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가 열한살이 되었을때,
밤에 잠들기 전에 내가 생각하던 나의 미래의 모습은 세계의 구장을 무대로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슛을 날리는 국가 대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사학년때 학교 축구부에 입단한 나는 오학년이 되면서 오른쪽 사이드 어택커로써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당시엔 중학 축구계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있던 어떤 중학교에서 데려가겠다는 말까지 오고가고 있었다.
당시 축구 선수로써 나의 미래는 매우 밝았고 부모님도 처음엔 반대 하셨었지만 나의 열정과 가능성을 보시고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셨다.....
오학년 가을 전국대회.
나는 그날도 스타팅 멤버로 그라운드에 나섰고 내 온힘을 다해 팀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전반이 끝나갈 무렵.난 상대 수비수의 깊은 태클에 걸려 공중에서 크게 회전 한뒤그라운드에 내팽겨쳐졌고 그 태클 한방에 나의 짧았던 축구 인생은 일년 반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왼쪽 허리와 오른쪽 무릎을 다쳐서 이제 더 이상 선수로 뛰는 것은 무리라고 병원에서 진단이 나오자 부모님께서는 육학년때 나를 사립학교로 전학을 시키셨고 난 더이상 팀에서 공을 차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온뒤 겨우 반대항 시합에나 나갈까.나의 가방에는 이제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축구화 대신에 참고서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통증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기억에서 사라지게되자 나는 매일마다 학교 운동장을 달렸고 그렇게 삼년동안 레지오를 축구부로 착각할 정도로 신나게 축구를 했었다.
그런데 지난 제주도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무리하게 걷게 되자 잊혀졌던 무릎과 허리의 통증이 되살아났고 나는 물리적인 고통보다는 나의 꿈을 왜 그리 일찍 포기할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대상없는 원망에 신음해야만 했다.
제주도에 다녀온 후 나에게는 한 가지의 과제가 주어졌다.
그것은 초등학교 오학년 이후로 비워져 있던 나의 이상을 채우는 일이다.
지금의 나의 꿈.
그것은 지금 최고의 스포츠스타가 된 이동국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가끔 텔레비를 보면 나와 비슷한또래가 저처럼 대성했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질투를 느꼈지만 이제 난 동국이를 질투하지 않기로 했다.
이동국이 자신의 꿈을 위해 그라운드를 질주할때,나에게는 분명 다른 방법으로 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 믿는다.
내 이상을 찾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