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만 신부님 2월 울뜨레야 훈화

2010. 2. 16. 오전 3:17:43

글자

 루르 본당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울뜨레아 훈화>

 

<내 자신의 복음화>

 

잃어버린 신앙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산티아노 콤포스텔라 순례를 시작했던 스페인 젊은이들 안에서 발생한 꾸르실료가 애초 목적으로 삼았던 가치는 <참된 크리스찬 형성>이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봉사자요 순례의 지도자들이 바로 첫 번째 꾸르실리스타들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참된 크리스찬을 어떻게 상정하는가?입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은 크리스찬,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들의 삶과 신앙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복음화는 빠져 있습니다. 모두가 크리스찬인 유럽에 살지만 모두가 복음화를 이루며 산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유럽 신자들을 보면, 복음화는 커녕 교회 생활 자체를 진부한 고답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된 크리스찬의 형성은 60년 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목표요 가치입니다.

 

참된 크리스찬은 무엇을 기준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는가요? 첫째는 자신의 정체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고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참된 크리스찬은 더 이상 내 이름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믿음의 대상만이 아니라 내 안에 지금 함께 하시는 분, 곧 내 인생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형성시켜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자녀인 여러분,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습니다."그리스도가 내 안에 형성되기 위해서는 먼저 탐욕과 집착이 가져왔던 왜곡된 질서들로부터 먼저 자유로와 지고 선선해져야 하겠습니다.

그 첫 걸음이 자기의 부족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며 자신을 자기를 비우는 일입니다. 이것이 참된 크리스찬 형성의 첫 걸입니다. 나의 비움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복음화의 길은 시작된다 하겠습니다.

 

그 복음화의 시작은 일차적으로 <내 자신의 복음화>가 첫 삽입니다. 내 자신의 복음화는 첫째로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성경과 하느님에 관한 지혜로서 나를 채우는 일이 첫 단추라 하겠습니다.

 

신자들을 만나보면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가? 거의 대부분이 그냥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신자들끼리 앉았는데 하느님 이야기를 하고 교회와 교리와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것이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화는 내 자신부터 올바른 가르침을 채우는 일입니다. 그러니 꾸르실리스타들이 자신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공부하고 성경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지극히 필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의 복음화 두 번째 과정은 <나의 인격을 복음적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인격을 높이는 일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모범을 보여주셨던 그분의 인간성과 그분의 인격만이 우리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고상해지자는 말도 아니고, 우아하게 살자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것을 우리도 사랑하며, 예수께서 관심 지니셨던 것을 우리의 관심사가 되게 하며,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우리도 닮아가자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자신은 예수님만큼 소중하고 귀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참된 크리스찬 형성의 세 번째 단계는 <사회적 의식에 대한 형성>입니다. 정치에 대해서, 정책과 지도자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 풍조와 흐름들에 대해서 욕할 수도 있고 편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크리스찬, 곧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사회를 보는 창은 하나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적으로 세상을 읽는 연습을 거듭해야 합니다. 세상은 죄의 굴레를 뒤집어쓴 고해이기는 해도 또 우리가 복음화시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는 이데올로기도, 그 어떤 분열이나 판단이나 전쟁들 모두가 극복의 대상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없는 사람들, 약하고 서럽고 깨진 사람들을 세상이 전하는 신문 안에서 더 크게 보고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쁜 소식이 될 만한 실천을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참된 크리스찬 형성의 마지막 단계는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은 <영성적 형성>입니다.

 

과거에는 영성이라는 단어 대신에 신비 또는 신비주의라는 말로 주로 영적인 의미로만 쓰 이던 이 영성의 의미는 현대에 이르면서 점차로 삶과 연관되어 집니다.

 

즉 영성이란 "신앙체험 또는 하느님체험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고, 증거 되는 모습"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성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행동과 생활 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실재로 보여지고, 삶으로 이어지는가" 등에 관심을 둡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Praxis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체험(experience)과 성찰(reflection)이 교차하는 역동적 관계"라고 풀이합니다. 즉 어떠한 체험도 그 체험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고, 어떤 행동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영성은 구체적으로 하느님체험을 바탕으로 한 "행동양식"(modus procedendi, way of proceedigs)입니다.

 

그래서 영성을 마치 골방에 앉아 머리 싸매고 있는 것을 전제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느님에 관한 나의 체험을 하나의 행동양식으로 질서지을 것인지, 바로 그 영적 질서가 꾸르실리스타들의 영성이 되게 하십시오.

 

자, 나 자신의 복음화(기도와 공부), 복음적 인격 형성, 복음적 사회 의식 형성, 그리고 영성의 형성. 이렇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4가지의 단계를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나 자신의 복음화를 바탕으로 한 환경의 복음화에 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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