아이로써는 견디기 힘든 독한 약을 엄청나게 몸에다가 쏟아부었고 수술도 엄청나게 했었다. 덕분에 아이에게는 보험적용이 안되는 약이라는 이유로 심사평가원에서는 보험료 지급을 거부했었고 그때문에 우리팀에 소아과 담당 선생님 한분이 심사 평가원 사람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우셨다.
지난 5월쯤인가.....우연히 소아과 병동에 갈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낯익은 이름을 들었다. "민서야. 배고프지? 이제 그만 들어가자."
나를 수도 없이 골탕먹인 녀석이 휠체어에 앉아서 엄마하고 병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옥신각신하고있었다.
그 녀석은 머리에는 붕대를 감고있었고 휠체어 위에는 자기 머리보다 더큰 링겔병을 꽂고는 병실에는 들어가기 싫다고 엄마에게 웃으면서 떼를 쓰고 있었다. 녀석의 엄마도 말안듣는 아이에게 화도 내지않고 같이 장난치면서 달래기만 하고있었다.
녀석이 있는곳이 병원이었다뿐이지 얼굴의 표정 하나하나는 학교에서 뛰놀고 있을 보통의 또래들과 다르지않았다. 맑고 귀엽고 장난스런 그런 얼굴 말이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자식....귀여운 놈일쎄.넌 꼭 나을꺼다" 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면서 얼굴만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내갈길을 갔다. 말이라도 걸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말이다. 무심한놈....
그뒤로 나는 그녀석의 챠트를 찾으러 몇번인가 또 병원을 뛰어다녀야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에는 심사평가원에서 연락도 오지않고 소아과 담당 선생님도 챠트를 찾아달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얼마전 무심결에 그 녀석 다 완치되서 이제 오지않는거냐고 여쭤봤다. 어처구니 없게도 돌아오는건 녀석이 죽었다는 대답이었다.
나를 모르겠지만, 나도 그녀석 얼굴밖에는 왜죽었는지조차 알수없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많이 허전했다.
이럴줄알았으면전에 봤을때 힘내라는 한마디라도 해줄껄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렇게 아팠으면서 엄마와 웃으며 장난치는 얼굴이 아직도 지워지지않았지만 그 녀석은 그렇게 가버렸다.
이제 나를 괴롭혔던 그녀석의 챠트는 한군데 모아져 기록과 구석 사망환자 칸에 보관될것이다. 아마도 다시 꺼낼일은 없을것이고 그렇게 3년이지나면 그 두꺼운 챠트는 불태워지겠지.
하지만...그녀석 웃는 모습은 쉽게 불태워지지않을것같다. 단 한번 봤을뿐인 얼굴이지만 아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환하게 웃고있던 그자식의 얼굴.....
민서야. 이제 그만 아파하고 편하게 쉬어라. 대신 니가 할일이 아직 남아있는거 알지? 너랑 웃으며 장난치시던 너의 부모님, 많이 아파하시지 않게 니가 하늘에서 기도해줘라. 형도 여기서 널 위해 기도할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