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일 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물을 드렸다. (마태2,1-12)
제1독서<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화답송 시편 72(71),1-2.7-8.10-11.12-13(◎ 11 참조)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제2독서<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에페3,2.3ㄴ.5-6)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미카5,1)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 공현 대축일 제1독서 (이사60,1-6)
제3이사야서로도 불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56~66장)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상황을 겨냥한다. 특히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하느님의 도성인 시온 또는 예루살렘은 참다운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며(이사60,4~7), 주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확장된다(이사60,3~14)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사야서 40장 1~2절의 '위로'가 이 장에서 성취되고 있다. 이사야서 49장 6절에서 약속된 '빛'이 이 장에서 비추어지기 시작한다.
에즈라기 7장과 느헤미야기 2장이 그 배경을 알려준다. 바빌론의 유대인 사회는 페르시아 행정부의 영향력있는 유대인 관료들을 통해 황제의 관심을 얻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과거에 키루스와 다리우스1세가 제의적 의식들과 신전 도시들에 대해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정책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노력을 뒤에서 지원하기로 동의했다.
하느님께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후원하시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하느님과 하느님의 성을 인정한 결과로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또 복권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과 빛과 아름다움이 이 장에 넘친다.
이 장의 핵심은 과거의 어두운 절망과 극도의 빈곤과 버려진 폐허의 혼돈을 활동의 중심지, 상인들과 기술자들, 노동자들의 바쁜 시장, 빛과 아름다움과 기쁨의 장소로 바꾸기 위한 정치, 경제, 종교적 결정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결정들은 바빌론으로부터의 유대인들의 귀환, 외국 자본의 유입, 그리고 예루살렘의 문예부흥에 기여하는 여러 국가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포함된다.
에즈라기 7장 1~28절을 이 장과 나란히 둘 때, 여러 조각들이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특히 예루살렘의 성전이 다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에즈라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는 예루살렘의 하느님께서 자신을 좋아하기를 바랬다. 이런 목적으로 그는 왕가의 자금을 넉넉히 지원했다.
그는 강 건너펀의 다른 백성들과 관리들에게도 돈과 목재와 노동력을 기증하라고 명령하고, 만일 그들이 거부하면 제국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자신의 명령들이 실행되는가를 알기 위해 에즈라에게 군대의 호위를 제공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두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다.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이사60,3~6절)
하느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남부 유다가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다 하더라도,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통해 남부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 빛을 비추어주며 영광을 돌려주고, 민족들이 우러러 보게 만들어 준다.
죄악과 어둠과 혼돈이 만연한다 해도, 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악이 승리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시간표대로 진행될 것이고, 하느님께서 하느님다우신 방법으로 당신 뜻과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예루살렘 위에 비추어지는 빛과 주님의 영광에 대한 이사야서 60장 1~6절의 말씀이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선포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온 세상과 이방인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에게 이 세상의 구원자요, 빛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이 공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공현;公顯; Epiphany).
여기에다가 예수님 세례 사건 때에 성삼위가 계시된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이 공적으로 선포됨과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공생활이 시작된 사건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첫번째 기적을 베풀어 신성(천주성)을 드러낸 카나의 사건, 이 세가지를 함께 기념하는 것이 공현의 의미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특별히 동방의 점성술가들이 구세주의 탄생 장소로 인도하는 성령을 상징하는 별의 인도로,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신성을 상징하는<유향>과 인류를 구원할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을 베틀레헴 마굿간 구유의 예수님께 드린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성령의 별빛을 받아 신앙을 갖게 된 우리 자신들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무엇을 봉헌해야 주님이신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할 수 있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
헤로데만 가짜인가?
(마태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별은 왜 이방인(동방박사)들에게 먼저 나타났고 헤로데에게 먼저 인도했을까?.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 헤로데는 정통임금이 아니었기에 늘 불안했다. 로마의 안토니우스의 후원을 얻어 유다의 왕(분봉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의 앞잡이라는 비난이 있었기에 그는 왕의 자라를 지키기 위해 하스모니안 가문의 유대인 여자 미라암1세와 결혼함으로써 왕조와 인척관계를 맺었다. 이는 그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왕조의 일족과 추종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였고 부인과 장모까지 죽였다. 그러니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고 그 태어난 아기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4 (그래서)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 인간의 욕망, 위선적 계략은 참으로 집요하고 무섭다.
(야고1,14-15) 14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15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별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신기한 별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늘의 뜻을 깨닫는 계시(啓示)의 별이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 황금은 임금을, 유향은 대사제를, 몰약은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하늘의 임금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으러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요한19,38-39) 38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도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게 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그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요셉은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렸다. 39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 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공동번역)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 헤로데에게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다. 의미가 있다. 유대인들의 빛, 임금으로~ 곧 자신들의 임금, 그 계시의 빛으로는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온 세상을 비추는 하늘의 계시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헤로데와 같은 두려움의 삶이 아닌, 다른 길- 다른 두려움의 삶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헤로데와 동방박사는 자신들을 위해 먼저 찾아오신 별(빛)임을 깨달아야 했다.
그들의 삶이 참 빛이 아닌 가짜 빛, 곧 어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먼저 비추신 것이다.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계시의 별이었던 것이다.
독서(에페3,4-6) 4 내가 그리스도의 신비(미스테리온, 비밀)에 관하여 깨달은 것을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나를 살리시기 위해 하늘 별(빛) 임금께서 죽으러 오셨음을, 그래서 그분이 나의 주님(주인)으로 기뻐하며 믿는지~ 예전엔, 특히 묵시록을 읽을 때 너무 무섭고 두려워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을 품은 요즘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싸워 이기시는 승리의 책, 기쁜 복음이 되었다.
오늘 복음의 바른 이해를 위해 200주년 주해 성서에서~
‘동방박사’원어는 ‘마고스(점쟁이)’라는 말인데, 문맥으로 보아 별을 보고 점을 친 까닭에 ‘점성가’라 했다. 점성술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성행했다. 성경은 동방에서 찾아온 점성가들의 신분이나 숫자나 이름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사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AD500년경에 이르러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점성가들을 임금으로 추대했다. 나아가 황금과 유향과 몰약, 이 세가지 예물에 준해서 임금 숫자를 셋으로 정했다. 마침내 세 임금의 이름까지 지어 발탈샬, 멜키오르, 가스팔이라 했다.~이상.
참으로 놀랍다.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인물들이 인간들의 생각에서 나온 가상(假想)이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성인으로 추대해 그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은 이들이 있지 않은가?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하느님을 보는 신앙인데~ 사실 우리가 받아야할 이름은 ‘그리스도인’ 그 이름 뿐이다.
(묵시14,1) 1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우리 모두 형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보다 인간들의 행위 그 가치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구유에 누우신 곧 죄인들의 먹이로 오신 아기예수, 그 구원자의 대속 그 사랑을 깨닫기보다 구유 옆에 놓인 헌금통에 돈을 넣으며 그 ‘나의 가치에 만족 해 하는 우리’라는 것이다. 다 좋다, 그러나 한가지 십자가의 사랑, 그 하나가 빠지면 헛된 것이 된다는 것이다.
(마르7,7)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 뱀의 유혹을 먹는 아담(죄인)들이기 때문이다. 나를 살리기 위해 하늘 임금께서 죽으러 오신 나의 주인님, 그분의 사랑, 의로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구원자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자신들의 행위로 만족하려는 것이다.
(이사53,4-5) 4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 이 말씀을 믿는다면 내 안에 하늘 임금님(대속의 약속)이 계시니 비록 비천한 나 이지만 베들레헴이 그랬듯이 ‘결코 작은자(죄인)’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 6절을 다시 ‘유다 땅 베들레헴아(나의 백성, 자녀들아), 너에게서 통치자(구원의 약속, 말씀)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나)을 보살피리라.’ 동방박사들은 몰랐기에, 헤로데처럼 두려워하고, 다시 자기 고장(점쟁이)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이야기가 아니기를~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삶의 신앙이 가짜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 주소서. 저희를 의탁합니다.~아멘.!!!
2022년 01월 02일 일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매일 묵상 (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새해 첫 주일,
우리는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님 경배를 기억하며,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냅니다.
‘공현’은 예수님께서 구약 시대부터 약속된 메시아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별이 세 명의 박사를 멀리 동방에서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으로 인도합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뵙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의 방문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믿는 이를 위한 메시아로 오셨음을 드러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
하느님께서는 나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聖經)은 모든 믿는 이의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동방 박사만이 아니라,
어두운 밤,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도 경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들려줍니다(루카 2,15-20 참조).
동방 박사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오신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고,
목자들은 찬양과 찬미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미하는 일에서 제외되는 믿음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뵈려고 멀고 험난한 길을 걸어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새로운 한 해, 예수님을 용기 있게 찾아 나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 안에서 ‘공현’을 실현하는 첫걸음입니다.
신앙 여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서는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그 길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별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 (마태 2,1-12)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ㄴ~2)
마태오 복음 2장 1절(ㄴ)에서 '그러자'로 번역된 '이두'(idou; behold)는 '보라'의 뜻이다. 이 단어는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베틀레헴에서 탄생한 그 무렵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른 것은 전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며, 그래서 주목할 만한 일이라는 것을 '이두'(idou)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박사들'로 번역된 '마고이'(magoi; magi; wise man; astrologers)의 원형 '마고스'(magos)는 바빌론에서 기원된 단어로 보이며, 바빌론과 메대, 페르시아에서 현자, 교사, 점성가, 예언자, 해몽가, 마술가, 사제, 의사 등을 총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마고스'(magos)는 특히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가의 특징이 강하며, 어떤 영어 번역 성경은 '마고이'(magoi)를 '점성가들' (astrologers)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동방에서'로 번역된 '아나톨론'(anatolon; the east)의 원형 '아나톨레 (anatole)는 해, 구름, 별 등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아나톨론' (anatolon)의 원형 '아나텔로'(anatell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 '(해와 달, 별 등의) 떠오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지점을 가리키는 '동쪽'(the east)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동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 가운데 문화와 천문학이 발달한 페르시아나 바빌론, 아라비아나 메대 등이 그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천문학이 발달했을 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며, 메시야의 출현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을 접할 수 있었던 바빌론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가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포로되어 흩어진 이후로, 유대아의 전통 및 예언들이 그 지역의 점성가들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박사들도 점성학적 지식과 더불어 유대 전통(민수24,17)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대 땅에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것을 알고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태어나신 분이'로 번역된 '호 테크테이스'(ho techtheis; he that is born; the one who has been born)는 관사와 분사가 함께 쓰인 형태이며, 명사적 의미를 타나내는 독립 분사 구문이다.
'테크테이스'(techtheis)는 '출산하다', '낳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티크토'(tikto)의 부정 과거 수동태 분사 단수 남성 주격이다. 여기서 부정 과거형이 사용된 것은 아기 예수가 이미 태어났음을 나타낸다.
즉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를 기준으로 해서 미래에 태어날 것이 아닌, 얼마 전에 이미 태어났다는 사실이 부정 과거의 표현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임금으로'에 해당되는 '바실류스'(basileus; king)는 마태오 복음 1장 6절의 '다윗 임금'을 언급할 때도 쓰인 단어인데, 일반적으로 정치적 '왕'을 뜻한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이번에 태어난 임금이 보통 임금들과는 다른, 어떤 뛰어난 존재일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특별히 경배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유대인들의 임금'은 단순히 유대 민족을 다스리는 임금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즉 마태오 복음 1장 1절, 9장 27절 등에 표현된 '다윗의 자손'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를 지칭하는 단어라면, '유대인들의 임금'은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를 나타내는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동방 박사들은 유대아를 다스리는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신 인류의 메시야가 오신 것을 알고, 경배하기 위하여 먼 길을 온 것이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이 문장을 직역하면, '우리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기 때문에'이다.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단어 '가르'(gar; for)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쓰여, 본문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이유임을 나타낸다.
한편, 동방 박사들이 본 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다.
첫째, 태양계 내에 있는 토성과 목성이 만난 현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망원경을 발명하여 태양계의 공전 사실을 최초로 규명해 낸 17C 천문학자 '케플러'(Kepler)는 B.C.7년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둘째, B.C.12년 혹은 11년에 베틀레헴 상공에 나타난 핼리 혜성(Halley's comet)이라는 주장이다.
세째, 특정 기간 일시적으로 폭발하여 예외적으로 밝은 빛을 발하는 초신성(nova)이라는 주장이다.
네째, 지금까지 기술한 자연적인 별의 현상이 아닌 초자연적인 현상, 즉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일시적으로 생겨난 별의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이 사실에 가까운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동방 박사들이 특별한 별을 보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대 땅에 태어난 임금을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이 태어나실 즈음에, 자연적인 현상 혹은 초자연적인 천체의 현상이 일어나게 하셔서, 동방 박사들로 하여금 메시야 탄생을 알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동방에서'에 해당하는 '엔 테 아나톨레'(en te anatole; in the east)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다는 뜻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별을 본 것은 그들의 고향인 동쪽에서라는 사실을 가리키며, 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거나, 이동하여 서쪽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암시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위치나 움직임, 그리고 메시야 탄생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연관시켜 유대 땅으로 올 수 있었다.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동방에서부터 유대 땅까지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혀 주는 문장이다. 그것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것이다.
'경배하러'에 해당하는 '프로스퀴네사이'(proskynesai; to worship)의 원형 '프로스퀴네오'(proskyneo)의 부정 과거 능동태 부정사이다.
여기서 능동태가 사용된 것은 동방 박사 자신들 스스로의 의지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프로스퀴네오'(proskyneo)는 이집트에서 사람이 신에게 존경의 표시로 '손에 입맞추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희랍어에서는 사람이 신에게 혹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깊은 공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다'는 의미로 사용된 동사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경의를 표하거나 혹은 탄원을 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아무개에게 절하거나 신에게 예배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특히 요한 복음 4장 20~24절과 12장 20절에서는 하느님께 '예배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단순히 공경의 마음을 표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신적 경배와 예배를 드리러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2년 1월 2일[주님 공현 대축일]
다시 돌아가면?
복음(마태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 별은 왜 먼저 헤로데에게 인도 됐을까? “너희 세상 임금은 아니다”를 알리심이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미카5,1)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 아기를 죽이려는 속셈이다. 곧 자신(自身)의 임금 자리를 지키려는 음모(陰謀)이다.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 황금은 왕께, 유향(기름)은 대사제께, 몰약은 죽은이들에게 필요한 예물(禮物)이다. 곧 성경(聖經)은 당신 나라에 오신 평화의 완이신 아기를(요한1,10-11참조), 그리고 죄로 가로막혀 있던 하늘을 당신 몸으로 찢고, 다시 연 대사제이신 아기를(마르15,37-38 히브4,14 10,19-20참조), 그리고 당신 나라 백성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의 죄로 죽으실 새 계약의 그리스도, 대속(代贖)의 구원자께서 오셨음을 선포(宣布)하는 것이다.
오늘제2독서에서~(에페3,4-6)
4 내가 그리스도의 신비(비밀)에 관하여 깨달은 것을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동방박사들은 당신들의 죄로 죽으실 자신들의 왕, 대사제, 구원자로는 깨닫지 못했다. 임금인 아기가 왜 마굿간에, 그것도 짐승의 먹이통에 뉘여 지셨는지, 즉 짐승들의 집, 먹이통에 누우신 그 모습을 보면서 죄인(짐승)들의 양식(糧食), 구원자임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 자기 고장(故場), 자기 삶으로 돌아갔다. 구원자로 깨달았더라면 따랐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인 영혼의 구원을 위한 신앙(信仰)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 육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신앙을 살기에 우리의 창조(創造) 목적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義), 명예(名譽)를 위한 신앙을 산다.
오늘도 성당에 와서 감사의 미사(예배)가 아닌 자신들의 뜻을 위한 제사(祭祀)를 드린 후, 자신의 집, 자신의 뜻을 위한 삶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다. 곧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信仰)따로 삶(生活) 따로!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되살아 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
(루가24,12) 12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난 일을 속으로 놀라워하며 *돌아갔다.
(요한20,9-10)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0 그 제자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 빈 무덤을 통해 자신들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음을, 곧 구원이 이루어 졌음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뜻, 욕망을 이루지 못한 큰 실망으로 자신들의 집,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말씀 안에 구원의 약속을 깨닫지 못해,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신 후, 그들은 박해하는 사람들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十字架)의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선포(宣布)한다.
곧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실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보호자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고, 그 성령께서 오늘도 일(사역)하신다.
독서 5절부터 다시~
(에페3,5-6) 5 그 신비(비밀)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성령은 우리가 말씀 안에 머무를 때 일하신다.(요한8,31-32 1요한5,6)
☨보호자이신 진리의 성령님!
세상이 어둠(암흑)으로 덮였지만 그리스도인들 위에는 주님의 영광(사랑)이 떠오르라(1독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 졌음을 깨닫고 믿어 주님 안에서 그분 영광(십자가의 사랑)으로 평화의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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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일(다해)주님 공현 대축일
생명의 말씀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아기로 오신 하느님이 우리의 사랑을 일깨우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오늘, 별의 인도로 만백성 앞에 드러내 보이신 주님공현 대축일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크게 세 가지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대로, ①동방의 세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 와서 경배한 사건, 그리고 ②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처음 시작하시며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으신 사건, 그리고③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표징이 되는 기적을 처음으로 행하신 사건입니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이 사건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밝히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주님 공현 대축일에 기억하는 이 사건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째서 중요한 사건이 될까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라고 고백할 뿐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빚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길이 어떤 길인지를 가장 잘 아시고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성탄(聖誕)은 그 하느님께서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대사건이고, 오늘 주님 공현(公顯)은 그 아기가 실은 하느님이심을 세상에 널리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아기들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주변의 보호와 도움 없이는 자라날 수 없는, 약하디 약한 존재입니다. 특별히 선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연약한 갓난아기가 방실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약하디 약한 갓난아기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원래 있는 ‘착한 본성’(善性)을 일깨웁니다. 아기들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만, 더불어 엄마, 아빠 도 아기들을 키우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 안에 원래 있던, 그러나 고단한 삶의 긴 여정 속에 많이 퇴색되고 잃어버린 착한 본성을 다시금 일깨우면서, 우리도 그 아기 예수님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 안에서 성장하게 합니다.
전례력으로는 오늘 동방 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주님 공현 사건을 대축일로 기리고, 그다음 주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보낸 후, 일상의 연중시기를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함 으
로써, 가장 행복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려는 하느님의 손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일상의 연중시기를 통해 그 사
랑을 매일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 나가라는 의미가 전례력 안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아기로 우리에게 오시어 가장 여리고 약한 모습으로 우리의 사랑을 일깨우시는 하느님, 우리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 바로 ‘우리 곁에 계신 또 한 분의 예수님’에게 눈을 돌려 사랑을 실천하며, 사랑 안에서 우리도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