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5월 01일 일요일
[부활 제3주일] “나를 따라라.” (요한21,1-19)

제1독서<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사도5,27ㄴ-32.40ㄴ-41)
그 무렵 대사제가 사도들을 27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40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화답송시편 30(29),2와 4.5-6.11-12ㄱ과 13ㄴ(◎ 2ㄱㄴ 참조)
◎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 주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하시어, 원수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당신이 제 목숨 저승에서 건지시고,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리셨나이다. ◎
○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
○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니, 주 하느님,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제2독서<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묵시5,11-14)
나 요한은 11 어좌와 생물들과 원로들을 에워싼 많은 천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백만 수억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13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복음<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21,1-19)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부활 제3주일 제1독서 (사도5,27ㄴ-32.40ㄴ-4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1~32)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목적이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 결과 가운데 이스라엘의 회개와 죄의 용서를 받게 하는 것도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본문에 나오는 '받게 하시려고'로 번역된 '두나이'(dunai)란 부정사를 목적이 아닌 결과의 의미로 해석할 때 그렇게 된다. 이러한 번역이 문맥과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당시 베드로는 유대인 지도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회의에서 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속 사업의 효력이 전체 인류에게 미치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유대인에게 국한시켜 말했다고 볼 수 있다.
원문에는 '그분을'로 번역된 '투톤'(tuton)이 본절의 맨 처음에 나온다. 이것은 '투톤'으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그분을 하느님께서 영도자(왕; 아르케곤 archegon)와 구원자(구세주; 소테라 sotera)로 높이셨다'이다.
이처럼 본문에서 '그(분)'을 강조적으로 문장 맨 처음에 위치시킨 목적은 앞절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을 나무에 매달아 죽여 저주할 자로 여긴 것과 대조하여 바로 그분을 하느님께서 오히려 왕과 구세주로 높이신 것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대조는 원문에서 문장의 주어로서 '하느님'(호 테오스)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앞절의 서두에 '호 테오스'(ho theos)가 나와 있기 때문에 본절에서 생략될 수 있지만 여기서 다시 언급함으로써, 강조적으로 쓰인 '하느님'은 앞절에서 예수님을 죽인 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너희'(휘메이스; hymeis)와 대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즉 하느님을 예수님을 저주할 자로 여겨 죽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함으로써 그들에게 죽임당한 예수님을 왕과 구세주로 높인 분이 바로 하느님 당신 자신임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을 왕과 구세주로 높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및 하느님 옥좌 오른편에 앉히심을 가리킨다(필리2,9~11).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며 유일한 구세주이심이 성부 하느님에 의하여 인정된 것이다.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31)
시편 110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이것은 본문이 승천의 방향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에서는 '테 덱시아'(te dexia)가 도구, 수단의 여격이므로 문법적으로 볼 때는 '오른손으로' 번역하여 승천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 개념에서 오른손은 능력을 말한다.
즉 사도행전 2장 33절에도 나오지만, 하느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시고 하늘로 올리신 것을 상징적인 표현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탈출5,6; 89,14).
한편 '들어 올리시어'라는 표현은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장소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보다는 육신을 입으셨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승천을 통해 다시 영광스러워지셨다는 신분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필리2,9-11).
한편 사도행전 5장 32절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 명령인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1,8)는 말씀을 잘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에서 '일'로 번역된 '레마톤'(rematon)의 원형 '레마'(rema)는 대부분 '말씀'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단어가 히브리어적인 어법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따바르'(dabar)처럼 '일','사건'도 가리키게 되는데, 새 성경을 포함하여 여러 영역본들도 본문에서 이러한 관점으로 이 단어를 해석하였다.
이렇게 볼 경우 이 단어는 앞절에서 진술하고 있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과 구세주로 높이신 사건들을 가리키게 된다. 따라서 사도들은 바로 이 '사건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레마'(rema)는 신약 성경에서 대부분 '말씀'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본문에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의 '레마'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과 구세주로 높이신 일에 관한 '설교','말씀'을 가리키게 된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의 증인'이 된다.
그러나 '레마'가 어떻게 해석되든지 변함없는 사실은 사도들의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왕과 구세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 있다.
이 말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증인이며,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편에 있는 합당한 증인으로서 자신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처럼 대사제의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써 증인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을 받았으므로, 그 어떤 위협 앞에서도 위축되거나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성령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복음의 당당한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이다.
2022년 05월 01일 일요일
[부활 제3주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 어쩐지 제게는 어정쩡해 보입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으니, “네! 사랑합니다.” 하면 될 것을,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을 왜 이렇게 돌려 말하고 있을까요?
언젠가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의 시간이 닥쳐오면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모두 떠나갈 것이라고 예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호언장담합니다.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26,33).
그뿐만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다짐하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해하던 베드로였건만, 결국 예수님께서 잡혀가시자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잡아뗍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하며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마르 14,66-72 참조).
그래서였을까요?
베드로는 당신을 사랑하는지 물으시는 예수님께 더 이상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하고 스승을 배반하기까지 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만은 제발 알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당신의 양 떼를 맡기십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언제나 부족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모자란 우리의 두 손에 주님께서는 교회와 이 세상의 미래를 맡기고 계십니다.
그러니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힘을 내어
오늘도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어 봅시다.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2022년 5월 1일(다해) 부활 제3주일(서울주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들을 돌보아라.”
박정우 후고 신부 |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기는 했지만,
아직 스승의 부재상태에서 갈팡질팡하는 제자들은 다시 호숫가에 고기잡이하러 갑니다.
밤새 허탕을 치고 아침이 될 무렵, 지쳐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직접 나타나셔서 기적 같은 도움을 주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 결과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고, 제자들은 그제야 스승을 알아보고 기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밤새 고기잡이로 지쳐있던 제자들을 위해 직접 숯불을 피워 물고기를 구워주시고 빵도 마련해 주시며 “와서 아침을 먹어라.”라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다정하게 건네주시는 빵과 물고기를 함께 나누는 이 황홀한 식탁에서 제자들은 얼마나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을까요?
이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밤새 그물을 던지고 애썼는데 아무것도 잡지 못해서 힘들었지?
앞으로 내 제자로 살아가면서 계속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도 마찬가지일 거야.
처음에는 뜻대로 잘 안되고 박해도 받을 거야.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을 기억하면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
너희가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먼저 구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내 계명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어려움을 잘 견뎌내면,
오늘처럼 풍성한 결실을 보게 될 날이올 거야. 내가 늘 너희와 함께할게!”
이런 묵상은 오늘날에도 실패와 좌절이 일상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며 성체성사의 은총에서 재현됩니다.
식사 후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불러 당신의 “어린 양”을 돌볼 사명,
즉 교회에서 최고 목자의 권위와 사명을 주십니다.
그 사명에 앞서 세 번이나 주어진 “너는 나를 사랑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리는 그 사랑을 바탕으로 양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당부도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이 충분하다고 여기셨을까요?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도 이런 사랑을 요구하신 것이아닐까요?
사실 베드로는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대로 마침내 예수님과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5월 첫 주일은 ‘생명 주일’입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라고 하신
착한 목자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이웃을,
특히 스스로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연약한 이들의 생명을 돌볼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과 맺는 깊은 인격적 친교 안에서
사랑의 능력을 키우고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면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하신 주님의 당부를 더 잘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활 제3주일
우린 우리 자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 21,1-14)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 제자들의 소개부분이 다른 때와 좀 다릅니다. 완전, 충만을 뜻하는 그 일곱(안식)에 맞추어 소개하는 듯합니다. 그 칠(7)의 일을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 두 번씩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사명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말씀과 떨어지면 흙의 본성, 습성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 어떻게 몰라볼 수 있을까요? 두 번아나 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신 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임을 깨닫지 못해 쉼, 안식의 그분을 몰라보는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 베테랑 어부들이 잡지 못했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 사람의 뜻, 베테랑의 그 방법과 다른 예수님의 뜻, 방법의 오른쪽입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가 염치 없이 갑니다. 겉옷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덮으신 그 의로움의 겉옷을 입고(깨닫고) 갔기에 염치 없이 ‘주님이십니다.’라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간 것입니다.
(이사61,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에페6,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 숯불 위에 놓여진 물고기와 빵, 죄를 덮으시는 성령, 그 불 위에 놓인 제물을 뜻합니다.(레위16,11~13참조)
(레위16,13) 그 향을 주님 앞에서 숯불에 놓아, 향 연기가 증언 궤 위에 있는 속죄판을 덮게 한다. 그래야 그가 죽지 않는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 예수님의 말씀대로 잡은 물고기입니다. 그 고기(제물)만 받으십니다.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153)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 그물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입니다. 사람을 낚는 도구~ 말씀입니다.
말씀을 앞뒤 문맥을 연결해서 보지 않고 한 부분만 읽고 묵상하면 말씀이 조각나 찢어진 것이 됩니다. 그러면 사람의 뜻, 베테랑의 지혜로, 도덕과 윤리로 깨닫게 되어 사람을 구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 반대의 의미로 예수님의 말씀 뜻대로 잡았기에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53~ 100- 완전을 뜻하는 하늘의 수, 50-모세오경, 3-삼위를 뜻합니다. 모세의 율법(제사와 윤리)을 하늘 삼위께서 다 이루셔서 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로마3,21-22)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12ㄱ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아침- 빛의 양식으로 먹어라~입니다. 저녁(땅)의 내일(하늘)의 양식, 곧 ‘하늘의 양식을 먹어라’ 하심입니다.
12ㄴ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 세 번째~ 예수라는 성전이 부서지시고(죽으시고) 그리스도라는 성전으로 다시 세워지신 안식의 구원자의 모습을 뜻합니다.
(요한2,19.21)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사흘 안에’를 직역하면 세 번째 것입니다. 오늘 그 세 번째 것의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면 오늘 나는 그분을 모신 안식의 성전이 됩니다.
(1코린6,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아멘, !
부활 제3주일 복음 (요한21,1-1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밴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1)
사도 요한 복음사가는 당시 그 자리에 다른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도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리는데 힘을 합했을텐데도 불구하고, 마치 시몬 베드로 혼자 153마리나 되는 고기가 잡힌 그물을 끌어올린 것처럼 기록했다.
이것은 고기를 끌어올리는 행위가 상징하는 앞으로의 제자들이 수행하는 선교사업에 있어서, 시몬 베드로가 대표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실제로 시몬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중심 인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사도9,32~34).
그리고 요한 복음 21장 11절에서 이 사건의 목격자인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잡은 고기가 매우 풍성했음을 세 단어를 사용해서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가득'에 해당하는 '메스톤'(meston; fulls), '그토록 많은데도'에 해당하는 '토수톤'(tosouton; so many), '큰'에 해당하는 '메갈론'(megalon; great; large)이 세 단어인데, '메스톤'(meston)은 밀도의 정도를, '메갈론'(megalon)은 크기나 부피의 정도를, '토수톤'(tosouton)은 분량이나 수의 정도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가득찬 큰 (고기가) ~ 아주 많았다'는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같은 삼중적 표현을 통해 단순히 고기가 양적으로 많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놀라운 결과로서의 풍요함을 독자들이 생생하게 느끼도록 했다.
또한 요한 복음사가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이 사건이 주는 놀라움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서 정확하게 잡힌 고기의 수를 세어 보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이 숫자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100은 이방인을 가리키는 수이며, 50은 유대인을 가리키는 수이다. 그리고 3은 삼위일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장차 유대인과 이방인의 복음화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완성될 것을 보여준다는 견해이다(성 치릴로).
둘째, 자연수인 1부터 17까지를 모두 합할 경우에 그 합이 153이다. 17에서 10은 율법의 수요, 7은 은총의 수이다.
따라서 이것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구원이 이른다는 견해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셋째, 초대 교회의 중심 인물인 베드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인 '시몬', '바르요나', '게파'의 알파벳이 나타내는 수가 가리키는 합이 153이므로, 이것은 시몬 베드로를 중심으로 복음 전파가 이루어진다는 견해이다(튀빙겐 학파).
넷째, 자연계의 물고기의 종류가 153가지나 되므로, 이것은 세상 모든 종족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견해이다(성 예로니모).
이러한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해석들은 앞으로 제자들이 담당해야 할 세계 선교의 결과가 매우 풍요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초기에 제자들을 고기잡는 어부에서 사람잡는 어부로 부르신 것처럼, 이제 부활 이후에 다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들로 하여금 이 사건을 통해 사람 낚는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에 제자들을 부르신 일과 관련해서 요한 복음 21장 11절의 상황과 유사한 내용이 기록된 루카 복음 5장 6절을 보면, 고기를 많이 잡아서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온다.
루카 복음사가는 하느님께로 돌아올 사람들이 매우 많음에 초점을 맞추었고, 요한 복음사가는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의 포용성, 즉 하느님의 능력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05월 01일 [부활 제3주일]
“나를 따라라.”
복음(요한21,1-19)
부활하신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9 그들(제자)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2ㄱ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아침(브케르-열다. 깨우다. 밝히다) 첫 창조 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이튿날, 사흗날, 닷샛날이.’...
(창세1,31)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 ~의 아침이다.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아침양식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하셨던 모든 말씀을 ‘아침(빛), 새 창조를 여는, 깨우는, 밝히는 그 생명, 빛의 양식으로 먹어라’ 하심이다. 곧 새 창조를 여는, 밝히는, 이루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믿어 ‘새 사람이 되어라.(되었다)’는 말씀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2ㄴ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15ㄱ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 ‘이들이’- 직역하면 ‘이것들’이다. 베드로 그의 주변에 있던 배. 많은 물고기 등, 보이는 모든 것을 뜻한다.
15ㄴ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 베드로의 세 번의 고백을 다시,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심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자신이 계획하지도, 의도 하지도 않았지만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背叛)했던 베드로 였기에 사랑의 문제를 주님께 떠 맏기는 것이다. 아침 양식을 먹었기에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이 자신을 더 사랑하심을 알았던 것이다.
(1요한4,10)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그렇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 하시는 것이다.
(요한10,16)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 내 남편, 아내가 내 사람 이전에 주님의 사람임을, 내 아들, 딸이 내 자식이전에 주님의 자식임을, 며느리, 사위, 부모가 내 가족이전에 주님의 가족임을, 내 골육(骨肉), 형젱림을,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이웃들까지 모두 ‘주님의 양들’임을 인정하고 돌봐야한다.
그랬을 때 진지해 질 수 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일, 시간, 날, 의미, 존재가 된다. 곧 내 삶의 육이 죽고, 하느님 안에 영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 띠- 진리의 띠다. 곧 진리의 성령께서 끌고 가신다는 것이다. 육의 원함이 아닌, 영을 위한 곳으로~~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 내 자식, 가족, 형제, 이웃들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도록, 성경 말씀을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새 창조를 이루는 그 ‘아침 양식으로 주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받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말씀을 생명, 빛의 양식으로 먹게 하라는 말씀이다.
(마르1,17)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 이침(브게르) 양식으로, 하느님의 새 사람, 새 것이 되도록.....
(골로3,9-10)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지혜,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 거짓말- 율법(ㄷ제사와 윤리), 그 사람의 의(義)가 ‘참’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저녁의 양식’인 옛 계약이며 옛 사람에 묶이게 하기 때문이다.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새 창조로 새 것이 되는 아침을 먹는 신앙으로, 곧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하느님의 새 사람이 되었음을 놓치지 않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첫 창조)가 아버지의 뜻(새 창조)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