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동물 무척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헤어진 지 5년만의 해우였다. 어떤 작은 오해와 더불어 서로의 갈 길이 너무 바빠서 헤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못 말리는 심성이 하나 있다. 즉 사랑하면서 헤어진 사람은 조용히 잊혀 질 수 있어도 어떤 미움이나 오해 때문에 헤어진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의 별리(別離)는 서운한 감정이 세월가는대로 사라져서 마음의 부담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어떤 미움이나 오해를 안은 채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날이 갈수록 마음의 부담 이 무거워진다. 빨리 만나서 진실을 말함으로써 오해를 풀고 미움의 상처를 씻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고 평화를 향유 한다는 것은 누구인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도 못한다면 그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신부나 수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들은 신부나 수녀가 독신자들이기 때문에 사랑을 잃었거나 사랑을 모르고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신부와 수녀들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신부이기에 이 질문의 해답을 나름대로 분명하게 줄 수 있다. 신부와 수녀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다. 또 그래야만 산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신부 수녀의 신학적인 애정관(?)이나, 인간적으로도 한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아니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신부와 수녀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랑과 평화의 동물’이다. ‘사랑과 평화의 동물’이란 말은 서두에서 말한 친구가 가지고 온 말이다. 어떤 기도문을 바칠 때 어깨너머로 바라보면서 따라 읽다가 사랑과 평화의 등불이란 구절을 안과적 문제로 잘못 발음한 것이 “사랑과 평화의 동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베기는 것이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마음의 평화가 없다. 마음의 평화가 없는 사람은 기쁨도 없다. 사람에게서 기쁨이 상실된다면 빨리 죽는다.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一怒一老)란 말은 바로 그 사실 을 웅변해 주는 말이다.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은 애써 극약을 사먹거나 옥상에서 떨어질 필요가 없다. 그냥 하루종일 분노 하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하라. 그리고 고운 미소로 대화하고 “항상 기뻐하라” (Ⅰ데살 5, 16). 김충수 신부님 |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동물
2005. 8. 20. 오전 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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