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티 성지 순례
삽티 성지는 황석두 루카 성인의 안장지입니다.
성인께서 1866년 3월 30일(주님 수난 성 금요일)에 갈매못에서 치명하셨지요.
다블뤼 안토니오 성인 주교님(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님)과 선교사 위앵 루카 성인 신부님과 선교사 오매트르 베드로 성인 신부님과 정주기 요셉 성인과 함께 군문효수로 치명하셨지요.
그 후, 황석두 루카 성인의 시신을 그분의 조카이자 양자인 황천일(요한)과 또 다른 조카 황기원(안드레아)이 비밀리에 모셔다가 삽티에 안장해드렸습니다. 그런 후에 그 두 사람은 체포되어 홍산 관아에서 문초를 당하고 한양(서울)으로 이수되어 죽음을 당합니다. 갈매못에서 함께 치명하신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과 위앵 루카 신부님과 오매트르 베드로 신부님과 장주기 요셉 회장님의 시신은 서짓골에 살던 교우들이 모셔다 서짓골에 안장해드렸는데, 그 교우들도 역시 체포되어 한양(서울)에 이수되어 죽음을 당합니다.
황석두 루카 성인께서는 선교사 페롱 신부님의 지도 하에 산막골에 교우촌을 형성하여, 거기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을 모셔서 교우들이 견진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 산막골은 지금의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 천방산 자락의 산간 오지입니다. 산막골은 황석두 루카 성인께서 거기에 교우촌을 형성하셨던 그 시대에는 홍산 고을의 관할지역이기도 하였습니다. 치명자들에 관한 기록들에서 '홍산 산막골'이라고 표기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황석두 루카 성인께서는 산막골에서부터 홍산 고을의 여기저기 산골 마을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은거하던 교우들을 찾아 지도하러 다니셨습니다. 그 분의 여동생 부부를 부덕리에 거주하게 하고 거기에 교우촌을 형성하도록 하셨습니다. 부덕리는 현재의 부여군 옥산면 대덕1리 산골입니다. 그 부덕리는 산막골에서 산 하나 넘어 서로 비빌리에 왕래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황석두 루카 성인께서는 역시 홍산 고을의 북두머니 마을과 내대 마을과 거칠 마을에도 교우들을 지도하러 다니신 분입니다. 북두머니와 내대와 거칠은 지금의 부여군 외산면 산골입니다. 지금의 만수리 공소가 있는 곳이 외산면 면소재지인데, 만수리를 옛적에는 임수대라 하였습니다. 그 임수대 공소의 전신이 북두머니입니다. 이렇게 황석두 루카 성인께서 활동하시던 지역이 지금 우리가 '하부내포성지'라 일컫는 지역입니다. 이러한 하부내포 지역에서 평신도 지도자로서 즉 '회장님'으로서 활동하신 황석두 루카 성인께서는 결국 하부내포 지역에 묻히신 것입니다. 그 분 묻히신 곳이 '삽티'입니다.
지금 충북 괴산군 연풍 성지에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지가 있습니다만, 1980년대에 연풍 성지 조성을 하면서 그 묘지가 형성되었지요. 그러나 황석두 루카 성인의 유해를 언제 연풍으로 모셔갔는지 그 근거가 없습니다. 연풍 지역에 소재한 황씨 가문 묘역에서 수습한 무명인의 유해를 황석두 루카 성인의 유해라고 단정하여 그 연풍 성지의 묘가 형성된 것입니다.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의 '삽티'에 안장된 성인의 유해를 누가 언제 충북 괴산군 연풍에 모셔갔는지 근거가 없습니다.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의 삽티 교우촌은 세월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1964년 5월 삽티에 산림 개간작업을 하던 사람들에 의하여 헐어 무너진 묘터에서 깨진 옹기 그릇 속의 작은 십자가와 작은 성모상을 발굴하게 됩니다. 병인년(1866년)에 성인께서 갈매못에서 치명하시고 삽티에 묻히신 후 98년 지난 때였습니다. 그 발굴 된 성물들은 서울 절두산 순교기념관에 기증되어 거기 지금 보관 전시되고 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 성물들이 발굴된 곳은 황석두 루카 성인과 연관된다는 개연성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더욱 애석하게도 그 성물 발굴 이후에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잊히어져 온 '삽티'였습니다.
그 성물들이 발굴된 장소는 2004년도에 다른 이유로 그 지형이 바뀌게 됩니다. 모 성씨의 문중이 그 일대를 매입하여 문중 묘역을 형성하고 입구에 사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 문중은 타 지방에 산재한 그들의 조상 묘지들을 이장하여 거대한 문중묘 공원을 형성하였습니다.
뒤늦게 천주교 대전교구의 하부내포성지 전담신부는 그 '삽티'에서 황석두 루카 성인의 유실된 안장지를 확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가능성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이미 문중 묘역으로 형성된 그곳을 바라보면서 황석두 루카 성인의 진토된 유해가 모두 사라졌음을 통탄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만 그 파손되어 사라진 안장지 옆에서 성인을 기억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묘역을 차지한 문중 측에서는 그 지역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순례오신 교우들을 안내하면서 안타까운 심정만 토로할 뿐입니다.
순례오신 교우들과 함께 황석두 루카 성인 안장지로 추정되는 외교인들의 문중 묘역 뒷산을 바라보면서 성호 긋고 절하는 게 순례 절차입니다. 성인을 향하여 절하고 돌아설 때마다 가슴이 저밉니다.
- 윤종관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