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

2012. 7. 23. 오후 4:32:08

글자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는

 

 
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1940년 1월12일자로 원산대목구를 분리해 새로이 설정됐으며 1949년 공산당에 의해 성직자 수도자들이 체포되고 교회의 모든 재산이 몰수되면서 지금까지 침묵의 교회 로 남아있다.
 함흥교구의 관할지역은 회령ㆍ청진ㆍ함흥ㆍ영흥ㆍ북청ㆍ나남ㆍ흥남 등 7개 지역이며 덕원자치수도원구는 원산시를 포함해 안변ㆍ덕원ㆍ고원ㆍ문천군 지역을 관할했다.
 함경도 지역에 본격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920년부터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이하 성 베네딕도회)가 이 지역에 진출하면서다.
 1909년 2월 당시 서울교구장이던 뮈텔 주교 요청으로 한국에 진출 서울 백동(현 혜화동)에 수도원을 건립한 성 베네딕도회는 실업학교인 숭공학교와 사범학교인 숭신학교를 설립해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성 베네딕도회는 조국 독일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었고 현실적으로 축산 목공 양조 철공만으로 수도원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어 본당 사목 을 희망했다. 뮈텔 주교는 1919년 성 베네딕도회 새 선교지로 함경도 지역을 내줬다. 교황청도 뮈텔 주교 조치를 승낙해 1920년 8월 함경도와 북간도 의란 지역을 서울교구에서 분리 원산 대목구 로 설정하고 초대 대목구장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를 임명 성 베네딕도회가 관할하게 했다.
 성 베네딕도회는 1922년 덕원에 수도원 새 부지를 매입 서울 대수도원을 이전하면서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이 탄생했다. 원산 대목구는 1940년 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로 분리될 때 12개 본당에 신자수 1만1000여명이라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원산 대목구가 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로 분리됐지만 실질적으로 함경도 교회 상황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든 본당은 그대로 성 베네딕도회가 관할했고 원산 대목구장인 사우어 주교가 초대 함흥교구장과 덕원자치수도원구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는 해방과 동시에 북한 땅에 진주한 소련군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회생할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박해를 받았다. 북한 공산당은 1947년 북조선 인민위원회 를 설립하고 토지 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실행 교회 재산을 몰수했다. 또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과 신자들은 반종교 투쟁 의 대상이 돼 억압을 받았고 1949년 정치보위부가 함흥교구청과 수도원을 점령 교회를 청산했다. 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독일인 성직자 수도자 67명은 평양과 함흥 등의 인민교화소에 수감됐다가 옥사독 강제수용소 로 이송됐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함께 죽음의 행진 을 겪으면서 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25명의 독일인 수도자들이 순교했다.

 사우어 주교 순교로 한국 성 베네딕도회의 새 책임자로 임명된 비테를리 몬시뇰은 1952년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 허락으로 왜관에 정착하게 됐다. 교황청은 1952년 비테를리 몬시뇰을 함흥교구장 서리와 덕원자치수도원구장으로 임명하고 1954년에는 연길교구장 서리직도 위임했다. 이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이동호 아빠스가 1981년 5월 제3대 함흥교구장 서리 및 덕원자치수도원구장으로 임명돼 2005년 11월21일까지 교구장직을 수행해 왔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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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0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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