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란 이름이 오늘처럼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작성자 이상윤(reo5153) 번 호 6126
작성일 2010-12-16 오전 8:58:29 조회수 181 추천수 28
나는 영세 받은 지 20년이 넘는 신자다. 나의 신앙생활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나는 여태 한 번도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 긴 세월동안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한 이름은 바로 신부라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추기경의 발언에 대한 일부 신부들의 반응을 보고는 부끄러움과 절망감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과연 그들이 신부가 맞는지 묻고 싶다.
말이란 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편을 가려서 해야 한다. 그게 사람이고 하느님이 주신 이성을 가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보면, 일단의 신부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도저히 신부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할 수도 없을 만큼 저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부는 성직자다. 신부를 성직자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사제 수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따라 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때문에 사제의 삶은 언제나 모범적이어야 한다. 사제의 언행은 언제나 품위가 있어야 한다. 사리에 합당해야 한다. 상대방을 용서하고 배려하는 사랑이 녹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권위가 있고 빛이 될 수 있다. 목자로서 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 수가 있다.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있다.
그런데 추기경에 대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과 일부 원로라는 신부들의 언행은 이런 기본적인 상식과 틀을 무침히 짓밟고 있다. 한 마디로 무례하기 그지없다. 교만이라면 교만의 극치요 망언이라면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리 무지하고 무식한 신자라도 본당 신부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부모가 늙고 부족하다 해도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자식은 더물다.
나는 개인적으로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의 선택은 교회의 몫이 아니고 신자들 각자의 몫이다. 신앙의 문제가 아니고 정책의 문제다. 때문에 주교회의에서 의견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신자들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어떻게 모든 신자가 한쪽으로만 모이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의구현 사제단이, 과거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보여 주었던 열정과 용기를 국민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사제단은 알아야 한다. 그 과거는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의 아픔이었으며, 비록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 모두가 민주화의 길에 동참하였다는 것을,
그런데 아직도 그 일이, 자신들만의 공로인양 생각하고 자신들만이 정의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양 여긴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착각이며 교만과 아집에 사로잡힌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일부 신부들이 해야 할 일은 하루 빨리 그 무슨 특권의식 같은 오류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는 정치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4대강 사업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북한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주위에는 하느님의 정의가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다.
입으로 하루 종일 말하고 손으로 하루 종일 꼽아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슬픔과 아픔이 우리 가운데 있다. 우리 곁에도 있다.
그런데도 왜 그 많은 문제들은 침묵하고 외면하면서, 유독 특정한 일에만 그렇게 집착을 하는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싶어서인가. 신부지만 추기경에 반대할 만큼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이미 자신이 신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의 평신도에 불과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추기경의 발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신분과 책무를 망각한 일부 신부들의 말과 행동이라는 것을.
순명을 약속한 신부가 교회 수장을 반대하면, 그 다음에 올 문제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것은 바로 신자들이 신부를 반대하는 일이다.
이렇게 교회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 큰 과오를 범해놓고도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다. 정말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 자신은 참으로 부족한 신자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가 된 이후 신부란 이름이 오늘처럼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이 글은 정의구현사제단 홈피에 올리려고 하였으나 글쓰기가 안 되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이번 일과 관계 없는 다른 모든 신부님들께는 이 글을 올리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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