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

2009. 11. 11. 오후 4:12:18

글자
[2009.11.11-일백일흔여덟번째]
  당연하다




한 남자의 취미는 제품 매뉴얼 읽기입니다.
핸드폰이나 자동차를 바꾸는 진짜 목적이
새로운 매뉴얼을 읽기 위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유별납니다.
당연히 그의 제품 사용 패턴은 정교하고 다양합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핸드폰, 자동차, 오디오 등의 숨겨진 기능을
요모조모 알뜰하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결국 기본 기능 위주로 사용하게 된다네요.
그게 그 제품들의 본질이니까요.

집 밖에서는 물 한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할 만큼
세균공포증이 심각한 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우연히 동료 과학자가 현미경을 통해
끓이지 않은 물에 서식하는 세균을
자세히 관찰하게 한 후 생긴 증상이라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된 세상이지만
그 결과 인간이 행복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는 해석은
가슴에 폭 안기는 갓난아기처럼 생생한 느낌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더 많이 맛볼 수 있게 되고, 더 많이 가볼 수 있게 되고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되고,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결과 사는 게 그만큼 더 행복해 졌다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거나 ‘노느니 장독깬다’는 말에 담긴
해학(諧謔)적 통찰도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속성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떡 생기면 제사와 짝짓기 없이 그냥 맛나게 먹고,
할 게 없으면 가만히 그 심심함을 즐길 수도 있어야,
어떤 사람이나 현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추천의 글: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돈 대신 시간을 선택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우리 부부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고 꼭 필요한 일만 하는 데 불편함을 못 느낄뿐더러 부끄러움도 없다. 케이크 한 조각도 꼭 둘이서 나눠 먹고,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의 머리는 내가 집에서 직접 깍아준다. 또 환경보호를 위해 자가용을 굴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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