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기본적으로 결론은 맞는,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기독교인으로써 고민해야하고, 그래도 서울에서 그런대로 살고있는 시민으로서 그러한 고민은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점에서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문제 제기하는 것은 관점의 문제입니다.
자본주의가 문제가 있는 제도다. ->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악마의 사회체제"라는 논리나 "이놈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지..."등의 표현은 매우 진한 색안경을 끼고 있는 말입니다.
자본주의체제(초기자본주의가아닌 현재의 자본주의체제를 말합니다) 에서는 일부의 사람들이 분명리 굶주리고 있습니다. (극히 일부냐,일부냐, 어느정도냐? 는 논외로합시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택했던 나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지않습니까? 자본주의냐, 공사주의냐하는 체제의 경쟁은 끝났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제학자/사회학자들은 소련붕괴를 "위대한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 이상은 실패했다"로 이미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실험에서 자본주의 역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수정된 자본주의, 즉 사회주의적 정책이 가미된 자본주의로 이행되게 되었습니다. 현재 모든 국가들은 국가의 재정정책,복지/사회정책을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사회주의 국가들도 자본주의 의 시장경제체제를 조심스럽게 도입하고 있지않습니까?
재정/복지/사회정책의 수준은 각국가의 자본주의 진행 정도나, 국가의 특성이나 역사 등에 따라 서로 다르게 진행되고 있죠!
어느 제도가 좋은 제도냐? 이미 의미가 없는 얘기입니다.
마르크스가 살던 산업혁명직후의 초기 자본주의 시대(1800년대)와 지금2000년대의 자본주의가 어찌 같은 자본주의입니까?
따라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르크스가 비판한 자본은 현재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200년전 비판이 오늘에도 교훈을 줄 수는 있지만 모두 옳은 것은 그리고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부의 축적에 관한 문제 : “김우중, 정주영이 오로지 착취로 부를 이룩했다. 근검절약에서 온 것이 아니다.모든 자본은 착취로부터 나온다”
무엇이 착취입니까?
착취(搾取)[명사][하다형 타동사][되다형 자동사]
1.(즙 따위를) 짜냄.
2.자본가나 지주가 근로자나 농민에 대하여 노동에 비해 싼 임금을 지급하고 그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
생산수단의 사적(私的) 소유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직접생산자에 대해 노동가치만큼의 보수를 지불하지 않고 잉여가치를 전유(專有)하는 것. 노예제사회나 봉건사회에서는 노예나 농민이 그 착취대상이었으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착취관계가 반드시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K.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착취형태를 생산수단과 노동자의 분리에서 찾으면서, 이자 및 이윤의 근원이 잉여가치에 있으며 노동력의 교환가치에 해당하는 필요노동시간을 초과하여 노동시간을 연장함으로써 생기는 차액이 잉여가치의 형태로 자본가에게 돌아간다고 하였다. 또한 차주(借主;산업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화폐를 빌리는 것은 상품을 빌리는 것과 같고 그 상품의 사용가치는 잉여가치의 창출능력에 있다고 하였다. 또 일정 자금이 대부되었을 때, 차주에 의해 그 자본에서 이윤이 창출되어 차주와 대주(貸主;금융자본가) 사이에 그 이윤이 분배되는데 이때 대주에게 돌아가는 이윤의 취득분이 이자이며 이자는 이윤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자와 이윤 사이에 변동이 없는 한 이자율은 이윤율에, 이윤율은 착취율에 정비례한다. 이자가 이윤의 일부이고 이윤의 근원이 잉여가치에 있으므로 이자의 근원은 노동가치의 착취에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 착취설의 주요 내용이다. (야후백과사전)
이윤이 발생하는 모든 기업은 노동가치보다 적은 급여를 지불하므로 모두 착취하는 기업이고, 적자기업은 아무리 일을 많이 시켜도 착취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윤이 많은 삼성전자에 취직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사람들은 착취를 당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까? 적자기업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착취를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적자기업을 찾아 가는 것인가요?
삼성전자에 하루 10시간일하고 월500만원 받는 사람과, 적자가 나는 중소기업에서 12시간 일하고 50만원 받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착취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착취란 말은 노동이 생산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대, 즉 생산도구가 빈약해서 노동시간과 노동의 강도가 생산물의 output의 대부분을 결정하던 시대에 노예제도 등으로 노동시간과 노동의 강도를 강화하여 이윤을 추구하던 시대, 또는 초기 자본주의시대에 많은 노동자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이상황을 이용해서 먹고 살기 힘들 정도의 낮은 임금으로 노동을 시켰던 시대(마르크스가 보고 자란 시대)의 이론입니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을 착취로 보는 견해는 공정한 관점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등 부자들은 모두 착취한 사람들이란 생각도 매우 삐뚤어진 생각입니다.
보통의 필부와 정주영이나 김우중씨 등은 능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명백합니다. 유능한 경영자와 보통사람은 다릅니다.
물론 그들이 부의 축적과정에서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들의 경영자적 탁월한 능력은 삼성이나 현대나 대우 직원 뿐아니라 우리나라 모든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악의적인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재벌이 된이후에는 호사스러움이 있었겠지만 그이전에는 근검/절약/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 그들의 지협적인 일부분만 의도적으로 보지말고 전체를 보고 판단합시다.
모든 사회과학,철학,종교까지도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중세 기독교가 처음에는 순수하고 성스러웠지만 나중에는 부패했고, 캘빈주의도 나중에는 물질주의,부의 숭배라는 쪽으로 변질되었으며,마르크스주의도 초기의 사회주의자들은 순수했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권력을 잡기위한 수단으로 또 그체제를 폭력으로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해버렸죠!
모든 것이 초기에는 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나타나고 순기능적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후반기로 오면 인간의 욕심에 의해 부패하고 역기능이 많아지고, 그러면 다시 그것을 비판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나오고 다시 부패하고…… 계속 반복되죠. 이게 인류의 역사 아닌가요?
헤겔도 마르크스도 이런 식으로 역사를 보지 않았나요?
마르크스도 주된 생산자의 생산도구 소유여부에 따라 역사를 구분했죠. 원시(공산사회)->고대(노예제)-> 중세(농노제) -> 근대(자본주의) -> 미래(사회주의) 이역사의 흐름은 어느 특정 사람이나 집단의 노력에 의해서 악의적으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제도로 개선하면서 그시대의 필요에 따라 이행해 가는 것이죠.
그 자신은 사회주의가 가장 완벽한 제도라 했으나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 실험결과는? 다시 자본주의를 받아 들이는 것으로 실패했죠. 물론 자본주의도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개선되어 가고 있죠. 변증법의 정반합으로….
마르크스의 비판도 상당히 많은 점을 말하고 있으나 그 비판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진리였을지 모르나 현재는 분명 아닙니다. 현재에는 마르크스의 비판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는데요,
결론적으로 이글이 대학교 1학년 학생의 글이라면 칭찬해줄 수 있습니다. 그의 뜨거운 가슴을, 그의 사회정신을 그의 현실비판정신을 칭찬하겠습니다. 1900년대 초기의 유럽사회에서 사회주의를 모르면 무식한 사람 취급해서 지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전후 일본에서도 사회주의가 크게 유행했었죠.
그러나 20대 초반의 열혈 청년도 아니고 최소한 30대이상의 사람일텐데 사회를 너무 삐뚜루 보고있군요.
일부러인지 큰 것은 보지 않고 작은 것을 보고 크게 말하고, 부자들을 공격해서 부자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고, 종교의 문제점도 너무 한쪽으로만 보고있군요. 미국관도 매우 급진적이군요.
다른 부분도 비판할 부분이 많이 있으나 글쓰기 힘들어서 이만 줄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