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 Divina continua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얼마나 맛보고 싶은 일인지 해보고 싶은 일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아보신 적이 있으세요?
연서(戀書)를 받으면 몇 번이나 읽을까요.
글쎄요. 대개는 읽고 또 읽어 담아보낸 마음을 다 헤아릴 때까지 읽지요.
선택해서 쓴 단어의 의미,
반복해서 쓴 단어, 혹은 문장의 의미, 생략한 표현까지... 행간(行間)에 있는 의미까지 읽어냅니다.
다 읽고도 가끔 거기에 담긴 마음 속에 잠겨있지요. 아무튼 연서(戀書) 읽기의 경우가 그 중 Lectio Divina 의 것과 닮은 듯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성서말씀을 세밀하게 읽고 또 읽고(lectio)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 또 들여다보고 하여
말씀에 담긴 메시지를 알아듣고(meditatio)
하느님께 나의 마음으로 의지로 응답을 한 후에(oratio)
이제는 그 말씀 안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잠겨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며 기다림의 자세로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뵙기를,
이 영역은 온전히 하느님의 영역입니다(contemplatio).
우리는 그저 신뢰하며 수동적으로 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을 듣기를 바라며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은총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그것은 온전히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편에서는 단지 그분께 잠시나마 그분의 시간을 떼어놓는 것을 할 따름입니다.
어떤 때는 마음에 잔잔하고 고요한 평화가 안개처럼 퍼져오며 마음을 채울 수도 있고,
까닭 모를 기쁨으로 왠지 가볍고 상큼할 수도 있고
이유도 없이 맑은 눈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개운하고 착하고 순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억지로 만들 분위기는 아니고 중요한 것은 경청한 말씀을 따를 순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온유하면서도 단호한 의지와 용기가 생기는 것이지요.
아마 이 때, 하느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하느님과 일치를 맛 볼 수 있다는 대데레사 성녀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관상의 은혜에는 아직 참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담기는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에 담기는 일이 일어난다면 관상의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귀고2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관상이란 영혼이 하느님께 이끌려 자기 자신을 넘어서 고양되는 것으로서,
영혼은 이때 영원한 감미의 즐거움을 맛봅니다.
독서가 껍질에 머무는 것이라면 묵상은 그 속 깊은 데까지 뚫고 들어가는 것이요.
기도가 갈망하게 된 바를 청원하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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