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6일 주일
[사순 제1주일]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 (루카4,1-13)
제1독서<선택받은 백성의 신앙 고백>(신명26,4-1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4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8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9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10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 드려야 한다.”
화답송 시편 91(90),1-2.10-11.12-13.14-15(◎ 15ㄴ 참조)
◎ 주님, 환난 가운데 저와 함께 계시옵소서.
○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아래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안에 머무는 이,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
○ 너에게는 불행이 다가오지 않고, 네 천막에는 재앙이 얼씬도 못하리라. 그분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시리라. ◎
○ 행여 네 발이 돌부리에 차일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너는 독사와 살모사 위를 거닐고, 힘센 사자와 이무기를 짓밟으리라. ◎
○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내 이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
제2독서 <그리스도 신자의 신앙 고백>(로마10,8-13)
8 성경에서 의로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루카4,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탈출16,2-4)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신명8,3)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시편91,1)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시편91,11)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91,12)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6,16)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사순 제1주일 제1독서 (신명26,4-10)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8-10)
신명기 26장 8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그들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전능하신 초자연적 역사로 가능했음을 다섯 가지 표현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강한 손', '뻗은 팔', '큰 공포', '표징', '기적' 과 같은 생생한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역사(役事)에 큰 감동을 받았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신명기 26장 8절에서 '공포'로 번역된 '베모라'(bemora)는 '~로써'라는 의미를 가진 수단의 전치사 '뻬'(be)와 '두려워하다'란 의미의 '야라'(yara)동사에서 파생한 명사 '모라'(mora)가 합하여진 말이다.
따라서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큰 두려움으로써' 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하느님의 표징과 기적과 대등한 표현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또한 이 단어가 모세가 이집트에서 행한 표징에 대해서도 사용된 것을 볼 때에도, 두려움을 일으킬 만한 하느님의 주권적인 행사나 표징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신명34,12).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여기서 '저희를 ~이끌어 내셨습니다'로 번역된 '와요치에누'(wayotsienu)는 '와우'(wau) 접속사와 '밖으로 나가다' 란 의미를 가진 '야차'(yatsa)동사의 사역형 미완료에 1인칭 복수 접미어가 합하여진 말이다.
따라서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가 저희를(우리를)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로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인도하심은 당신 백성을 세상의 노예된 상태에서 밖으로 끌어내어 당신에게로 향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은 과거에 머물던 세상과 현재의 세상을 뚜렷이 분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지녔던 옛 모습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인도해주신 새로운 세상에서 새 모습을 입고 구원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낳게 한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을 데리고 오시어'
여기서 '그리고 저희를 ~ 데리고 오시어'로 번역된 '와예비에누'(wayebienu)는 '와우'(wau) 접속사와 '오다'는 의미인 '뽀'(bo)의 사역형 미완료에 3인칭 단수 주격 접미어 및 1인칭 복수 목적격 접미어가 합하여진 말이다. 이것을 번역하면 '그리고 그가 저희를(우리를) 오게 하였다' 이다.
여기서 '와우' 계속법이 의미하는 것은 신명기 26장 8절에서 하느님께서 표징과 기적과 큰 공포와 강한 구원의 역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밖으로 끌어낸 목적이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오게 하려는 것이었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새 성경은 신명기 26장 8절과 9절에 사용된 주동사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와 '데리고 오시어'로 번역했는데, 원문도 '밖으로 나오게 하다'와 '오게하다' 란 구별된 단어를 사용하여 분명한 의지를 드러낸다. 즉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구체적인 모습과 그 목적을 확연히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이제'로 번역된 '앗타'(atha)란 말 뒤에는 '보라'는 의미를 가지는 '힌네'(hinne)가 따라나왔다. 따라서 '앗타 힌네'(atha hinne)는 '이제 보십시오'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주님께 경배드리는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저희가 ~ 가져왔습니다'로 번역된 '헤베티'(hebethi)는 '오다'라는 뜻의 '뽀'(bo)동사의 사역형 완료 1인칭으로서, 문자적으로는 '내가 인도하였나이다' 이다. 이 동사 '헤베티'의 어근은 신명기 26장 9절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으로 오게 할 때 사용된 단어 '와예비에누'(wayebienu)의 어근과 동일하다.
이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열매(수확의 맏물)을 하느님 대전에 가져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구원하신 것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신 은혜를 철저하게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가운데 보답하는 성실한 반응이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너희는 ~경배드려야 한다'로 번역된 '웨히솃타하위타'(wehishethahawitha)에서 원형은 '구푸리다'는 의미의 '샤하'(shaha)이지만, 본문에서는 '샤하'(shaha)의 재귀형 완료 2인칭으로 쓰였으므로, '너는 스스로 몸을 엎드려야 한다'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동사의 실례를 살펴보면, 약자가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서 스스로 엎드리는 문맥에서 사용되거나 (창세37,9; 1사무24,8; 2사무9,8), 사람이 하느님 혹은 다른 신에게 경배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여호23,16; 1열왕9,6; 2열왕5,18; 19,37).
경배는 상대의 주권적 명령에 대하여 철저히 순종하며, 그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 대전에 이와 같은 자세를 가지는 것은 하느님의 주권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적으로 하느님을 높이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경배가 수확의 맏물(첫 열매)을 드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의 경배는 특별히 그 열매를 하느님께 드린 것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사순 제1주일 제2독서 (로마10,8-13)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9-10)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은 믿음의 의로움, 즉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거듭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믿음이다.
'고백하고'로 번역된 '호몰로게세스'(homollogeses)의 원형 '호몰레게오'(homollogeo; confess)는 '함께', '동시에'란 뜻을 지닌 '호무'(homu)와 '말함' 이란 뜻이 있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는 '함께 말하다', '동시에 말하다'라는 뜻이 있고, 실제로는 주로 법정 서약과 약속 혹은 고백 행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러한 고백은 공개적 성격을 갖는다.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서원하다'라는 뜻의 '나다르'(nadar), '맹세하다' 라는 뜻의 '샤바'(shaba)등의 역어로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호몰레게오'(homollogeo)를 '공개적으로 고백 또는 진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9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공적으로 고백하고 진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고백이 가지는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으로 번역된 '퀴리오스'(kyrios)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퀴리오스'(kyrios)는 일반적 경칭으로 영어의 'Sir'이나 독일어의 'Herr' 의 의미가 있다.
② 로마 황제의 일반적 호칭이었다. 즉 황제를 신으로 여기고 숭배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③ 그리스 신들의 이름 앞에 붙여, 인간과 다른 영역에 있는 신을 나타낸다.
④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70인역(LXX)에서 하느님의 명칭인 야훼의 역어로 사용되어 유일신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누가 예수님을 '퀴리오스'(kyrios)라고 공적으로 진술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황제, 더 나아가 신적 존재 혹은 유일신 야훼와 동일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자신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그분께 드리는 것이 된다.
즉 이러한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 주권(主權)을 인정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유일한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을 주님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의 시금석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Dominus)로 시인할 때, 우리는 그분의 신성(神聖)과 존귀하심, 그리고 믿는 자 자신이 그분께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 사이에 이것은 신앙 고백의 신조(credo)로 사용되었고, 세례의식에서 고백의 문구로 사용되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조건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공개적 진술과 함께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써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얻는 데에 두 가지 모두 필수이지만, 굳이 논리적 순서를 따진다면 '믿음'이 '고백'에 우선한다.
여기서 '믿으면'으로 번역된 '피스튜세스'(pisteuses)는 '피스튜오'(pisteuo)의 부정 과거 가정법이다.
특히 여기서 과거의 일회적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시제인 부정 과거형을 사용하여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 믿음임을 보여준다.
이 믿음은 앞에 나온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의 근거가 된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서 요구되는 믿음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단정짓는데, 이 부활에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 모두를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믿음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보증해 주셨다는 확고한 확신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서약이기도 하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0)
로마서 10장 10절은 로마서의 주제인 믿음으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원리를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이고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다. 9절의 말씀이 순서가 바뀌어 서술되고 있고 9절 내용의 반복이다.
인간 구원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의로움'을 회복하고 내면에서부터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거기에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음으로'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흔히 '마음'으로 번역하는 이 단어는 고전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간 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리스어 구약 성경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히브리어 '레브'(leb)와 '레바브'(lebab)의 역어로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러한 단어는 인간의 영적, 지적 생활의 자리, 곧 인간의 내적 본성이며, 책임의 자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마음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내면 전체의 인간적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카르디아'(kardia)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자리이며, 그곳에서 맨 처음에 하느님께 순종할 것인지,거부할 것인지의 문제가 결정된다. 그것은 불신앙의 자리도 되고, 신앙의 자리도 되는 것이다.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 믿음은 감상적 충동이나 추상적 사상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믿음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고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10절에서 그 결과로 제시하고 있는 '의로움'과 '구원'은 동일한 의미이다.
또한 여기서 '믿어'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타이'(pisteuetai)나 '고백하여'에 해당하는 '호몰로게이타이'(homollogeitai)가 모두 현재 수동태 3인칭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3인칭 단수형은 믿고 고백하는 주체가 각 개인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형이란 사실은 이러한 믿음과 고백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수동태로 되어 있다는 것은 믿음과 고백의 주체가 개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일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개인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보다는 신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은총의 차원을 드러내고 있다.
2022년 3월 6일(다해 사순 제1주일 서울주보) 생명의 말씀
광야에서도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면서 인류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는데, 악마가 다가와 방해 공작을 편 것입니다.
먼저 악마는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바꿔보라고 요구합니다. 물질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는 유혹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의 백성에게 빵을 내려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지 않았던가? 메시아라면 백성에게 먹을 빵과 살땅을 보장해 줘야 하지 않는가?’
의식주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빵이 절대화되고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생각, 경제 제일주의의 유혹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
이어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막강한 세상 권력과 눈부신 영화로 백성의 마음을 휘어잡으라는 유혹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적 번영으로 부강한나라를 만들지 않았던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라면 마땅히 그런 권세와 영화를 갖춰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세속권력과 영화를 절대시하면 반드시 큰 폐해를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응대하십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13 참조)
마지막으로 악마는 성경까지 유혹의 도구로 삼습니다, 시편 91편 11절-12절에서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의인을 보호해 주신다고 했으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빌려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입증하여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함으로써 참된 하느님을 드러냈듯이(1열왕 18,20-40), 메시아도 그래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느님께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신앙을 거스르는 짓입니다.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느님을 나의 일꾼으로 삼아 내 뜻과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혹도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신명 6,16 참조)
우리 인생 여정에는 광야처럼 힘든 시간이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느님보다는 재물과 권력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나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까지 이용하고자 하는 욕심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광야에서도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몸소 유혹을 당하고 극복하셨던 그분은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유혹의 목소리를 떨쳐버리도록 도와주고 격려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제2독서)
손희송베네딕토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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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 06일 일요일
[자] 사순 제1주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루카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전하기에 앞서 준비 기간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힘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악마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유혹,
세상 통치의 힘을 쥘 수 있는 유혹,
그리고 천사들에게 보호받으며 신성을 알릴 수 있는 유혹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부여받으신 신적 능력으로 악마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들’로서 지니신 신적 특권을 포기하시고,
‘인간의 길’(배고픔, 고통, 죽음, 약함 등)을 선택하십니다.
인간의 운명을 피하는 것은 예수님께 큰 유혹이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이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서 유혹을 받으시지만 극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을 이겨 내실 수 있었던 힘은 ‘하느님 말씀’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광야를 떠돌던 시기에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어두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악마의 유혹을 이겨 내시어
당신 스스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시는 분(신명 8,3; 루카 4,4 참조),
하느님을 경배하시고 섬기시는 분(신명 6,13; 루카 4,8 참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시고
그분을 시험하지 않으시는 분(신명 6,16; 루카 4,12 참조)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광야’로 초대하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유혹을 받으셨지만 물리치심으로써,
우리에게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2022년 3월 6일 [(자) 사순 제1주일]
예수님께서 유혹을 대신 다 받으시고 완성하십니다. 그 완성, 승리, 오늘 우리 모두 다 받읍시다.
(루카 4,1-13)
1ㄱ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세례를 받으시고) 돌아오셨다.
= = 죄가 없으신 분, 그래서 세례가 필요 없으신 분이 죄인들과 하나(한 몸) 되시기 위해 받으신 세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 세위께서 한곳에서 한가지 일을 위한 그 한뜻의 일치(삼위일체)로 계십니다. 죄인들과 한 몸이 되시기 위한, 한뜻입니다.
1ㄴ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ㄱ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 성자 하느님께서 왜 악마의 유혹을 받으세요? 그리고 악마에게 그럴 자격, 힘이 있는 건가요?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루어진 죄인(罪人)들과 하나 되시기 위한 필요한 유혹(誘惑)이라는 것입니다.
2ㄴ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40일)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까지 광야40년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광야를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거스렸던 그 잘못을 예수님께서 다시 걸으십니다. 40은 그리스도인들의 한 생애(生涯)를 뜻합니다. 스테파노 또한 그 광야 40년을 교회의 모습이라 합니다.
(사도7,38-39) 38 이 사람(모세)은 광야의 집회(교회) 때,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하는 천사와 우리 조상들 사이에 중개자가 되어,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39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에게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제쳐 놓고 마음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 그들 모두는 이집트(세상)의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그들 입맛에 맞았던 세상 음식 그 유혹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 양식에 굶주림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40일 단식이 그들의 세상 음식을 단식하시는 것이며~ 굶주린 그들에게 하늘의 참양식을 먹이시기 위한 단식인 것입니다. 그것이 참 단식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마태9,13)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이사58,6~) 단식입니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사람들이 실패한 음식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 물리치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말씀(구원의 계명)보다 사람의 말 곧 재물(빵)을 위한 신앙을,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당을 다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 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 하늘의 성전(신앙)을 이용해 땅, 세상 것을 보도록, 갖도록 유혹(誘惑)합니다. 성경의 치유, 기적을 구원을 위한 죄의 용서, 그 표징으로 깨닫지 못하고 육을 위한 기적으로만 보고 좋아하고 원한다면~ 악마는 그 마음을 이용해 기적으로, 신비로운 일로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그곳에 ‘죽음이 있다’ 하셨습니다,(마태24,28) 오늘 말씀과 기도를 이용한 빵(재물)과 기적과 신비체험, 세상의 명예, ‘그 땅의 것들을 위한 것은 아닌지 보라’하십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6,16)
= 그 거짓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시 물리치십니다. 말씀을 한 문장, 한 단락으로 보이대로 문자로 보면~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뜻으로 깨닫게 되어 유혹에 넘어갑니다.<신천지 사건같은 것을 잘 살펴보세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 세례부터 묵상한 것입니다.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4,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6,13)
= 예수님은 당신의 뜻, 그 자기말로 악마를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아버지의 뜻,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은 모든 문제, 사건(악)을 자기 뜻, 생각, 그 말로 해결하려 합니다. 제자들 역시 그랬습니다.
(마르9,28-29)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 기도, 올바른 기도 “아버지의 뜻이 이 땅(나)에서 이루어지소서.” 그 하느님의 뜻, 그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기도)하고 그 말씀을 선포했을 때에만 악마는 쫓겨납니다. 제자들은 사람의 뜻을 위한 그 사람의 말을 했기에 쫓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아버지의 말씀으로만 악마를 대적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도 모르면서 이단들을 퇴치한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마태4,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세례를 받으신 후~ 신앙인들이 실패한 그 유혹을 다시 받으시고 물리치셔서~ 그 승리를 우리에게 전가 시켜 주신, 그 구원의 일을 오늘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실패, 예수님께서 승리로 완성 하셨습니다.
(1코린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세상(땅) 것을 위한 신앙이 아닌 하늘로, 그 하늘의 성전이신 승리의 주님께로 돌아갑니다. 오늘~~~ 아멘.
2022년 3월 6일 [사순 제1주일]
&세상의 재물과, 고난의 삶, 기적의 체험을 기도하지 않았나?
복음(루카4,1-13)
1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 성령(聖靈)께서 악마(惡魔)의 유혹을 받으시도록 이끄셨고, 그 유혹의 기간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부활(復活)하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대속(代贖), 그 새 계약의 십자가를 지러 오셨고 그 십자가(十字架)에서 ‘다 이루어졌다“ 하셨다.
그런데 왜 하느님은 예수께 세례(洗禮)를, 그리고 악마의 유혹(誘惑)을 받도록 하셨을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해 홍해를 건너 40년 광야의 삶을 실패로 살았기에, 그 실패(失敗)를 예수께서 세례로 받으셨고, 40일간 그 실패의 시험(侍險)을 받으심으로 완성하셔서 교회(우리)에게 선물(膳物)하시기 위해 받으신 것이다.
곧 우리가 정해진 이 인생(人生)의 기간 동안 악마의 유혹에 넘어져 실패로 죄(罪)의 종(從)이 되었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승리(勝利)를 주시기 위해 유혹(誘惑)을 받으신 것이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탈출16,2-4) 하고 말하였다.
= 세상의 빵, 곧 &(위3가지) 세상의 힘인 재물로 만들라는 유혹이다.- 여기에 우리가 걸려든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신명8,3)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예수님은 돌로도 빵을 만드실 수 있으셨다.(마르9,23참조) 그러나 당신의 능력보다 하느님께서 40일동안 굶으라 하셨기에 굶으셨고, 배가 몹시 고프셨지만 하느님의 말씀, 그 명령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일용(日用)할 양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그 구원의 진리를 주심이 더 중요하셨던 것이다.(신명8,3) 여전히 실패하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로마16,18 필리3,18-19)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 세상의 권세(權勢), 영광(榮光)이 왜 악마의 것이 되었나? 하느님께서 아담(사람)에게 ‘다스리라’고 주신 세상(世上)이다.(창세1,28 2,18) 그러나 아담이 악마의 유혹(誘惑)에 넘어가 그의 종(從)이 되었기에 세상에 대한 아담의 권리(權利)가 악마의 것이 된 것이다.
그래서 빼앗긴 그 아담(사람)의 권리(權利)를 되찾으시기 위해, 곧 그 사람을 죄(罪)에서 구(求)하시기 위해 그 사람의 죄 값을 치러야 한다. 곧 십자가(十字架)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 악마(惡魔)에게 ‘절만하면 돌려주겠다.’고 유혹(誘惑)한다. 곧 예수님께 &십자가(十字架)를 지지 말라고 유혹(誘惑)하는 것이다. 우리도 여전히 받고 있는 달콤한 유혹(誘惑)이다. 고난(苦難), 시련(試鍊)의 삶(십자가)을 피하라고, 버리라고....
그러나 하느님은 그 고난(苦難), 시련(試鍊)을 통해 구원(救援)을 위한 선(善)을 행(行)하신다.(로마8,28 야고1,12 히브12,7)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시편91,1)
= 하느님만을 의지(의탁)할 때 책임(責任)져 주신다.
화답송 (시편91,15) 15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내 이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 주님은 이스라엘이 실패(失敗)한 것들을 하나하나 성공(成功)으로 완성(完成)시켜 나가시는 것이다.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시편91,11)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91,12)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6,16)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 &하느님께 기적(奇蹟)을 청(請)하라는 유혹(誘惑)이다. 기적은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에 적대(敵對)한다.
예(例); ‘죽었던 라자로’가 살아나자 교회(敎會)의 최고 의회(議會)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했고(요한11,45~), 제자들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사천(4,000)명을 먹인 기적(奇蹟)을 체험(體驗)하고도 믿음으로 연결시키지 못해 믿음을 간직하지 못했다.(마태16,8~)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 악마(惡魔)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십자가(十字架)에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롱(嘲弄)과 비난(非難)의 말로 기회(機會)를 노린다.(마르15,26-32참조)
(마르15,30) 30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 이 유혹(誘惑)이 지금 우리에게 기회(機會)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혹(誘惑)은 악마(惡魔)가 했지만 성령(聖靈)께서 이끌고 가서 받게 하셨다. 그렇듯 신자(信者)들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혹, 시험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 고난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목적(이유)이 있기에 허락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때때로 유혹, 고난을 받을 때, 다른 이들보다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 나에게 필요(必要)를 채우실 것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주권(主權)을 인정하며 거기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하느님께 완전한 항복(降伏), 순종(順從)을 위해, 즉 하느님의 복(福), 하느님의 생명(生命)을 회복(回復)한 자로 만드시기 위해 그러한 유혹들,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1베드4,1) 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으로 고난을 겪으셨으니, 여러분도 같은 *각오로 무장하십시오. 육으로 고난을 겪는 이는 이미 죄와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喜怒哀樂)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시메온이 하늘의 빵이시며 하느님의 말씀이신 구원자 예수님으로 세상의 것에서 자유 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곧 평화로이 죽게 되었음을 찬미하도록 성령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이끄셨듯이(루가2,25-30) 저희 모두를 이끌어 주소서, 더욱 충만한 힘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