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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모차르트,
1월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부활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맞는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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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를 부르는 별칭이다. 인구 15만명의 아담한 도시 잘츠부르크에는 축제극장, 주립극장, 모차르트 연극원, 마리오네트 인형극장 등 세계적인 유명 극장이 많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2006년을 ‘모차르트의 해’로 정하고 비엔나와 잘츠부르크에서 범국가적인 생일 축하파티를 개최한다. 그러나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행사의 중심지는 아무래도 그가 태어나고 자란 잘츠부르크다. 잘츠부르크 역사는 1756년 1월 27일을 기점으로 나뉘어진다. 비록 대주교의 통치를 받던 도시국가 잘츠부르크가 1816년 오스트리아 영토로 편입되었지만 이는 역사학자의 연대기적 서술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날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길인 게트라이데로(路) 9번지의 노란색 집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사진> 잘츠부르크는 1756년 이전과 이후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1756년 이전까지만 해도 잘츠부르크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시골 동네였다. 잘츠부르크는 도시 자체로도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중세의 은둔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러나 한 위대한 천재 음악가가 태어나면서부터 잘츠부르크는 무질서하고 속물스러운 도시에서 품격있고 중량감 있는 도시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천재 음악가가 스물다섯 살에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로 갔지만 그의 이름은 잘츠부르크와 동격(同格)이 되었다.
매년 500만명이 모차르트 생가 방문
기자는 지난 6월 21~22일 게으른 산책가가 되어 게트라이데로를 어슬렁거렸다. 잘츠부르크 관광에서 모차르트 생가 앞의 작은 광장(하겐아워)은 만남의 장소가 된다. 잘츠부르크 관광은 모차르트 생가에서 시작하고 생가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 하겐아워 광장에서 차를 마시면서 모차르트 생가를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표정을 살펴보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모차르트 생가를 쳐다보는 표정에는 경외감이 가득했다. 모차르트 생가의 입장료는 6유로(약 7000원). 모차르트와 그의 가족이 살던 집에는 다양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만든 음악 교본, 모차르트가 처음 사용한 바이올린, 아버지가 직접 만든 모차르트가 가지고 놀던 카드, 부인 콘스탄체의 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음악 애호가들은 전시물 하나 하나에서 숨이 멎을 듯한 감격에 휩싸인다. 잘츠부르크에 머무는 이틀 동안 모차르트 생가를 두 번 들러보았다. 모차르트 일가가 신시가지로 이사를 결정한 것은 집이 너무 좁아서였다. 2005년에 와서 봐도 그 집은 너무 비좁다. 250년도 더 된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내가 이렇게 구둣발로 나무바닥과 계단을 마음대로 밟고 다녀도 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매년 수백만 명이 찾아와 나처럼 돌아다니면 건물이 무너져내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잘츠부르크의 어느 곳에서든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건물이 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채다. 해발 542m 높이의 산 위에 오만하게 우뚝 서 있는 성채. 1077년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짓기 시작해 역대 주교들이 계속 확장해 모차르트가 태어나던 1756년에 마침내 완공되었다.
잘츠부르크와 모차르트는 동격
종교와 정치가 일치되던 중세시대에 호엔잘츠부르크 성채는 권력과 정부의 상징이었다. 중생을 굽어보는 위치에 있던 잘츠부르크의 종교권력은 모차르트가 탄생한 1756년에 이르러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고들 말한다. 호엔잘츠부르크 주교는 위대한 음악가에게 관제(官製) 음악을 강요했고 모차르트는 대중 음악을 갈망했다. 종교권력과의 갈등은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게 만든 원인의 하나가 된다. 영원불멸의 천재 탄생 250주년을 목전에 둔 잘츠부르크. 지금 이 도시를 찾는 그 누구도 성채에 살면서 위대한 예술가 위에 군림하던 중세의 권력자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관광 가이드가 레지덴츠 궁전에 어떤 권세가와 어떤 대주교가 살았는지를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의 이름은 모차르트 광장에서 모차르트의 동상을 만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사진> 피부색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관광객들은 잘츠부르크와 동격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모차르트만을 기억할 뿐이다. 잘츠부르크는 권력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공간이다. 성채는 여행객에게 이정표가 되고 잘자흐강이나 미라벨 정원에서 찍는 기념사진 속의 배경그림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이제 한낱 유머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파노라마 투어스’의 미국인 가이드는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로케이션 관광에 참여한 관광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탑이 세 개 있는데, 가장 높은 탑에 창문이 있는 것 보이시죠. 뭐로 보입니까?” “…” “주교의 토일렛(화장실)입니다.” 관광객들은 버스가 떠나갈 듯 웃어댄다. 잘츠부르크에 오면 그 누구도 ‘모차르트’를 벗어날 수 없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모차르트 생가이고 그 다음이 모차르트광장에 서 있는 모차르트 동상이다. 잘츠부르크시는 분야별로 중요한 건물이나 구조물에 모차르트라는 이름을 하나씩 부여했다. 모차르트 연극원, 모차르트 키노 극장… 하는 식이다.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1965년에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가 트랩가의 7명의 아이들과 도레미송을 부르면서 잘자흐강의 철제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1903년에 놓여진 이 철제 인도교의 이름은 ‘모차르트 슈테그’. 잘츠부르크 시민들은 모차르트 슈테그를 걷거나 자전거로 넘나든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기념품은 단연 ‘모차르트 쿠겔른 초콜릿’과 ‘모차르트 초콜릿 술’이다. 포장지마다 모차르트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포장지를 찢을 때마다 모차르트 얼굴이 찢기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다. 천재 작곡가는 영혼을 일깨우는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혀끝의 달콤함까지 선사한다. 위대한 음악가의 초상을 초콜릿과 술병에 담아 파는 상술에 대해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많다. 어떤 이는 수준 높은 문화를 지나치게 드러내면 때로 불공평한 독점이 발생하게 된다고 이런 현상을 비판한다. 잘츠부르크 시내 벽에는 ‘MOZART 2006 250th anniversary’ ‘MOZART 22’ 등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또 구시가 곳곳은 ‘모차르트의 해’를 맞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굴착기 소리가 소리가 요란하고 먼지가 날린다. ‘모차르트의 해’에 잘츠부르크에서는 일년 내내 모차르트 관련 음악회와 축제가 벌어진다. 이들 중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전시회 ‘비바! 모차르트’(2006년 1월 27일~2007년 1월 7일)를 들 수 있겠다. 구시가의 SMCA박물관 신축빌딩에서 1년 동안 열리는 대형전시회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트기록보존소에 소장되어 있는 진귀한 물품들과 외국에 나가 있는 물품도 임대해 전시한다. 특히 모차르트 첫 작품의 악보도 대중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모차르트에 관련된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전시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잘츠부르크시는 이 전시회를 위해 박물관을 신축했을 정도니 여기에 쏟는 정성이 어느 만큼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개막을 알리는 음악회는 ‘모차르트 주간’(2006년 1월 20일~2월 5일)이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지휘자·솔로이스트·가수·앙상블 등이 ‘모차르트의 해’의 개막을 기념한다. 특히 1월 27일 모차르트 생일에는 니콜라우스 하르논코트가 지휘하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열린다.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의 모차르트 오페라’(7월 23일~8월 31일)는 음악 애호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프로그램이다. 카라얀이 만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미 그 자체로도 최고의 음악축제로 명성이 자자하다. 여기에 모차르트가 쓴 오페라 작품을 결합했으니 더이상 말이 필요 없다. 축제극장에서는 모차르트가 무대를 위해 작곡한 22개 전작품이 공연된다. 여기에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19개 작품도 포함된다. 40일간 진행되는 대장정에는 세계 정상급 지휘자들이 참가하는데, 지휘자 한 사람이 오페라 한 작품씩을 맡아 지휘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2006 잘츠부르크 음악축제를 ‘모차르트 오페라 올림픽’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의 행사 관련정보 www.MOZART2006.net 참고) 음악가 모차르트의 위대함은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의 위대함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에서 설명된다. 한 대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그에게 물었다. “아인슈타인씨, 죽음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인슈타인이 대답했다.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 모차르트가 내년 1월 잘츠부르크에서 부활한다.//
조선일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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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잘 읽어보셨습니까, 언젠가 제가 소개를 했을텐데 기억하실런지요, 내년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야심적으로 기획한 모짜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사실 탄생 250주년이 뭐 특별한 일입니까만, 아직도 모짜르트란 브랜드가 가져다주는 이익이 이렇듯 막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모짜르트 이름이 들어간 상품은 모두 막대한 이익을 벌어다주니 이런 큰 이벤트를 통하여 더 관광수입과 문화상품 수익을 올려보겠다는 것이지요!
제가 이미 말씀드린데로 한국이 이 정도 천재가지고 있고 홍보만 잘 되어있으면 어려운 경제타령할 필요도 없이 그냥 놀고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문화가 이렇듯 큰 상품이 된다는 사실을 한국이 한류열풍에서 조금 깨닫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오스트리아 전체수입의 약 6%가 넘는 수익을 관광사업과 이런 문화사업으로부터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말이 6%이지 한국은 이 숫자 넘보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런 수입을 올리는데는 모짜르트라는 브랜드 하나만을 관리하고 기획하는 정부산하 프로젝트팀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 놀랍지요, 저희 나라 이런 문화지원합동체제가 되어있는지요, 없지요 뭐!!!
하여튼 내년 2006년 모짜르트 페스티벌에 온 세상 사람들이 돈을 싸다 받칠 생각을 하니 벌써 배가 아파오는군요!!!, 물론 한국 사람들 포함이지요 뭐, 한국도 이런 브랜드 하나 만들어서 기획 발전 수익을 올리는 그런 날이 언제 오려나,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모짜르트 이후 이런 천재가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입니다, 한국 천재성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지요, 한국도 이런 뛰어난 인물들을 발굴하고 잘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 한 세대 정도 이름 날리게 하면 그 지원금 빼고도 아니 한국이 몇 세대 그냥 먹고 살아도 될 날이 옵니다!!!
부디 그런 날을 희망합니다!!!
비엔나댁 |
@ 비엔나댁/ 2006년 모짜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행사의 해!
2005. 7. 20. 오후 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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