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반석(2/22)

2005. 2. 22. 오전 9:14:32

글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
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고 말씀하신다. 본래 법의 근본 이념은 사회를 유지하
고 원활히 나아가게 할 수 있도록 취한 공동의 약속이며 그것을 지킴으로써 이
사회가 최소한 유지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최선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다. 이 법을 어기면 그것이 최소한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는 자체가 이
미 부자유스러운 것이다. 囚人의 의미를 보면 법 밖으로 나간 사람이 갇힌 모습
이 아닌가?

율법은 본래 십계명에 근거하여 나왔으며, 모세 오경 전체에 나타나있다. 그 근
본 정신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는데, 본래의 정신은 잊어
버리고 율법의 조항만을 내세워, 사람을 위하는 법보다도, 마치 인간이 법을 위
해서 있는 것처럼 되어, 짐만 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것이 바리사이적
인 모습이요 율법주의적인 모습이 되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기들만
이 율법대로 산다고 과시하였고, 선행보다는 율법을 내세워 하느님과 이웃에 대
한 사랑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편안한 멍에로, 가벼운 짐으로 바꾸어 주셨다. 즉 600여 가지
나 되는 율법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계명과 남에게서 바라
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황금률로 환원해 주셨다. 이제 율법의 근본정신을 알
고 그것을 가르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
고 지키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남에게 보이기 위
한 자선, 기도, 단식을 하고 그것을 통하여 높은 자리만 탐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에 본받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높은 자리의 의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
을 받는 위치로 스승이라는 호칭, 아버지라는 호칭, 지도자라는 호칭을 추구하
는 그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가 드러나는 자격은 위선적인 삶
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어 섬기
는 사람이 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자신의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 효과적인 삶을 산다는 것
은 불행한 삶이다. 다른 이에게 보이는 삶을 살기 때문에 하느님은 별 상관이 없
다. 그러기에 결과적으로 하느님께도 안중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은 자
신이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도 없어진다는 말이다. 먼
저 우리 신앙인들이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고 세상을 위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될
때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도 법의 조항에 얽매이
지 않고 그 법을 통하여 하느님 앞에 더 큰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사순절이 되도록 은총을 청하
자.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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