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0,37-42)

2026. 6. 24. 오후 1:20:12

글자

20260628일 일요일

[연중 제13주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0,37-42)



1독서<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니, 그곳에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열왕4,8-11.14-16)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한 부유한 여자가 엘리사에게 음식을 대접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의 집에 들러 음식을 먹곤 하였다.

9 그 여자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여보, 우리 집에 늘 들르시는 이분은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10 벽을 둘러친 작은 옥상 방을 하나 꾸미고, 침상과 식탁과 의자와 등잔을 놓아 드립시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오실 때마다 그곳에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11 어느 날 엘리사가 거기에 갔다가 그 옥상 방에 들어 쉬게 되었다.

14 엘리사는 종에게 저 부인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을까?” 하고 물었다. 게하지가 저 부인은 아들이 없는 데다가 남편은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5 그러자 엘리사는 여자를 불러라.” 하고 일렀다. 종이 여자를 부르니 그 여자가 문간에 섰다.

16 엘리사가 말하였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부인은 한 아들을 안게 될 것이오.”

 

<화답송>시편89,2-3.16-17.18-19(2)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행복하여라, 축제의 기쁨을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 그 빛 속을 걷나이다. 그들은 날마다 당신 이름으로 기뻐하고, 당신 정의로 힘차게 일어서나이다.

정녕 당신은 그들 힘의 영광, 당신 호의로 저희 뿔을 들어 올리시나이다. 저희 방패는 주님의 것, 저희 임금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것이옵니다.

 

2독서<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3-4.8-11)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8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10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복음<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7-42)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엘리사 예언자


기원전 9세기, 스승 엘리야와 함께 구약 예언운동의 초석을 놓았던 엘리사는 본래 농사를 짓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엘리사의 생활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은 그를 당신의 예언자로 정하신 하느님의 선택 때문이었다

호렙산에 몸을 피해 있던 엘리야에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통해 다가오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 야훼종교의 참된 본질임을 계시하신 후 엘리사에게 기름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1열왕 19,16)고 명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분부에 따라 엘리야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던 엘리사에게 자기 겉옷을 걸쳐줌으로써 자신의 예언자로서의 능력을 넘겨주고자 한다

이에 엘리사는 곧장 주변을 정리한 후 엘리야를 따라나서게 된다.

 

그러나 엘리사가 예언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스승인 엘리야의 승천(2열왕 2,1-18) 이후이다

엘리야로부터 영과 겉옷을 전수 받은 엘리사는 다른 예언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기적들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2열왕 2,19-25; 4,1-8,15; 9,1-13; 13,14-21).

여기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요람(852-841), 예후(841-814), 여호아하즈(820-803), 여호아스(803-787) 임금 시대에 엘리사가 행했던 기적들 가운데 몇 가지를 선별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엘리사가 특정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행한 기적으로 수넴의 아이 없던 여인과 관련된 이야기(2열왕 4,8-37)를 들 수 있다.

 

이즈르엘 평야 동쪽, ‘수넴이란 마을에는 엘리사가 방문할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던 가정이 있었다

어느 날 다시 그곳을 찾은 엘리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아직 아이가 없는 그 집의 부인에게 내년 이맘 때 한 아들을 안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부인은 어르신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하며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 옛날 성조시대에 마므레로 아브라함을 찾아온 하느님께서 이미 나이도 많고, 달거리가 그친지 오래된 사라가 아들을 갖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라가 믿지 못하였던 것처럼

그러나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부인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된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언자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별탈 없이 잘 자라던 아이가 그만 죽고만 것이다

이때 수넴 부인이 취한 행동은 이 기적 이야기의 핵심적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부인은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찾아가 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알린 다음, 그가 도와줄 때까지는 떠나지 않으리라고 살아 계신 하느님과 엘리사의 생명을 두고 맹세하며 매달린다

이러한 부인의 간절한 청과 전적인 믿음은 엘리사로 하여금 아이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행하도록 한다.

이 기적 이야기는 먼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밝혀주고 있다. 

즉 그분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고 주관자이시며, 인간의 어려운 처지를 돌보아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사람인 예언자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함께 신앙인이 지녀야 할 근본적인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연중 제13주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신 뒤에 그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과, 그들이 앞으로 겪게 될 일을 알려 주시는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부모나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말씀은 가장 큰 계명의 첫 부분을 생각하게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22,37). 

어쩌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여야 하는지 묻는 데에 대한 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비교 대상이 됩니다. 

실행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비교입니다.
복음서에서 누누이 강조되는 첫째가는 제자의 길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16,24)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라는 초대는 목숨을 잃고 얻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으로도 풀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은 모두 예수님의 생애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시고 그분을 충실히 따르도록 가르치셨으며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신 생애의 요약과도 같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보여 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과도 같습니다. 

신앙인은 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을 되새기며 삶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세례는 그 응답의 시작이고, 그 응답은 일상에서 실천하는 가운데 지속되어야 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3주일]

 

사람의 의로움으로 하느님의 의로움을 주지 못한다면 말짱 꽝(도로묵)입니다 

 

(마태10,37-42)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앞절로 가서~

(마태10,34-35)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 세상이 주는 평화로 일치를 이룬 그 가족을 분열시키러, 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로 얻는 용서로 하늘의 영원한 평화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세상의 평화에 만족하기만 하면, 그래서 하늘의 평화에 관심이 없다면~ 하늘의 평화를 얻을 수 없기에 칼로 잘라내는 죽이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가족은 내 평화를 위한 조건이죠. 그래서 그 순간적 평화를 위한 그 가족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평화(에이레네)는 두 마리의 소가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뜻(구원)을 향해 주님과 하나되어 갔을 때, 하늘의 참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 제 십자가? 십자가라는 대속의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그러나 우리는 삶의 사건들 속에서 대속이 아니라 불평과 불만으로 오히려 죄로 자주 넘어지곤 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대속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신하신 내 십자가임을 믿고(지고)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 십자가가 주는 용서, 하늘의 의로움보다 온갖 종교 행위, 봉사등으로 사람들의 칭찬 영광을 더 좋아 한다면 하늘의 생명을 잃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용서가 구원의 진리임을 깨달아 고백한다면, 사랑한다면 하늘의 생명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요한12,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 모든 인간은 하느님 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가 의인이 아닌 죄인이라고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시편 5. 14. 53. 140편 로마3,10~참조)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리로 받아들인 너희,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받아 들이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렇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만 했고 그분이 시키시는 일만 하신 예언자는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요한6,39 12,49)

하느님나라의 의로움이신 의인 또한 예수님 뿐이신 겁니다.(로마3,21~26참조)

그래서 그 의인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리로 받아 들렸을 때 거져 의인이 된다고 하십니다.(로마3,24)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 - 말씀을 주는 사람은 그 말씀이 주시는 하늘의 생명을 상으로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말씀으로 구마하셨고(마태8,16) 말씀의 생명, 빛이며(요한1,1-5)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요한1,14)

 

성령께서 이방인을 베드로에게 보내시며 하신 말씀~

(사도11,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아멘.

 

 

 

 

연중 제13주일 복음 (마태10,37-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42)

 

여기서 '작은 이들'에 해당하는 '미크론'(mikron; little ones)은 마르코 복음 937절과 요한 복음 215절에 나오는 나이 어린 어린이를 가리키거나 상징적인 뜻으로 사회에서 소외받는 연약한 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은 제자들로부터 시작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무리가 점점 확대되어 감을 묘사하는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순서에 해당하는 가장 폭 넓고 일반적인 개념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무리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리고 땅이 메마르고 물이 귀하며 무더운 팔레스티나의 상황에서 먼 길을 걸어 손님이 집에 찾아왔을 때에 방금 우물에서 길어낸 시원한 물을 대접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대접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자나 그 복음에 대해 거절하지 않고 당연히 듣거나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대접하는 행위는 그들에게 사소한 도움을 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사소한 도움을 준 사람들이 받을 ''에 해당하는 '미스토스'(misthos; reward)는 일차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을 말하지만(마태25,31-46),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선행에 대한 상급을 말하는 것이다.

 

그 구원과 상급은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지며, 결단코 잃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확실한 것임을 나타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인 사랑 때문에 어떤 고난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주님 구원 사업의 협력자들에 대한 도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상급으로 이어지며, 모든 것을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주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20260628일 일요일

[연중 제13주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얼핏 차갑게 들리는 이 말씀 속에는 급진적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질서, 혈연과 그에 따른 기대, 보호와 인정의 체계가 더 이상 궁극적 기준이 아니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합당함은 개인의 완전함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알아보고 응답하는 순발력을 가리킵니다.

그 응답은 때로 가족의 시선과 어긋나기도 하지요. 가족의 자랑이 아닌 실망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 기존의 관계와 질서는 흔들립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10,38). 십자가는 기존의 관계와 질서를 깨뜨리고 우리 마음과 생각을 흔드는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 가는 느낌, 안전한 자리에 남아 있으려는 본능과 복음을 향하여 걸어가라는 부르심 사이의 갈등, 예수님께서는 그 상실감과 갈등을 피하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오히려 당당히 맞서라고 하십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10,39).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숨이 단순히 이어지는 것만이 다는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지키려다 잃고 내려놓았다가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 목숨일 테지요.

이 말씀은 지켜야 할 목숨의 가치에 대하여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일까요?

이러한 거창한 이야기를 뒤로하고, 오늘 복음이 마지막에 남기는 것은 시원한 물 한 잔입니다.

누군가를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로 맞아들이는 작은 손길을 이야기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급진적 요구를 말하면서도 작은 친절을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은 물 한 잔의 배려 속에서도 열립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교황 주일-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하늘을 향하는 ‘하늘의 시민’(필리 3,20)입니다.

 하늘의 시민은 사도 바오로의 권고대로 세상과는 대조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4-15)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례성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줍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 제2독서)

세례를 통해 이루어지는 옛사람에서 새사람에로의 전환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은 동시에 과제도 안겨 줍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계속 새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새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은총의 선물인 ‘새로움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 밝게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이란 구체적으로 성경을 통해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를 통해 전해지는 그분의 손길에 의탁하고, 그분을 닮도록 부지런히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아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주고 복음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마태 28,19-20) 

제자들은 스승의 명에 따라 만방에 가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가족도 뒤로하고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도 포기할 각오를 하라고 하십니다.(마태 10,37-42 | 복음) 

인간적으로 보면 매우 힘들고 험한 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필요한 때에 제자들을 돕는 이들을 보내주시는데, 그들에게는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엘리사 예언자를 도와주었던 여인이 큰 축복을 받았듯이(제1독서), 예수님의 제자를 예언자로, 의인으로 받아들여 도움을 주는 이들에게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의 사명은 교회를 통해 계속됩니다. 사제와 평신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확신 있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의 힘으로 인간이 거룩하게 되고 현세 질서가 개선되도록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런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분이 교황님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시도록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협력하면 좋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3주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0,37-42)26.06.24조회 13[연중 제12주일] 나를 안다고 증언(證言)하라 (마태10,26-33)26.06.17조회 16[연중 제11주일] 열두 제자 파견 (마태9,36-10,8)26.06.13조회 16[성체 성혈 대축일] 살아 있는 살과 피 (요한6,51-58)26.06.08조회 15[삼위일체 대축일] 아들을 통한 구원 (요한3,16-18)26.05.25조회 14[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을 받아라 (요한20,19-23)26.05.19조회 12[주님 승천 대축일]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16-20)26.05.12조회 22[부활 제6주일] 보호자 진리의 영 (요한14,15-21)26.05.06조회 16[부활 제5주일] 길, 진리,생명이신 주님 (요한14,1-12)26.04.28조회 21[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10,1-10)26.04.22조회 16[부활 제3주일] 엠마오 길에서 (루카24,13-35)26.04.17조회 13[부활 제2주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요한20,19-31)26.04.09조회 18[주님 부활 대축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요한.20,1-9)26.03.31조회 14[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마태26,14-27.66)26.03.23조회 16[사순 제5주일]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요한11,1-45)26.03.18조회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