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하는 기도는 특별합니다. 지금 성서를 읽고 잘 생각해서
알아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해 하는 응답이기에 특별하다고 표현했습니다.
평상시 하고 싶던 말씀, 소원, 탄원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렉시오 하고
메디따시오 하여 알게된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기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대화>이지요. 이제는 내가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대답하는 것입니다.
...
마음에 말씀이 들어왔다면
이제 그 말씀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는 겁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고 곱씹고 되뇌는 과정을 통해 마음 한 가운데 모시고
하느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그 말씀 안에서 만납니다.
이것이 '기도하기'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내가 마주 대하는 것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현존하시는 그분을 마주 대하고
들려주신 말씀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말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나의 말이 통교를 하는 것입니다.
응답하는 그 말에는 한 사람의 마음과 삶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웃을 위한 탄원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성령 안에서
신뢰와 진실함으로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성서 말씀을 기록하는데 영감을 불어넣으신 같은 성령께서
성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데에 영감을 불어넣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말씀은 '오늘'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을 현재의 것으로 만들며 내 안에서 말씀이 활동하시게 합니다.
이 때 말씀은 내 안에서 살아나 생명을 더해 주고 길을 밝혀줍니다.
엔조 비앙키 수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룩한 독서에서 신앙인이 지니는
"예언자" 자질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효력있는
그 말씀을 메아리치게 할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왕"으로서의 자질은 역사를 "축성"하여 구원역사로 만드는 데서 솟아난다.
"사제"로서의 자질은 성서에 기록된 사건과 오늘 사이에,
어떤 성사적인 동시성을 탄생시키는 능력에서 표현된다.
이것은 말하자면 성서에 기록된 한 사건을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알아듣는 능력이다.>>
표현이 굉장히 멋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기도의 노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성령의 권능은 각 개인의 신앙의 힘에 협력하시며,
개인기도나 공동기도의 절실함에 비례하여 나타나신다>>고 하며
<<거룩한 독서에 앞서 중요한 것은 성서를 읽기 위해
자유로운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주의하여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서는 어느 한 부분을 선택 혹은 선별하여 읽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어느 한 대목만을 절대적으로 선택하여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각 대목은 전체 계시 맥락에 이끌리며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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