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31일 일요일
[연중 제18주일]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
제1독서<그 모든 노고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코헬1,2; 2,21-23)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2,21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22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23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화답송시편 90(89),3-4.5-6.12-13.14와 17(◎ 1)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제2독서<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콜로3,1-5.9-11)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복음<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12,13-21)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하느님 없는 세상, 하느님을 배제한 인생은 외줄타기와 같다~~
연중 제18주일 제1독서(코헬렛 1,2; 2,21~23)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2)
코헬렛은 질고에 휩싸인 인간의 구원이라는 성경 본래의 근본 주제를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와 그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설파한 책이다.
본서에는 인생의 허무와 그 극복에 대한 문제가 크게는 세 부분에서 거론되고 있다.
즉 본문 부분인 1장 12절에서 12장 7절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네 가지 주제로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본론 부분의 전후에 서론(1장 1절~11절)과 결론(12장 8~14절)부분이 있다.
코헬렛 1장 1절은 표제로서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 라고 시작한다.
원문은 이러한 표제가 '코헬렛(코헬레트)의 말'(The Words of Preacher)로 번역된 '띠브레 코헬레트'(dibre qohelleth)로 시작된다.
구약 성경의 각권의 이름은 때때로 첫 부분에 나오는 단어로 정해지는데, 본서도 그렇다.
즉 히브리어 성경의 본서 제목이 '코헬렛'(코헬레트) 이다.
본서의 영역본 이름인 'Ecclesiates'는 70인역(LXX; 구약 성경의 희랍어 번역본)에서 사용한
본서의 제목인 '엑클레시아스테스'(ekklesiastes)에서 나온 것인데, 이 역시 본문에서 '설교자'(전도자)에 해당하는 '코헬렛'(코헬레트)의 번역이다.
'엑클레시아스테스'는 '모임'(히브2,12), '집회'(사도19,32)라는 뜻을 가진 '엑클레시아'(ekkleisia)에서 유래하였다.
'코헬렛'(코헬레트)을 '설교자'라는 의미로 수정되는 '엑클레시아스테스'로 번역한 것은 각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희랍어의 어원으로 볼 때 합당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허무로다. 허무!' (habel haballim ; 하벨 하발림)
'코헬렛이 말한다' 라는 문장 앞에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허무로다. 허무' 를 서두에 배치하여 강조하는 것은 '허무로다' 에 해당하는 '하벨'(habel)의 원형인 '헤벨'(hebel)이 나타내는 개념을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함이다.
'헤벨'(hebel)은 본래 '증기'(vapor), '호흡'(breath)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유래하여 '실체가 없는', '덧없음', '허무함',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함' 등을
표현하는 단어로, 인간 존재의 헛됨과 인생의 무상함(욥기7,16),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우상의 무능함과 무익함(신명32,36; 1열왕16,13)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희랍어 70인역(LXX)에서는 '허무'(vanity)를 의미하는 '마타이오테스'(mataiotes)로 번역하고, 라틴어 Vulgata에서는 '바니타스'(vanitas)로 번역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vanity'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부조리', '불합리함'을 표함하여 인간의 삶의 총체적 허무를 기술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절(2절)에는 '헤벨'(hebel)을 원형으로 하는 단어가 단수로 세 번, 복수로 두 번, 도합 다섯 번 사용되었다.
본문의 '허무로다'에 해당하는 '하벨'은 '헤벨'의 연계형이고, '허무'에 해당하는 '하발림'은 '헤벨'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헛된 것들 중의 헛된 것'(vanity of vanities)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히브리어에 있어서 최상급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즉 창세기 9장 25절에서 '종들의 종'으로 번역된 '에베드 아바딤'(ebed abadim)이 '가장 천한 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본문은 최상급의 표현으로 상대적인 허무나 헛됨이 아닌 절대적 의미에서의 허무와 헛됨을 표현하고 있다.
즉 태양 아래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어떤 방법으로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허무와 헛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본질적 허무함에 대한 진술과 고백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반복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역경 속에 있었던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살 날은 한낱 입김일 뿐 입니다" (욥기7,16) 라고 절규했다.
바로 이 욥의 고백에서 '입김'에 해당하는 단어가 '헤벨'(hebel)이다.
또한 다윗은 범죄로 인한 하느님의 징계로 그 모든 영화로움을 잃게 되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 형편을 묘사하며, "당신께서는 죗값으로 인간을 벌하시어 좀 벌레처럼 그의 보배를 사그라뜨리시니 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일 따름입니다" (시편39,12) 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입김일 따름입니다' 로 번역된 표현 역시 '헤벨'(hebel)이다.
이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인생 자체를 숨결보다 가벼운 것으로(시편62,10),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시편144,4), 잠깐 나타났나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안개)(야고4,14)로 묘사하며 그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욥이 고백한 인생에 대한 비관적 선언이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다윗의 고백은 범죄하는 인간의 실존을 직시하고 그 허무함과 무의미함 등을 절감한 이후 내뱉은 고백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백된 '헤벨'(hebel) 즉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토로는 일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드러나는 설교자의 진술은 인생의 모든 것들을 다 누린 자에게서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더 절망적인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즉 인생의 모든 쾌락과 즐거움, 그리고 모든 부귀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인생을 정리하며 얻은 체험적 결론이기에,본문의 진술은 더욱 더 충격적이며 어떤 인간도 이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염세주의나 비관론자의 푸념으로 매도될 수 없는 것이다.
솔로몬의 이러한 진술은 영원하지 못한 것들을 지향하는 인간의 온갖 자의적 수고와, 하느님을 떠나 궁극적인 삶의 목적과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인생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직시한 것에 따른 것이다.
결국 하느님 안에서의 신앙을 가진 자에게만 인생이 참된 의미를 가진다는 긍정적 결론을 위한 신앙적 실존에 근거한 방법론적(기술적) 염세주의라 할 수 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habel haballim hakkol habel; 하벨 하발림 학콜 하벨)
'허무로다. 허무'에 해당하는 '하벨 하발림'(habel haballim)은 본절 서두에 이미 기술되었으나 후반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즉 문장 서두에 언급된 표현이 다시 반복되어 인간의 삶의 헛됨을 보다 강렬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이 허무로다' 로 번역된 '학콜 하벨'(hakkol habel)을 덧붙여 태양 아래 모든 것이 헛됨을 더욱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것이'에 해당하는 '학콜'(hakkol)은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 '콜'(kol)과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학콜 하벨'은 '그 모든 것이 헛되도다'(the whole is vanity)로 번역될 수 있다.
본절에서 '학콜 하벨'에 선행하여 '헤벨'(habel)을 원형으로 하는 단어가 네 번 사용되었다.
이 네 개의 단어는 동일한 형태로 두 개의 어구를 형성하여 감탄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런데 태양 아래 인간의 삶의 헛됨을 탄식하는 이 표현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본문의 '학콜 하벨'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주어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바로 '그 모든 것' 이다.
여기서 '그 모든 것' 이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세상과 인생을 의미한다.
결국 솔로몬은 단수,복수로 제시된 허무에 해당하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여 진한 탄식을 내뱉은 후, 마지막 부분에서 '모든 것'을 주어로 제시함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바라는 독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도무지 아무런 희망과 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비극적 실존을 강렬하게 부각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3절에 그 허무의 범위를 '태양 아래서'로 제시하듯, '그 모든 것'의 영역에는 하느님과, 하느님과 궁극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대상이 제외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22년 07월 31일 일요일
[연중 제18주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어릴 적 천 원만 있으면 꼭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모아서 가게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제 눈이 삼천 원짜리 장난감에 꽂혔습니다.
또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고, 돈이 모이자 이번에는 장난감을 사기보다 저금통장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한참 뒤에 보니, 장난감은 구경도 못 하였고 저금통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조금 더’가 부른 참사였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지금도 곧잘 그런 행동을 하는 저를 문득문득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탐욕’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 자체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재물이 모든 것을,
곧 생명마저도 보장해 주리라고 믿은 나머지 그것에 집착하여 우상처럼 대할 수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재물이라는 우상은 참으로 오랫동안 힘을 발휘하며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 만들고 있습니다.
큰소리를 내지도 호들갑을 떨지도 않으며 조용히 사람들에게 ‘조금 더’라는 소리만을 흘려보낼 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점점 남의 입과 주머니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자신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재물을 모으기만 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됩니다.
내 얼굴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더’를 외치며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자신이 지닌 것에 만족해하며 감사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탐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7월 한달간 묵상글 주신 김인호 루카신부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성군사제 되소서.~
'하느님 앞에서는'에 해당하는 '에이스 테온'(eis theon; toward God)은 '자신을 위해서는'으로 번역된 '헤아우토'(heauto; for himself)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는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지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재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께 쌓아 두는 것이 올바르게 재화를 사용하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쌓아 두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봉헌하고 협조하는 것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애덕의 실천인 자선과 나눔을 말한다(루카12,31.33참조).
[연중 제18주일 복음]
간절한 마음이 율법을 만나면 내 열심히 나오고, 진리(십자가)를 만나면 하느님의 열심, 하늘의 생명을 낳는다.
(루카12,14-21)
14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 땅의 법과 재물의 중재인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15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탐욕-에피뚜미아 에피(강하게)+ 뚜미아(희생제사), 탐욕은 돈을 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만은 나의 모든 것을 위해 열심히 희생제사 드리는 것이다.
나의 가치가 되는 지혜, 의로움, 영광, 그 모든 것이 부자, 돈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그들은 돈을 좋아 한다’고 하셨던 것이다.
곧 자기 의로움, 영광은 하늘의 생명과는 상관이 없음을 오늘 말씀하신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만은 영적 교만으로 깨닫고 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진리를 모르는 부자, 그 도한 하늘의 생명과는 상관이 없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의 중재자가 아니심을 먼저 앞14절에서 말씀하신 후 오늘 말씀으로 이어진 것이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 땅의 소출(가치)을 위한 율법과 제사의 신앙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 세상 사람들의 쉼인 것이다.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세상의 쉼이 왜 나쁜가? 그러나 어리석다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쉼(안식, 자유)을 누리는 존재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이 자유를 주는 진리라는 것이다.
(2코린3,17)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코린7,22) 22 주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종은 이미 주님 안에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심을 받은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자신의 뜻을 위해 구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신앙인 이다.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하느님의 길을 외면하는 신지들~ 그들에게 하늘의 용서, 자유, 생명, 구원은 없다.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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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2022년 7월 31일(다해 연중 제18주일)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고사입니다.
맹자는 어린 시절에 묘지 근처와 시장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맹자는 공부보다는 장례 예식을 따라 하는 것과 물건 파는 것을 따라 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맹자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하였고, 맹자는 공자와 함께 유학을 대표하는 대학자가 되었
습니다. 이 고사의 핵심은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최대한 좋은 것만 보여주고자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녀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초월합니다. 그것이 부모님 사랑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최대한 좋은 것만 보여 주려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눈팔아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그렇지, 우리가 바르지 못한 것은 하느님의 탓이 아닙니다.
우리는 미사를 시작하면서 고백 기도를 함께 바칩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라고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공동체 앞에서 고백합니다.
좋지 않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과 다른 사람에게 죄를 저지르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맹자가 서당 근처에 살았어도 바르지 못한 일들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맹자는 더 많은 바른 것에 집중했기에 대학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실 때도 바르지 못한 일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공동체는 더 많은 바른 일에 집중했기에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끄는 선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과 하느님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해야 합니다. 나쁜 생각과 말과 행동은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좋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 같은 것을 죽이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태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들이 좋을 수도 있고, 좋은 것을 줄 수도 있겠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영생을 얻는 데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한눈팔지 말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우리 앞에는 바른 것과 바르지 못한 것, 좋은 것과 좋지 못한 것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의 부모님에게 바른 것과 좋은 것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하성용 유스티노 신부 (사회사목국 부국장)
연중 제18주일 복음 (루카12,13-21)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5)
원문에는 '탐욕'(貪慾) 혹은 '탐심'(貪心)이라는 단어가 '플레오넥시아스'(plleoneksias)이다.
기본형은 '플레오넥시아'(plleoneksia)인데, '더 많은'이라는 뜻의 '플레이온'(plleion)과 '가지다'는 뜻의 동사 '에코'(echo)에서 파생된 '엑시아'(eksia)의 합성어이다.
영어로는 'greed','avarice','covetousness'로 번역되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분수에 넘치도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가리킨다.
그런데 복음은 '모든'('파세스'; 'pases'; all) 탐욕을 경계하라고 했으므로, 단순히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도히 욕심을 부리게 되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금전, 부, 권력, 지식,명성, 쾌락 등등)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하여라'라는 원문의 단어는 '호라테'(horate)로서 특별히 경계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용법으로 쓰였는데, '삼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경계하여라'라는 원문의 단어는 '퓔라세스테'(phyllassesthe)로서 원형 '퓔랏소'(phyllasso)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이다.
여기서 중간태란 그 결과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나타낸다.
영어로는 'beware','watch out','be on your guard'로 번역될 수 있다.
모든 탐욕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을 명령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원문은 수시로 마음속에 들어오는 탐욕(탐심)을 물리치는데 급급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한 것이 애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막아 지킬 것을 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상 것들의 한계, 예를 들어 물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물질이며, 그것을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의 선익과 공동선을 위해 올바로 쓰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느님도 영원한 생명(구원)도 잃어버린다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아예 애당초 자신의 분수를 벗어난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생명'으로 번역된 단어는 '죠에'(zoe)인데, 이 '죠에'는 '죽음'과 대조된 육체적 생명(1코린3,22)과 하느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초자연적 생명'(요한3,15)으로 구분된다.
루카 복음 12장 15절의 '생명'은 당연히 후자의 의미이다.
이 세상의 소유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everlasting life)을 말한다.
이 생명의 속성은 '영원성'(eternity)인데,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영생을 얻을 수 없고 영원한 평화와 기쁨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이야기 하신다.
이 비유는 하느님의 계산법과 인간의 계산법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 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탐욕을 부려 더 깊은 지옥에 떨어질 것 같으면, 한마디로, 영원한 생명(구원)을 받기에 삯이 노랄 것 같으면, 그 어리석은 부자가 가진 것을 다 거두어 가버리신다는 말씀이다.
'맑은 가난'의 의미를 지닌 '청빈'(淸貧; poverty)과 '탐욕'(貪慾)의 글자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청빈'의 '빈'(貧)은 '조개 패'(貝)에 '나눌 분'(分)이지만, '탐욕'의 '탐'(貪)은 '조개 패'(貝)에 '지금(이제) 금'(今)자이다.
옛날에는 조개 껍질이 화폐의 구실을 했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난(청빈)이며,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가지려고, 아니면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고 꼭 움켜잡는(grasp; grip; take hold of; seize)것이 탐욕인 것이다.
2022년 07월 31일 [연중 제18주일]
오늘 미사에서 간절히 바란 것은 무엇인가?
제2독서(콜로3,1-5.9-11)
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 그러므로- 앞장(2,20-23)으로 가보자
(콜로2,20-23) 20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이 세상의 정령(뱀의 유혹을 먹은 선악의 영)들에게서 벗어났으면서도,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정에 얽매여, 21 “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 22 그 모든 것은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인간의 법규와 가르침에 따른 것들일 뿐입니다. 23 그런 것들은 자발적인 신심과 겸손과 육신의 고행을 내세워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지만,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 우리는 하늘의 의(義), 지혜(智慧), 안식(安息)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 위해 세례(洗禮)로 세상(죄, 심판)에 대해 죽은 사람들이다.
(로마6,4-6.8)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否認, 자기버림)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8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아멘)
2그러므로~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이미 죽었고’- 完了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 나쁜 욕망, 탐욕?, 좋은 욕망, 탐욕도 있나?- 있다. 현세의 것을 구하는 것이 나쁜 탐욕이며 우상숭배라는 말이다. 그래서 현세의 것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법규(法規)와 지혜(知慧)의 가르침에 따른 자발적인 신심(信心), 겸손(謙遜)을 진리로 말한다면 거짓말이라 한 것이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옛 계약)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새 계약)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 끊임없이 믿어야한다. 곧 지속적으로 늘 말씀 안에 머물러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契約)을 마음에 지켜야, 간직해야 된다는 말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 그리스도 밖에 서서, 그리스도 밖의 것을 구(求)하는 모든 것이 죽음이요 헛되고 헛된 탐욕(貪慾)이다.
제1독서(코헬2,21-23)
2,21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세상, 후손)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22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23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시련, 고난)에도 그의 마음은 쉴(안식)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복음(루카12,13-15)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 아버지의 유산을 형제와 나누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런데 동생을 나무라는 듯 말씀하신다. 왜?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죄(罪)의 용서(容恕)를 위한 중재자(仲裁者), 구원자(救援者)로 오신분이시다.
곧 세상 재물을 중재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말씀하신 것이다. 현세의 것에 매이는 그 탐욕(貪慾)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15ㄱ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 탐욕(貪慾 에삐뚜미아) 에삐-강조하다. 뚜미아(두모스)- 희생제사에서 나온 말,
그러니까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하며 희생(犧牲)제사(祭祀)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탐욕(貪慾),
성찬례(聖餐禮)를 제정(制定)하실 때~
(루가22,14-16.20) 14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에삐뚜미아)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세상의 것을 구하기 위해 옛 계약의 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것, 나쁜 탐욕(貪慾)이다. 곧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나를 부인(否認)하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영원한 쉼, 안식을 누리는 새 인간으로 새 창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좋은 욕망(慾望), 탐욕(貪慾)이다.
예전에 나는 미사를 내 뜻, 소원, 의(義)를 위한 제사(祭祀)로 드렸다. 나쁜 욕망, 탐욕을 부렸던 것이다. 미사를, 예수님을 우상(偶像)으로 섬긴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또 성모상, 요셉상 앞에서 내 뜻, 소원을 위해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기도(祈禱)했기에 우상적 신앙을 산 것이다. 말씀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지혜(智慧),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제 묵상(黙想) 중~
(예레32,33-34) 33 그들은 나에게 얼굴이 아니라 등을 돌렸다. 내가 그들을 줄곧 가르쳤건만, 그들은 순종하지도 훈계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34 오히려 그들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성전) 안에 *역겨운 것(신상-탈출20,4)들을 세워 그 집을 더럽혔다.
= 하느님의 계시(啓示)의 영(靈), 지혜(智慧)의 영(靈)이신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갈 수도 없는 구원(救援)의 길이다. (1코린2,4-13참조)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마음을 충만케 하시어, 혼자가 아님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세상의 것을 탐했던 욕망의 나를 죽이고 다시 말씀 안에서 올바른 기도와 신앙으로 하늘나라를 욕망, 탐하는 나로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