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다시 한 주간이 시작되는 그 첫날인 월요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인가 시작할 때, 새로운 각오로 임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기대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런 새로운 각오나 기대는 대부분 지난 과거보다는 현재나 미래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겠지요. 즉 희망적인 출발은 원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 주간의 첫날을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려 합니까?
교회 달력으로 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지주일을 그 시작으로 하여 당신의 지상생활의 목적인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그 신비를 경축한다는 의미에서 거룩한 주간이라 불리는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성주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지상 사명을 다 마치시는 것을 뜻하는 예루살렘 입성부터 시작하여 인류 구원의 완성인 부활을 그 절정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 성주간을 지낸다는 것은 인류 구원의 완성인 부활이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들은 내용은 '그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독서 내용도 당신 아들의 지상에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이사야 예언자를 시켜 이미 예언된 삶이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즉. 이 모든 과정은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한 당신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주간 동안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시려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그 뜻을 이루고자 노력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라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는 주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우리의 이 하루가 그저 그렇고 그런 하루, 그제나 어제 그리고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하루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혹시 이 성주간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을 자신과 별로 관계가 없는 교회의 하나의 연중 기념행사로만 생각하시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잠시 멈추시고 밖을 한번 내다 봅시다. 무엇이 보입니까? 우리 주위에는 올해 유달리 봄을 시샘하는 바람과 추위를 이겨낸 꽃들이 피어 있을 것입니다. 이 꽃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꽃들이 아닙니다. 조금만 찬찬히 들어다 보세요. 거기에는 정말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어떤 섭리일까요? 우리는 그저 대수롭잖게 보아 넘겨 버릴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물어 봅시다. 봄에 피는 꽃들은 왜 잎이 피기도 전에 꽃부터 핍니까? 다른 계절에 피는 꽃과 달리 개나리, 진달래, 벚꽃, 산수유, 목련 등 대부분의 봄에 피는 꽃들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핍니다. 그리고 여름철에 나는 과일과 가을에 나는 과일들은 왜 그토록 수분이 많으며 달고 향기롭겠습니까? 그에 비하여 가을에 나는 과일들은 대부분 껍질이 단단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러한 사실 안에는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가을 내내 꽁꽁 닫혀 있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여 잎이 피기도 전에 꽃부터 보여 주려는 하느님의 인간사랑 아닐까요? 더운 여름날 인간들에게 시원한 사랑을 베풀려는 당신의 깊은 마음 아닐까요? 그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열매들은 긴 겨울동안 썩지 않게 보관하여 인간을 배고프지 않게 하시는 하느님의 배려가 아닐까요?
이처럼 우리의 하루, 우리의 한 순간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섭리로 돌보아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잊고 산다면 우리는 또다시 이 하루, 이 한 주간이 그 전처럼 또 그렇고 그런 나날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내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성스러운 하루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나아가 오늘의 우리 작은 행복하나라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하루가 된다면 우리는 이미 부활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짐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 부산교구 박용조 신부
Re:사랑의 완성(3/21)
2005. 3. 21. 오후 7: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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