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디비나콘티누아 목적= 성서통독의 목적

2004. 9. 17. 오후 2:30:53

2
글자
 

    성서 계속 읽기에서 얻고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구세사의 대의가, 곧 하느님의 뜻이 내 삶에 계시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라 하면 연속하는,
    그러니까 이어지는·이어져 온·이어갈 생의 흐름의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하느님 세계에로 정착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잠깐 여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사시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하느님 세계에로의 토착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내 삶의 지평이 되기를 꿈꾸는 것이지요.


    이것은 단순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물론 은총의 빛이 순간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우리편에서 할 수 있는 수행을 하자는 것이지요.

    정말 경건하게 성서 말씀을 읽는 것,
    전체 안에서 그 뜻이 가장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전체를 알아들으려는 노력의 맥락 안에서

    어느 부분이, 어느 시간이 내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내게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긴 시간의 읽기를 통해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예술품이라는 사람의 면모가 비춰지고
    어루만져지고 정화되어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나온 세월이 나이별로 상황별로 골고루 만나지는 것이지요.


    수천 년의 시간으로 수천 수만의 사람의 삶으로 짜여진 역사,

    구세사의 역사 안에서
    다방면으로의 나, 인간 누구를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간과 정성을 들입니다.

    시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의 유한성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습관의 변화, 마음 통의 변화는 시간이 요구됩니다.

    창조가 완성되는 시간이고
    구원이 완성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서 읽기를 해나가는 내 몸의 적응 시간들의 중요성을 갖게 됩니다.


    성서 읽기는 정화제 역할을 합니다.

    성서를 읽으면

    우리는 원죄에게 빼앗긴 관성적인 시각을

    한번 더 회복하게 될 뿐 아니라(성 아우구스띠노)

    사건들을 분별하여

    그 속에서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렉시오디비나란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성서 전체를
    계속 읽는 것(렉시오콘티누아 Lectio continua) 으로
    독자를 아주 분명하고 유일한
    그리고 일관된 세계(하느님의 고유한 세계, 하느님의 고유한 땅) 안으로
    이끕니다.


    조셉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말 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 주는 읽기'에 대한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마음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 삶에서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결국 그는 이런 계속된 독서를 통해서 얻게되는
    일정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린다고 합니다.


    성서적인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전례의식 동안에,

    혹은 피정 동안에, 영적 쇄신 기간 동안에, 명상 혹은 묵상의 날에,

    즉 그저 잠깐 떼어낸 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아주 종종 성호를 긋고 성당 문을 나서는 동시에,
    혹은 기도를 끝낸 직후에,

    좀 전의 기도와는 전혀 딴판인 생각과 행동을 하곤 합니다.


    진정으로 깊이 있고 견실하지 못한 회개,
    그저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되는 허약한 우리들의 회개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이제부터 오로지 성령에 의해서 살기 위해
    육으로부터 영원히 떠나는 것에 있습니다.

    전체적인 삶을 통하여 육을 거슬러 영을 위하여
    싸우면서 말입니다(2고린 5,14-17; 갈라 2,19-20; 5,16-26; 에페 6,10-20).


    이것은 육과의, 세상과의 유리(遊離)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을 거슬러 선으로,
    하느님의 논리로 살아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며
    세상과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의 키를 넘어서는 거대한 강물 같은,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듯한 세상의 흐름 속에 삽니다.

    여기서 하느님을 향해 가려는
    우리 개인의 노력은 아마 물 한 방울만큼의 힘이나 지니고 있을까 하는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무능력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어림도 없어 보이는 이 노력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납니다.

    큰 나무로 자라나는 겨자씨처럼(마태 13,31-32),

    오천 명이 양껏 먹게 되는 다섯 개의 빵처럼(마태 14,13-21)

    혹은 골리앗의 이마를 맞춘 다윗의 돌팔매처럼 (1사무 17,38-51)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기에
    이 흐름을 거슬러 하느님의 흐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분께서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습니다(요한 16,33).


    다만 신앙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런 결단은 75세의 늙은 나이에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는
    아브라함의 떠남에 비길 수 있습니다.


    이런 떠남이 우리에게도 가능합니다.
    완전하고 계속적인 성서 읽기가

    육적인 우리 자신의 세계로부터 떠나서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
    주님과 함께 머물기 위한 우리의 결정에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기 위해
    대기권을 벗어날 때 처음에 드는 에너지가

    나중에 수십만 마일을, 오랫동안 가는데 드는 에너지보다 많다고 합니다.

    시작의 에너지,
    결단의 에너지- 아브라함식 출발의 에너지,
    중력을 벗어나기.


    성서를 계속해서 이어 읽기는
    모든 성서(구약과 신약)를 통하여 알 수 있는
    하느님과 그분의 세계로 우리가 전환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에게 힘과 기쁨을 더해 주면서 말입니다.


    이 성서 읽기의 성사적인 성격은
    하느님의 쓰여진 말씀과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쓰여지지 않은 말씀의 동시성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를 읽고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과 함께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충실하게 읽는 것입니다.


    굳은 땅에 부드럽게 계속 내리는 비가 서서히 스며들어
    땅을 흠뻑 적시게 되듯,

    꾸준하게 읽고 기도함으로써 살아가는 습성 자체에
    말씀이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행되는 일이나, 움직이는 사람에게서 영민하고
    열정적인 것을 보는 것은 경쾌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사고방식의 바뀜, 혹은 사람의 변화,
    혹은 문화의 변화, 곧 패러다임의 전환,

    이런 것은 지적(知的) 순발력,
    즉 속도와 능력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느리고 우직해도, 한결같은 성실함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반복적이고 지리하기까지 한 일상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내하는 것은 무척 힘이 듭니다.


    더구나 바쁜 일상 속에 꾸준함이 필요한 어떤 계획을
    자기가 스스로 끼워 넣고 실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주 단단한 의지와 자기 절제가 요구됩니다.
    큰 사람들이 지닌 고요함과 포용력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체입니다.


    성서 읽기를 통해 이런 훈련을
    누구나 한 번쯤은 꼭 해 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웃에게 귀감이 되는 훌륭한 삶이나,
    듣고 보아 정말 아름다운 삶에는 대개는 한 생이,
    그 사람의 길고 긴 삶이 들어가 있습니다.


    긴 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견고함과
    시간 속에서 정화되어 밝혀지는 진실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토대로 이 성서 읽기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느님 세계로의 문화화,
    토착화(土着化)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서를 통째로 읽기’의 최상의 의미는
    우리들을 하느님의 세계에 토착화시켜 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단지 성서 전체를 계속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가 올 것이고,

    그 지혜는 영구하고
    본질적인 지평으로
    우리 마음의 기준이 될 것이고

    우리 마음의 빛이 될 것이고,

    우리 의지의 기본 방향으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지식과 앎,
    사랑의 평가 양식이 될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양심의 영원한 표지가 될 것이며,

    우리가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데 작용하는 일관된 동기가 될 것이며,

    우리의 본질적인 지평이 되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림 : 마아가렛/안경훈 bgm : Dreams/Steve Raiman



댓글 3

  • 2004년 9월 17일 오후 5:13

    단단한 의지와 자기절제가 필요한 때 인것같습니다

  • 2004년 9월 19일 오전 12:20

    감동이네요..저도 과연 잘 할수있을까요..

  • 2004년 9월 20일 오후 5:38

    당근-

렉시오디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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