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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집에서 마르타의 봉사, 마리아의 관상, 라자로의 참회, 이 세 가지를 사랑의 법으로 어떻게 나누어 받는지 생각해 봅시다. 완전한 영혼을 지닌 이는 누구나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받은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이들은 거룩한 관상에 전념하고, 어떤 이들은 형제들을 섬기는 데 헌신하며, 어떤 이들은 죄의 상처를 안고 무덤 속에 잠든 사람처럼 쓰라린 마음으로 살아온 날들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으로 마리아는 자신의 하느님을 드높이 경건하게 체험하고, 마르타는 너그럽고 자비롭게 이웃을 섬기며, 라자로는 겸허하게 자신을 가련히 여겨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비록 이 성읍에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 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의로움으로 제 목숨만 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들은 아들도 딸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현혹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디 어느 누구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어떤 관리나 운영을 위임받지 못한 이들은 모두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거나, 분명히 라자로와 함께 무덤에 갇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 마르타는 많은 일을 걱정하고 많은 이를 위하여 염려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그대는 둘 가운데 하나는 해야 할 것입니다. 걱정해야 할 일이 전혀 없으면, 주님 안에서 더욱더 기뻐해야 합니다. 그대가 아직은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일을 걱정 하지 말고, 바로 그 예언자가 말하는 대로 그대 자신에 대해서만 걱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마르타 자신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으로, 그는 충실한 사람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순수한 지향으로 해야 충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올바른 행위가 됩니다. 제 눈으로 많은 것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이득을 얻습니다. 제 마음대로만 움직이는 사람들이 봉헌하는 모든 것은 더럽혀져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뜻은 그 봉헌물에서 드러납니다. 이제 저와 함께 사랑 노래를 들으러 오십시오. 신랑이 신부를 어떻게 부르는지 봅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떠한 것도 빼놓지 않고, 여기에 어떠한 것도 더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랑이 말합니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나의 비둘기여!” 주님의 이득만을 바라며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충실하게 내어놓는 이가 바로 애인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작은 일 하나일지라도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버릴 때마다. 그는 영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으로 비 추듯 찬란히 빛나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어, 주님의 영광이 빛나는 얼굴로 드러나는 이가 아름다운 여인 아니겠습니까? 마치 돌 속에 묻힌 것처럼, 바위틈에서, 벼랑의 동굴 속에서 울며 탄식하는 이가 비둘기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